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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an 19. 2023

『돈키호테』 (2) :  은수저와 환타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표현의 출처로『돈키호테』가 지목되곤 하는데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맞는 정보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돈키호테』의 영어번역판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돈키호테의 하인 산초가 그의 와이프 테레사와 대화하는 가운데 나옵니다. 산초의 아내는 돈키호테와 같이 모험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총독은 커녕 떠돌이 노숙자 같다고 놀리자 산초가 이렇게 응답합니다. “세상엔 베이컨이 꼽혀있지 않은 나무 꼬챙이도 있는 법이야.” 그러나 영국의 번역자 피터 앤소니 모토는 이를 영국 표현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옮깁니다.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지.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도 않아요. (’tis not all Gold that glitters, and every Man was

     not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 (1949)



영국 귀족집안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세례 시 은수저를 선물하는 전통에서 비롯된 이 표현은 이제 계급 사회를 지칭하는 메타포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번역가가 산초의 대답을 은수저로 번역한 이유도 이 소설이 스페인의 계급사회의 갈등과 폐단을 다루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은수저는 계층을 나타내는 대표적 은유로 가진 자들에 대한 흙수저(영어로는 플라스틱수저)들의 부러움과 반감이 섞인 표현입니다.『돈키호테』(1604) 1 부가 출간된 지 8년 만에 출간된 『돈키호테』(1612) 2 부. 1 부가 돈키호테의 불가능한 꿈에 대한 이야기라면 2 부는 주로 무능하고 부패한 스페인 은수저 계급에 대한 공격과 비판입니다.

     

   『돈키호테』 2 부 스토리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2 차 모험을 떠납니다. 돈키호테는 이 모험에서 불멸의 여인 토보소의 덜시니아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는 산초에게 덜시니아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산초는 덜시니아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산초는 길에서 당나귀를 타고 오는 세 명의 시골처녀를 만나자 주인을 속이기로 맘을 먹습니다. 보스에게 호박 같은 시골처녀 중 한 명이 바로 덜시니아라고 속인 겁니다. 이 말에 가슴이 무너진 돈키호테는 덜시니아가 사악한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추녀로 변한 거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길 위에서 몇 차례의 사건을 경험한 후 공작과 공작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매일 무료한 시간만 보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돈키호테와 산초는 너무나 반가운 손님입니다. 공작부인도 기사 로망스의 광팬으로 미친 짓으로 유명해진 돈키호테와 산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공작부부는 그 둘을 자신들의 성으로 초대합니다. 목적은 단 한 가지. 돈키호테와 산초를 골탕먹이면서 즐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공작 부부는 손님들을 자신들의 궁에 머무르게 하면서 하인들로 하여금 기사에 걸 맞는 대접을 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공작부인은 돈키호테가 머리가 돈 가짜 기사임을 알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진짜 기사임을 믿도록 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공작부부의 장난은 단순한 놀리는 수준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아주 치밀한 각본을 짜고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여 수많은 하인들을 동원하며 각종 소품 (말, 가짜 마법사 의상, 소 달구지 등)까지 준비하여 완벽하게 돈키호테와 산초를 속이며 곤경에 빠뜨리는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입니다. 공작부부는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멧돼지사냥을 나가자고 하는데 이 사냥에서 우연히 머린이라는 마법사를 만나게 만듭니다. 사실 이 마법사는 공작부인의 명을 받은 궁의 하인입니다. 하인은 각본대로 돈키호테에게 덜시니아의 마법을 풀려면 산초가 옷을 벗고 스스로 등을 3,300 번 채찍질을 하면 된다고 말을 합니다. 산초는 이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간의 총독임명에 대한 약속을 알고 있었던 공작부인은 산초를 설득합니다. 스스로 채찍질을 하여 덜시니아의 원래 모습을 찾아준다면 산초가 원하는 총독 자리를 주겠다고 한 겁니다. 이 말에 속아 넘어간 산초는 스스로 매를 들어 자신에게 삼천번의 매질을 가합니다. 공작부부는 약속대로 산초를 한 섬의 총독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공작부부가 치밀하게 계획한 각본에 의한 가짜 총독 자리였습니다. 산초는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통치를 잘해 섬 주민들을 놀라 게 만듭니다.   

   

 


  공작부부의 성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고 판단한 돈키호테는 다시 산초와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합니다. 돈키호테는 길에서 만난 하얀 달이라는 이름의 기사와 마상전투를 벌입니다. 패자는 기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조건이 걸린 대결입니다. 사실 하얀 달 기사는 돈키호테의 이웃인 삼손 카라스코였으며 그는 이 방법으로 돈키호테의 미친 짓을 끝내고자 한 겁니다. 돈키호테는 이 싸움에서 패해 말위에서 떨어진 후 약속대로 기사를 포기하고 귀환합니다. 집에 오자마자 열병을 얻어 생을 마감합니다. 돈키호테는 죽으면서 산초에게 그동안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경제적 보상을 해줍니다. 또한 그의 여 조카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남기며 이런 유언을 합니다. 만일 내 조카가 결혼한다면 기사도를 전혀 모르는 청년이어야 하며 만일 그가 기사도에 관한 책을 한권이라도 읽었다면 내 조카는 재산을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한다. 돈키호테의 묘비명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는 살아서 미친 사람이었지만 죽을 때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    

  

   『돈키호테』2 에는 스페인 은수저 계층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는 세 부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모두 환타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가난한 빈농 출신의 산초는 은수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돈키호테의 수행 비서직을 완강하게 거절하다가 돈키호테가 그를 한 섬의 총독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자 맘을 바꿉니다. 드디어 자신의 환상을 실현시킬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겁니다. 산초는 이 약속을 받자마자 아내에게 달려가 마치 총독이 된 듯 신나서 딸을 상류층 출신 남자에게 시집을 보낼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딸에게 귀부인(Ladyship)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겠노라고 공언을 합니다. 그러나 남편보다 현명한 산초의 아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딸은 같은 계층의 남자를 만나야 더 행복하다는 거죠. 늘 짓 밟혀 살던 산초의 의식 속에 은수저를 향한 욕망과 환상이 잠재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목표를 위해 돈키호테의 수행비서가 되기로 결심한 산초는 자신이 총독이 되기 위해서는 모시는 주인이 계속해서 기사의 환상 속에서 살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길에서 만난 추녀를 덜시니아라고 속이는 산초의 거짓말은 자신의 꿈을 위해 보스의 미친 짓에 장단을 맞추는 격입니다. 또한 그는 총독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몸에 삼천번을 채찍질을 하라는 공작부부의 제안도 받아드립니다.  그렇게 거짓말도하고 자신에게 매질까지 하며 자신이 원했던 한 섬의 총독의 자리를 얻지만 이는 공작부부가 만든 몰래 카메라 속의 가짜 총독입니다. 결국 산초의 가짜 총독생활은 그로 하여금 은수저 계층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됩니다.

  

 


   돈키호테의 환타지는 기사의 세계입니다. 그는 스스로 만든 환상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 스스로 기사라고 믿고 있으며 행동도 기사를 흉내 냅니다. 기사는 불의에 분노하며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악을 목격하면 지체없이 창을 세우고 돌진합니다. 그러나 겉모습(악한 거인)과 실제(풍차)를 구분을 못해 곤경에 빠집니다. 길에서 한 농부에게 매를 맞는 어린아이를 목격한 돈키호테. 그는 아이를 구해주려 매질을 당장 멈추라고 명령을 내린 후 떠납니다. 그러나 농부는 돈키호테가 떠난 후 아이를 더욱 더 모질게 매질을 합니다. 그는 의롭게 행동하지만 결과는 늘 신통치 않습니다. 또한 기사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모험 중 돈키호테와 산초가 식사 초대를 받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자 주인과 함께 앉아 식사하기를 꺼리는 산초에게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고귀한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자리에 나는 그대가 내 옆에 앉기를 바라네.

       자네는 자네의 주인이자 귀족인 나와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네. 내가 사용하는

       똑 같은 접시로 먹고 같은 컵으로 마셔야 하네. 그래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나의 기사도 정신을 경험할 수 있지 않겠나? (1861)    



산초는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다면 혼자 먹어도 상관없고 서서 먹어도 상관없다고 거절합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산초를 기어이 옆자리에 앉혀 식사를 하게 합니다. 돈키호테는 산초뿐만 아니라 다른 하층민에게도 똑 같이 대합니다. 기사는 한 여성만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돈키호테의 여성은 완벽한 미를 소유한 덜시니아입니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돈키호테는 이 여인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는 모험 중 만난 아리따운 알티시도라라는 여성의 구애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덜시니아에게 자신의 사랑을 바치기로 맹세한터 이 여인의 사랑을 받아 드릴 수 없습니다. 기사도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가짜 기사 돈키호테가 사는 환타지의 세계는 정의롭고 평등하며 진실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모험을 마치고 귀환하자 곧 병이 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돈키호테에게 환타지가 사라진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스페인의 최상류층을 대표하는 공작부부의 환타지는 철저하게 조작된 몰래 카메라로 충족됩니다. 돈은 많은데 일할 필요 없어 시간 많은 재벌 2, 3 세들이 마약에 빠지듯이 공작부부는 자신들이 조작하고 조종하는 장난의 세계를 탐닉합니다. 이 공작부부는 자신들이 즐거울 수만 있다면 어떤 물적인 인적인 대가를 치르던 상관없습니다. 보유 재산은 차고도 넘치며 공작부부의 성에 사는 하인은 그저  주인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소품에 불과 할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곤경에 빠뜨린 후 어려움에 쩔쩔매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보고 즐거워합니다. 게다가  산초를 한 섬의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조건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에 3300 대를 때리게 만드는 장면은 이 공작부부가 얼마나 잔인하며 가학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들은 하인들의 자식 결혼 상대까지 당사자가 싫던 좋던 상관없이 마음대로 정해주고 지시에 따를 것을 강요합니다.  거스르는 행동을 하거나 불복종의 기미가 보이면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즐기는 재미로 사는 공작부부는 사실 돈키호테보다 더 미친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짜 기사의 환타지에는  정의와 도덕이 살아 있는데 진짜 귀족의 판타지에는 명예도 도덕도 없으며 있는 건 오로지 조작과 사기 그리고 피해자의 눈물과 가해자의 웃음뿐입니다.

   

   『돈키호테』2 부를 읽고 나면 스페인의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계층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대패한 후 점차 내리막을 걷는 스페인의 상황을 목격한 직후에 나온 작품임을 감안해 볼 때 작가는 조국 스페인의 실패 뒤에 바로 공작부부와 같은 백해무익한 은수저 계층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스페인과 영국의 전쟁 발발  4 년 뒤에 벌어진 임진왜란(1592) 후에 집필된 유성룡의 징비록(1633)이 생각납니다.  유성룡 또한 조선의 참패와 굴욕의 원인으로 무능한 선조와 그 밑에서 권력을 누리며 호의호식하던 양반 계층을 지적하지 않았나요? 이렇게 무능한 지도자와 지배계층은 나라를 순식간에 말아먹습니다. 그 피해는 세금 꼬박 꼬박내고 내고 열심히 생업에 종사한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2023 년의 대한민국의 지배계층을 생각해보면 왠지 선조시대의 조선으로 돌아간 거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공작부부 같은 지배계층이 조작하고 즐기는  몰래 카메라 같은 세상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돈키호테』2 부의 마지막에 이 소설 1, 2 부 전체에 대한 핵심 메시지가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임종을 앞둔 돈키호테는 곁에 있던 산초에게 자신의 미친 짓에 동참시켜 미안하다고하며 용서를 구하자 산초는 울면서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 주인님, 죽지마세요. 제 말씀 들으시고 앞으로 몇 년 더 같이 삽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미친 짓은 별 좋은 이유 없이 죽는 겁니다. 우울증으로

       죽은 겁니다. 게으르게 누어있지 마시고 침대에서 일어 나세요 나가서

       우리가 합의 한 대로 목동처럼 옷 입고 들판으로 나갑시다. 혹시 알아요?

       저 숲 뒤에 마법에 풀린 레이디 덜시니아를 만나게 될지. 패배가 걱정되어서

       죽는 거라면 저를 탓하세요. 당신이 말에서 떨어진 건 내가 말의 안장벨트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서 라고 저를 탓하세요. 기사끼리 싸우다 한 기사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 아주 흔한 일이죠. 책을 많이 읽어서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오늘

       지는 사람이 내일은 승리자가 될 거예요. (1954)    



기사의 판타지가 사라진 돈키호테에게 남은 건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현실적인 산초도 돈키호테가 추구했던 환타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이상과 환타지는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입니다.  

   

   돈키호테가 추구했던 환타지 같은 세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1600년대의 스페인에서는 오직 돈키호테처럼 미친 사람만이 꿈 꿀 수 있는 세계였을 겁니다. 온전한 사람이였다면 종교 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했을 겁니다. 400년이 지난 2023 년의 대한민국. 돈키호테가 꿈꾸었던 세계는 정신이 멀쩡하고 종교재판도 없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환상같은 세계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은 산초처럼 그런 세계에 대한 환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정의롭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서로 사랑하고 공감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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