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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Nov 08. 2022

『캔터베리 이야기』 :  배우와 타락한 성직자

면죄부 판매자 이야기

   배우와 타락한 성직자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쇼와 이벤트 성 행사를 좋아합니다.  뛰어난 연기력과 짙은 호소력 그리고 화려한 말로 대중들에게 지옥도 보여주고 천국도 선사합니다. 이런 능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돈도 벌고 명성도 얻고 인기와 파워를 즐깁니다. 그러나 이 셋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배우의 연기는 예술입니다. 없는 현실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능력에 우리는 감동하고 울고 웃으며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썩어빠진 종교인과 정치인의 연기는 그냥 사기입니다. 일단 속아 넘어가면 재산 날리고 가정파탄 나고 대형사고 터지고 심한 경우 나라까지 망합니다. 종교와 정치 자체를 혐오하게 만듭니다.  종교인과 정치인을 만날 때는 연기를 하는 건지 진실을 말하는 건지 간파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힘은 지식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입니다.       


   14 세기 르네상스 문학을 읽는 또 하나의 독서 포인트는 성직자의 부패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중세시대의 기독교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 후 로마는 이제 제국의 수도가 아닌 로마 가톨릭의 본산으로서 그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5세기 중반부터 정치적, 종교적 실권자로서의 교황이 등장합니다. 이후 교황들은 유럽전역에 수도원을 건설하고 유럽 변방 (아일랜드나 영국 등)에 수도승들을 보내 이교도들을 기독교인들로 교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면서부터 로마 가톨릭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면죄부 때문입니다. 가톨릭에서 면죄부는 죄인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 (자선 단체에 기부, 순례지 방문, 선행 등)을 한 후에 받는 일종의 부분 또는 전면적인 사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래 취지의 면죄부가 1095년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자 변질됩니다. 당시 교황이던 어반 2 세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들에게  죄를 고백하면 면죄부를 발행해주었는데 전쟁에 참여를 못하는 사람들도 면죄의 혜택을 준 겁니다.  참전대신 헌금을 내는 조건으로 말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수익을 본사와 지사가 나누어 갖는 구조의 면죄부 판매 프렌차이즈 사업도 벌입니다. 면죄부는 이제 교회의 부족한 재원 충당 수단으로 정착합니다. 이 면죄부 판매는 성직자를 부패하게 만들었고 면죄부만 전문적으로 파는 면제부 판매자까지 대량으로 양산해 내면서 사회전반에 걸쳐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이 문제점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은 이미 14세기경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작가들이 단테, 보카치오, 초서입니다.

   

   단테에게 교황, 대주교, 신부들은 그저 돈에 눈이 먼 자들에 불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4등급 탐욕지옥에 그 당시 교황, 대주교, 신부들을 가두어 놓고 엄청난 무게의 돌을 굴리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부패한 가톨릭을 향한 단테식 비판입니다.  보카치오의 눈에 비친 성직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자를 속여 자신의 성욕을 채우고자하는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신부 역시 성욕을 지닌 직업인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도 가톨릭에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이 영국시인의 공격방식은 그의 문학적 스승들에 비해 좀 더 간접적이고 우회적이며 아이러니하고 풍자적입니다. 즉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의 성직자(수도승, 수사, 소환사, 면죄부 판매사, 수녀원 원장, 수도승, 수녀, 교구 신부)들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이 들 중 세 명만 만나봅니다. (그러나 이들 중 신부는 진실한 성직자로 그려집니다. 모든 성직자들이 다 타락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먼저 서시에 언급된 수도승에 대한 묘사입니다.       



수도승도 있었죠. 훌륭한 분입니다.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사나이로 사냥이 그의 취미입니다.  

남자다운 남자이고 능력있는 수도원장 감이죠.

그의 마굿간은 최고의 말들로 꽉 차있습니다.

그가 말을 타고 달릴 때면

그의 말굴레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교회 종소리처럼 크고 청아한 소리입니다.

. . .


이 수도승은 훌륭한 사냥꾼입니다.  

사냥코스에 훤한  새처럼 빠른 그레이하운드도 소유했고

토끼사냥과 펜스 승마에 진심이며 돈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의 옷 소매는 최고급 회색 모피로 장식이 되어 있고

그의 후드 모자는  멋진 금 핀으로 그의

턱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금 핀의 끝에는 사랑의 매듭장식이 되어 있고   

머리는 거울처럼 윤이 나는 대머리에다

얼굴도 기름기가 자르르 흐릅니다.  

뚱뚱하고 매력적인 성직자이죠

부리부리한 두 눈은 잠시도 쉬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주전자를 데우는 불꽃처럼 반짝 거립니다.

그의 부츠는 부드럽고 그의 말은 최고의 컨디션입니다.

그는 종교 행사에 나온 고위 성직자로 손색이 없습니다.   

고통 받은 영혼의 흔적이 전혀 없이 창백하지도 않죠

그는 최고 품질의 통통한 백조 로스트 구이를 좋아합니다.

그가 소유한 값비싼 최고급 말은 베리처럼 검은 색입니다.  



14세기 사냥은 현대식으로 말하면 골프나 폴로같이 돈 많이 드는 상류층의 고급 취미 활동이며 타고 다니는 말은 자동차에 해당합니다. 말이나 자동차는 교통수단에 불과 하지만 덜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신분의 상징이요 과시의 수단입니다. 그가 특히 순례 여행에는 최고 품종의 말을 타고 왔는데 롤스로이스 혹은 레인지 로버 급 말입니다. 그는 자기 말에 소리도 장착했는데 자동차에 배기음 튜닝을 한 격이죠, 소리가 나야 사람들이 봐주고 쳐다보지 않겠습니까?  가난과 순결 그리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조용한 명상의 삶을 살기로 약속한 수도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면죄부 프렌차이즈 사업으로 돈을 벌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기름진 음식으로 윤기 흐르는 피부를 가진 부유한 수도승은 얼마 전 미디어에 화제가 되었던 풀소유를 즐기는 스님처럼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순례자 일행에는 수도사도 있는데 그도 참된 기독교인과는 거리가 멉니다. 초서는 수도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모든 마을의 술집들을 바싹하게 알고 있죠.

그리고 여관 주인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들도 잘 압니다.

나병환자나 거지들같은  불우이웃들은 잘 몰라요.

그처럼 고귀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인간쓰레기 같은 나병환자하고는 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런 다리 밑 시궁창에서 사는 사람들과 거래해보았자

나올 거 하나도 없잖아요.  

자신의 신분하고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직 부자나 슈퍼마켓 주인들하고만 상대 해야죠

푼돈이라도 생기는 곳이라면

얼마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지 서비스는 개판이지만     


술집 아가씨들과 부유층만 사귀는 수도사.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이 딴 판인 성직자입니다.

   

 

면죄부 판매자

  

   이제 마지막으로 면제부판매자입니다. 우선 서시에 묘사된 그의 모습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이야기도 읽어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고로 잘하는 건 헌금성가입니다.

그는 잘 압니다. 그 성가를 부를 때  

그는 세련된 말솜씨로 설교하면   

짭짤한 수입이 생기죠

그러므로 그는 아주 즐겁게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 답니다.    


면제부판매자에게 제일 즐거운 순간은 헌금시간입니다. 면죄부 판매자는 순례객들에게 자신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하고 구원의 약속을 판매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설교는 항상 한 가지 주제임을 강조하는데 그건  “모든 악의 근원은 탐욕”이라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방문한 교회의 성도들에게 항상 탐욕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설교를 한 후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합니다.  자신이 들고 다니는 낡은 가방 속에 들어있는 갖가지 성물 (relics)을 꺼내 신도들에게 보여주며 살 것을 권유합니다. 가방 안의 모든 성물은 사실 양의 뼈에 불과한 가짜이고 단순한 벙어리장갑이지만 신도들은  이것들이 모든 종류의 병을 치유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그의 말에 속아 지갑을 엽니다.  그는 자신이 설교하는 까닭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함이며 죄를 올바로 잡는 것은 관심이 없노라고 덧붙입니다. 그는 굶주리고 있는 미망인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한 푼이라도 더 빼앗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게 자신의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나쁘다고 설교하는 탐욕의 죄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는 언어적 아이러니의 좋은 예입니다. 그는 맥주를 한잔 들이키곤 그의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시작합니다.        

    


  세 명의 젊은 혈기 왕성한 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장례행렬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오랜 친구 한 명이 죽음이라고 불리우는 자에게 살해당했으며 그 사람의 장례행렬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화가 치밀었고 술김에 죽음이란 자를 찾아내어 친구의 복수를 갚아주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살인자를 찾으러 길을 가고 있는 중에 아주 슬퍼 보이는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자신의 슬픔은 자신의 나이 때문이며 죽음이 자신을 데리러 오길 기다리며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죽음이란 이름을 듣자 그들은 노인에게 그가 어디에 있느냐고 다그쳤죠.  노인은 자그마한 나무숲을 가리키며 그중 참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보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참나무로 달려갔지만 죽음은 없었고 금화로 가득찬 상자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금화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화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고 이내 이 금을 셋이 나누어 가질 궁리를 하는데 그중 한 명이 벌건 대낮에 금을 마을로 갖고 가면 도둑으로 오해를 받으니까 밤이 되길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먹을 것이 필요하니 제비뽑기를 통해 한 명을 선택해서 마을로 보내 음식을 가져오게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어린 자가 걸려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갔습니다. 남은 두 사람은 이제 그 금을 둘이서 나누어 가질 궁리를 합니다.  왜냐하면 셋보다는 둘이 나누는 게 훨씬 더 이익이죠. 남은 두 명은 한명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마을로 간 한명은 이제 둘을 처치하고 그 금화를 자신이 몽땅 차지할 생각을 합니다. 그는 마을의 약제상에게 가서 쥐를 잡기위한 독약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여 독약을 구합니다. 다음 빵과 세 병의 포도주를 구입한 후 그 중 두 병에 약을 넣고 다시 참나무 아래로 갔습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두 명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 둘은  이제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죽은 친구가 갖고 온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죠. 몇 분 후 그 둘은 자신들의 친구 옆에 쓰러져 먼저 간 친구 따라 황천길로 갑니다. 이 이야기를 끝낸 후 면죄부 판매자는 자신의 가방에서 성물과 면죄부를 꺼내 보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순례객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재촉을 합니다. 돈에 눈이 먼 지극히 비도덕적인 설교자가 전하는 도덕적인 이야기인 셈입니다.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그리고『캔터베리이야기』에서 읽은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교황, 색을 밝히는 신부님, 그리고 겉 다르고 속 다른 부패한 성직자들의 모습과 이야기는 그 시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자 경고입니다. 르네상스시대의 문학은 종교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시대적 담론을 형성합니다.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면죄부 판매는 이제 없어졌지만 종교의 이름을 걸고 온갖 형태의 사기행각을 벌이는 집단들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건재합니다. 광화문에 가끔 나와 헌금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목사님도 계시고 유튜브에서 아이들 희생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는 천하의 공갈 스승도 계십니다. 이를 보면 문제는 종교에 있는 게 아니고 사람에게 있는 겁니다. 거짓 선지자도 문제지만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종교개혁이 아니고 인간 개혁입니다. 문학이 점점 힘을 잃고 아무도 글을 읽지 않는 시대이긴 하지만 한 번 외쳐봅니다. 문제는 법도 제도도 규칙도 종교도 아니며 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나 사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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