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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Nov 21. 2022

『요정 여왕』 : 영국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과의 전쟁

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만남

종교와 정치가 결합하면 사람들은 겁을 상실하고 무조건 앞으로 돌진한다. 자신들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프랭크 허버트)   



   14세기 이후 서서히 끓기 시작한 부패한 성직자들과 교회에 대한 분노는 16세기에 이르러 그 임계점에 도달 마틴루터의 종교개혁(1517)을 계기로 마침내 폭발합니다. 이제 종교 개혁파 입장에서는 가톨릭교회가 새로운 바빌론이며 그 수장인 교황은 교리나 심판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없는 적그리스도일 뿐입니다. 천년을 굳건히 이어오던 기독교가 구교도와 개신교도로 분열되는 순간입니다. 이제는 크리스천끼리 서로가 서로를 그리스도의 적으로 칭하면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시작입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가톨릭과 개신교도들 사이의 전쟁의 불길은 이제 영국으로 번집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 짓는 종교적 교리나 신념과는 전혀 무관한 국왕의 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영국 왕이었던 헨리 8 세는  그의 첫 부인인 캐서린과의 사이에 총 6 명의 아이를 가졌지만 다 죽고 딸 한명 (훗날 메리 1 세)만 살아남았습니다.  왕위를 이을 남자아이가 필요했던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재혼을 결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이 필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혼을 하려면 로마의 교황의 승낙이 필요했는데 교황은 스페인과의 관계를 생각해 이혼을 불허합니다. 첫 번째 부인이 스페인 공주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헨리 8세가 이혼하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독립을 하는 길 뿐이었습니다.  1534년 헨리 8세는 자신을 영국교회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우리에게 성공회로 알려진 영국식 개신교회를 세웁니다. 순전히 대를 이를 아이를 얻기 위해 택한 이 결정은 훗날 영국에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오는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입니다.     


  

                   엘리자베스여왕 1세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재혼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아들은 못 얻고 딸 한 명(훗날 엘리자베스 1 세)만을 보게 됩니다. 왕의 재혼은 3년 만에 파경을 맞이하고 두 번째 부인 앤은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영화 『천일의 앤』보시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 헨리 8 세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첫 번째 부인의 소생인 메리가 집권합니다. 가톨릭신자였던 메리는 영국 국교를 가톨릭으로 원위치 시키려했고 이를 반대하는 수많은 개신교도를 무자비하게 탄압합니다. 1558년 메리가 집권 5 년 만에 사망하자 메리의 이복동생이자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 세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자 전세가 역전됩니다. 엘리자베스 1 세가 철두철미한 영국 개신교신봉자였기 때문이죠. 이제 가톨릭계 왕족귀족들이 처형당하고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이런 박해를 목격한 가톨릭계 스페인은 격노합니다. 영국을 가톨릭의 영향 하에 두려는 스페인 국왕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동원 영국 공격을 준비합니다. 1587년 스페인의 전쟁계획을 알아챈 영국이 이듬해에 스페인 함대에 선제공격을 시작합니다. 영국과 스페인의 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에드먼드 스펜서가 태어납니다.  1552년 영국런던에서 출생한 스펜서는 캠브리지에서 교육을 받고 1578년 엘리자베스여왕 궁전에서 일하는 한 귀족의 비서로 취직을 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집권 20년 차이지만 반역죄로 참수당한 앤의 딸이라는 점과 로마의 교황을 인정 안하는 그녀의 정책으로 인해 영국 왕실은 안팎으로 잠잠할 날이 없었습니다. 가톨릭계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는 자신의 군주 엘리자베스 여왕 1세를 위해 에드먼드 스펜서가 할 일은 자명해 보였습니다. 영국의 안위를 끊임없이 흔드는 로마 교황파를 물리치고 프로테스탄트 신봉자인 여왕에 충성을 바치며 헨리 8세가 시작한 영국 개신교회를 수호하는 일입니다. 그는 총이나 칼 대신 펜을 들고 가톨릭과의 전쟁에 뛰어듭니다. 이렇게 탄생된 작품이 오늘 만나보게 될 『요정여왕』(1590-1596)입니다. 문학의 형식을 빌렸지만 엄밀히 말하면 체제 수호를 위한 선전시입니다. 에드먼드 스펜서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버질의『아에네이드』를 계승할 위대한 크리스천 에픽을 꿈꾸며 총 24 권을 계획하였으나 그가 일찍 죽는 바람에 6 권만을 완성하는데 그칩니다. 우리는 이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 받는 1 권을 위주로 살펴볼까 합니다.     

   

  



 『요정여왕』은 붉은 십자가란 이름의 한 기사의 모험을 다룬 알레고리입니다. 주인공 기사가 모험 도중 여러 적을 만나 영적인 그리고 육적인 시험에 들며 좌절과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며 영적인 성장을 이루고 마침내 용을 처단하고 승리의 영광을 쟁취합니다. 전형적인 기사 모험 로망스의 패턴입니다. 그러나  이 알레고리의 표면 아래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간추려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한 점잖은 기사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립니다.

강력한 무기와 은색 방패로 무장하고


그러나 그의 가슴엔 붉은 십자를 품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주님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위대한 모험을 떠나야만 합니다.

요정나라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여왕이신

위대하신 그로리아나가 주신 임무입니다.  


말을 타고 길을 떠난 이후 늘 기사는

자신의 용맹과 새롭게 얻은 힘을

그의 적, 끔직하고 강력한 용인 그의 적과의

용감한 싸움에서 증명하길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곁에는 사랑스러운 우나 공주가  

눈보다 더 하얀 낮은 나귀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피부는 눈보다 더 하얗습니다.

. . .


그녀는 수심에 가득찬 듯 보였습니다.

그녀 옆에는 줄에 이끌려 우유처럼 하얀 양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Canto 1: 1-4)


이 시작부분을 잘 읽어보면 용의 공격을 받고 있는 우나 공주의 부모님과 나라를 구하는 임무가 결국 영국교회를 수호하라는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요정 여왕은 엘리자베스여왕 1 세이며 신화 속의 땅은 영국입니다. 붉은 십자가 기사는 당시 막 출범한 영국교회를 지지하는 개신교도를 대표하는 크리스천입니다. 그가 입은 갑옷은 에베소서의 말씀(6: 13)에 나오는 악의 영을 대적하기 위해 신도가 착용해야하는 정신적인 전신갑주입니다. 우나 공주의 이름은 하나(oneness)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며 진실도 하나뿐입니다. 공주는 유일한 진실의 대표자입니다. 그녀가 탄 낮은 노새는 겸손을 그리고 데리고 가는 하얀 양은 그녀의 순결과 희생정신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런 모습은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노새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들어갈 때 타고 간 동물이며 하얀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 1:29)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나공주의 이미지를 종합해보면  공주는 영국 유일의 진실된 교회 즉 성공회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지금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그녀 아버지의 왕국이 용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용은 영국 교회를 인정 안하는 가톨릭교회를 상징합니다.

  

 


   기사 일행이 용을 처단하러 가는 도중 만난 모든 적들은 사실 용을 추종하는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교도들입니다. 기사 일행이 처음 만난 적은 실수(Error)라는 이름의 괴물입니다. 일행은 가는 도중 비를 만나고 이를 피하려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있는 어두운 동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나는 위험을 직감하고 기사에게 들어가지 말 것을 권유하나 호기심 많고 용감한 기사는 잘 다져진 길을 따라 겁 없이 동굴에 진입합니다. 이 동굴에는 신과 인간이 모두 혐오하는 반은 여자이고 반은 용인 괴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천마리의 작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습니다. 둘은 곧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일전을 벌입니다. 괴물은 꼬리를 이용하여 기사를 칭칭감아 압박을 하고 기사는 두손으로 괴물의 목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괴물이 견디다 못해 위장에 있던 시꺼멓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물질들을 토해 냅니다.  그 중에는 책과 서류 그리고 개구리와 두꺼비 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기사는 마지막 온힘을 다해 괴물의 머리를 절단내고 처음 만난 적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실수라는 이름의 괴물은 이미 영국에서 자리를 잡은 로마 가톨릭 세력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 어두운 동굴은 영국전역에 있던 가톨릭계 수도원을 뜻하고 괴물이 품고 있던 수천마리의 작은 새끼들은 가톨릭교도들을 가리킵니다. 동굴로 이르는 길이 잘 다져져있다는 말은 따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괴물이 싸우는 도중 토해낸 물질 중 책과 서류는 가톨릭교회 선전 책자이며 집회 안내 브로슈어입니다. 개구리와 두꺼비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동물로 하나님 명령에 거역한 벌로 내리는 7 대 재앙 중의 하나입니다. 기사의 몸을 칭칭감고 있는 꼬리와 그를 움켜진 발톱은 영국이 아직도 가톨릭의 세력 하에 신음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스펜서가 이 괴물을 실수라고 명명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영국인들이 아직도 가톨릭을 계속 고집하는 건 실수라는 뜻입니다.  거의 천년 간 세월에 걸쳐 영국인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가톨릭교회가 정권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영국인의 실수로 매도당합니다.         


   기사 일행은 만난 두 번째 적은 마법사 아치마고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악당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검은색의 기다란 옷을 입고 있는 나이든 현자였습니다.   

그의 발은 맨발이었고 그의 긴 수염은 잿빛이었습니다.

그의 허리띠에는 책이 묶여 매달려 있었고

그의 눈은 낮게 땅을 향했고

단순한 모습이며 나쁜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는 동안 내내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마치 회개하는 듯 종종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겼습니다.  (Canto I : 29)


전형적인 종교적 은둔자의 모습이나 실상은 가톨릭교회의 수장 로마의 교황입니다.  

먼저 이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치마고 (Archimago) 는 아치 (arch) 와 이미지 (image) 의 합성어로 이미지의 대가라는 뜻입니다.  그럴듯한 이미지로 위장하여 상대방을 현혹한다는 말입니다. 긴 잿빛 수염에  허리 벨트에 책을 묶어 놓고 맨발로 다니며 회개하듯 가슴을 친다는 표현은 전형적인 가톨릭 수도승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이는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이미지 메이킹일 뿐입니다. 그는 거짓 이미지를 사람 마음 속에 심을 수도 있는 마법도 부립니다. 또한 이 이미지는 가톨릭 교회를 상징합니다. 유럽의 성당은 성화나 장식된 조각품 그리고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그라스 등 각종 종교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톨릭이 지나치게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때 보석같이 아름다운 스테인드 그라스에 주님의 형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칭찬하던 문인들이 이제는 같은 창문을 보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이미지라고 공격을 합니다.      

   

   주인공 기사가 만난 세 번째 적은 거인 오고글리오로 엄청난 크기의 몽둥이를 휘두르는 폭군입니다. 하나님께 반기를 든 사탄 루시퍼같은 괴물입니다. 엄청난 몸집의 괴물은 성경이나 신화에서 늘 악당 역입니다. 하나님의 전사 소년 다윗과 싸운 골리아스 제우스의 권위에 반기를 든 타이탄 모두 거인들입니다.  영국의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고글리오는 스페인의 왕 필립 2세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동원 영국과 해전을 명령한 군주로 가톨릭의 수호자이며 영국개신교회의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주인공은 거인 오고글리오와 만나 용감하게 싸우지만 처참하게 패하고 맙니다. 이미 꽃뱀에게 영적 육적으로 털려버린 후였기 때문입니다. 기사는 그의 포로가 되어 굴에 갇히게 됩니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우리의 주인공. 그러나 그에게는 우나 공주가 있었습니다. 우나 공주가 아서 왕자에게 도움을 청했고 거인 오고글리오는 아서 왕자의 칼에 쓰러집니다.  아서 왕자는 예수님입니다. 크리스챤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타나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모험도 혼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굴에서 구출된 기사는 우나의 도움으로 성스러운 집에 옮겨져 기력을 회복을 한 후  가톨릭 세력의 총 사령관 격인 용과의 일전을 벌입니다. 3일간의 격렬한 싸움 끝에 마침내 사탄의 대장을 죽이고 승리합니다. 적을 물리치고 우나 공주와 결혼으로 나라는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 1 권의 끝에 아치마고가 아직 건재함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교회의 입장에서 가톨릭계의 총수 교황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요정여왕』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영국국교인 성공회가 적으로 규정한 가톨릭의 악마화입니다. 작가의 종교적 신념에 의한 일인지 아니면 여왕의 총애를 받기위한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에드먼드 스펜서는 이 시를 쓴 공로를 인정받아 년간 50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의 연금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하사 받았다고 합니다.

(현대식 개념으로는 야당을 공격하는 정부의 홍보수석인 셈이며 이들의 공로는 보통  연금대신  공기업 이사자리로 보상하죠 .) 그러나 가톨릭교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탄의 총수는 엘리자베스 여왕 1 세이며 그의 하수인은 에드먼드 스펜서입니다. 헨리 8세가 단지 아들을 얻기 위해 선택했던 교황과의 결별. 이로 인해 야기된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와의 전쟁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줍니다. 정치와 종교는 결코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무자비한 진압 뒤에는 신정일치를 추구하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종교단체들이 있습니다. 정치에 훈수 두는 사이비 종교인도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정치가 종교와 결합하여 생기는 건 죽음의 칵테일뿐입니다. 종교적인 신념에 총과 칼을 장착하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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