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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Feb 22. 2023

『파우스투스 박사』: 파우스트형 인간 탐구

   1593년 영국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개념의 인간이 탄생합니다. 바로 사탄형 인간 파우스투스 박사입니다. 탄생연도로 계산하면 정확히 돈키호테와 햄릿의 10년 선배입니다. 돈키호테는 행동형 이상주의자, 이타주의자로 인간사회의 윤리를 중시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여인을 사랑하고 세숫대야와 기사의 투구를 구분 못하는 비정상 뇌를 소유한 코믹 히어로입니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햄릿은 내향적인 사고형이며 치밀한 분석가입니다. 그는 늘 자신이 우선인 에고이스트로 여성에 대한 사랑도 거부하고 매사 부정적이며 진실에 대한 믿음도 부족한 회의론자입니다. 르네상스 문학이 배출한 또 다른 유형의 인물이 있습니다. 파우스트형 인간의 원조 파우스투스 박사입니다.  

    

   파우스투스 박사의 모델은 15세기 독일 전설의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입니다. 그는 그 당시 무한한 지식과 쾌락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도덕적 타락을 비롯하여 어떤 짓도 불사한다는 의미의 형용사 파우스티언(faustian)을 만들어낸 장본인입니다. 이 독일 전설을 바탕으로 쓰여진 유명한 희곡이 두 편이 있습니다. 한 편은 1829년에 발표된 독일 태생의 작가인 괴테의 『파우스트』이고  또 한 편은 1593년에 발표된 영국 출신의 극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파우스투스 박사가 겪는 삶과 죽음의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파우스투스 박사의 인물을 탐구합니다.  

   


   막이 올라가면 등장하는 일 인 코러스. 그는 파우스투스 박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파우스투스의 어린 시절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독일의 로데스라는 지역의  

평범한 흙수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들자 그는 휘튼버그 대학교에 진학했고  

그는 친척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곧 신학에 발군의 성적을 보였고

그의 학문은 훌륭한 성과를 이룩했죠

그 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신학에 관한 논쟁을 즐기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에 관한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고

교만으로 똘똘 뭉친 그는 자신의 지식에 대한 넘치는 자부심으로  

밀납으로 만든 날개로 그의 한계를 넘는 곳까지 날아 올라갔으나   

하늘은 그의 날개를 녹여 버려 그를 추락시켜버렸죠.  

그는 악마의 놀음에 심취했습니다.    

황금 같은 학문적 재능을 지닌 그가

저주받은 마법에 탐닉하고 있으니  

그에게 마법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으며   

자신의 구원의 문제보다 마법을 더 즐기고 있네요 (서막, 10-28)  


파우스투스 박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사람으로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입니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태어난 머리 좋은 용입니다.  그러나 그는 상서로운 동양의 용이 아니고 성경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사탄인 붉은 용입니다. 그가 졸업한 위튼버그 대학교는 햄릿과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가 다녔던 대학교입니다. 덴마크의 왕자와 독일의 성직자는 둘 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는 성격임을 감안해 볼 때 파우스투스 박사 역시 반항적인 성향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게다가 그는 교만합니다. 명문대학교를 박사로 막 졸업한 25 가량의 젊은 청년인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는 스스로 신학, 논리학에서 비교 거부의 빌리언 달러 스칼러 임을 자랑합니다.  그의 내가 제일 잘 나가 식의 지나친 자랑은 그가 얼마나 오만한지 보여줍니다. 오만함은 사탄의 성격으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칠대 대죄 중 첫번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에 대한 언급은 이 극은 비극으로 진행될 것이며 그 뒤에는 주인공의 교만한 성격이 자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코러스가 나가고 이제 우리의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는 제일 잘나가는 학자이지만 학문에서 만족을 못 느낍니다. 잘 나가도 불만이면 도저히 행복해지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공부 자체가 싫어진 건지 학문으로 얻는 이익과 즐거움이 성에 안 차는 건지 어쨌든 파우스투스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며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는데 바로 마법입니다. 서막에 사탄을 닮았다고 묘사된 파우스투스 박사가 이제 서서히 사탄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마법을 천상의 학문으로 부르는 그의 독백을 들어봅니다.   


이것이 파우스투스 박사가 가장 원하는 것들이니

돈도 벌고 기쁨도 누리고   

권력과 명예와 그리고 전능이

부지런한 예술가에게 주어지노니

조용한 양극점 사이를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내 명령 하에 놓이고 황제들과 왕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만 지배자이지만

그러나 나는 이 영역의 한계를 넘어서

내 마음 닿는대로 넓어지니   

건전한 마법사는 거의 반 신 급이니

신이 되도록 도전해보자   ( 1 장, 66-77)   



신의 위치에 도전장을 던진 파우스트 박사의 모습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의 루시퍼와 닮은꼴입니다. 신이 되고자 하는 파우스트 박사의 목적은 철저하게 이기적입니다. 그의 소원은 그저 재물, 쾌락, 그리고 권력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진실추구, 악의 퇴치, 정의실현이란 단어가 자리할 약간의 틈조차 없습니다. 마법에 마 자도 모르는 파우스투스지만 마법을 쓸 생각을 하니 벌써 흥분부터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대령하라고 시킬까?

모든 수수께끼를 해결해달라고 할까?

나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볼까?

그들을 인디아로 보내 금을 가져오라고 할까?

동양의 진주를 찾도록 바다를 뒤지라고 할까?

그리고 신대륙을 전부 뒤져 . . .  그들이 가져온

코인으로 군인들을 모집할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파르마 왕자를 내쫓을까?

그리고 모든 지역을 왕처럼 지배할까? ( 1 장, 107-122)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망토를 얻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남자 고등학생의 마음입니다.

    

   파우스투스 박사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악마를 부르기 위해 친구인 발데스와 코넬리우스로부터 마법을 배웁니다. 여기서 마법이란 악마를 불러내기 위한 주문을 말합니다. 그 주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원문은 라틴어이지만 영어번역을 참조했습니다.


지옥 강의 신이시여 제게 호의를 베푸소서.

삼위일체의 여호아시여  제게서 멀어지시고

동방의 왕자 빌지법, 불타는 지옥의 왕이신 디마고곤이시여

제게 호의를 베푸사   메피스토텔레스가 나타나도록 도와주소서 (3 장, 17-25)



아담과 이브 이래 늘 수동적인 위치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아왔던 인간. 르네상스시대가 되자 이제 인간은 적극적으로 악마인 메피스토텔레스를 불러냅니다. 자신의 야망을 채우고자 악마를 찾는 인간 그 역시 메피스토텔레스과에 속하는 악마입니다. 그는 악마답게 악마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압니다.  


내가 하늘의 별만큼 많은 영혼을 소유할 수 있다면

난 그 별들을 모두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줄 것이다.

그에 의해 나는 세계의 황제가 될 것이다. (3 장, 138-140)



   그는 악마로부터 24 년간 “뭐든지 원하는 대로 서비스”를 받고 영혼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계약 체결 후 파우스투스 박사의 첫 질문입니다. “제일 먼저 지옥에 대해 물어 보겠다. 사람들이 지옥이라고 부르는 장소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파우스투스의 제일 관심사를 반영합니다. 그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언제나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악마와 손을 잡았으니 이제 지옥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겁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메피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늘아래가 지옥이지. 내가 저주를 받았고 그리고 나는 지금 지옥이 있으니 내가 그 예이다.” 뜻 밖의 대답에 파우스투스는 놀랍니다. 그는 “이곳이 지옥이라고? 이곳이 지옥이라면 난 기꺼이 저주를 받겠다.” 고 반응합니다. 우리는 메피스토텔레스의 “악마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는 대답은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악마가 위치한 곳을 생각해보면 바로 파우스트 박사의 서재입니다. 그러니 파우스투스 박사도 이미 지옥에 있는 셈입니다. 이 의미는 지옥은 정신적인 상태임을 암시합니다.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 신의 위치에 도전하는 자세. 악마를 불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성경과 구세주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내용의 주문을 외우며 인간의 영혼을 악마에게 바칠 생각을 하는 파우스투스 박사는 이미 지옥에 있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사는 곳도 우리의 정신 상태에 의해 지옥이 될 수가 있다는 뜻이죠. 그러나 대학교를 갓 졸업한 25세 정도의 사회 초보자인 파우스투스 박사는 지옥은 신화의 산물이라며 무시해 버립니다.

  

    세계의 황제가 될 생각을 하며 악마의 서비스를 얻었지만 그 이후의 파우스투스 박사의  삶은 육체적 쾌락과 의미 없는 장난과 유희의 나날에 불과 합니다. 그는 악마에게 독일에서 가장 이쁜 처녀를 아내로 달라고 요구를 하고 또한 함께 유럽여행을 가서는 악마의 힘으로 투명인간이 되어 교황청에 가서 교황에게 귀싸다귀도 날리고 음식도 훔쳐 저녁 만찬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기원전 4 세기의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이미지도 불러내고 트로이전쟁을 일으킨 헬렌의 모습도 재현시키는 등 나름대로 마법사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그의 머리에 사슴뿔이 돋아나게 만들게 만들고 여행 중 만난 말 장사의 말을 모두 지푸라기로 만드는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신의 위치에 도전한다고 했지만  막상 악마의 힘을 빌리게 되자 얻은 지식은 이미 자신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며 한 일이라곤 하나같이 자신의 쾌락이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요구들이 전부입니다. 길 것만 같은 24년의 시간은 이제 빠르게 흘러 루시퍼와의 거래의 종료시점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파우스투스 박사는 그의 머지않은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거래 종료전날 공포와 후회로 어찌할 바를 모른 던 그는 악마의 자비를 구해보지만 때는 너무 늦었죠. 자정이 되자  한 무리의 악마들이 나타나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아침에 학자들은 파우스투스 박사의 시신을 발견하곤 그의 장례를 치러 줍니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서로 정반대의 성격과 성향을 보이지만 우리가 공감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둘은 뒤틀린 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돌진하며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그 문제에 대한 둘의 인식이나 접근법, 해결책만 다를 뿐 보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꿈과 의지의 소유자들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파우스투스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 쾌락 그리고 지적 호기심이 전부입니다.  철두철미 자신 만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의 끝판왕으로 그 누구와도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가련한 인물로 우리의 공감은 커녕 연민조차 아깝습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악마의 힘을 빌리는 파우스투스 박사의 후예들인 파우스트형 인간들. 우리가 지금 이 시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좋은 머리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최고의 대학교에 들어가 경제학 인문학 혹은 법학을 공부하고 졸업하는 청년 시절의 파우스투스 같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계나 언론계 사법계, 혹은 정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경제 정의와 약자를 위한 배려 그리고 사법 정의를 구현하겠노라는 웅대한 포부를 품었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공모하고 결탁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메피스토텔레스 역할을 해 줍니다. 거창한 꿈은 어느새 퇴색되고 고급 아파트에 살며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골프코스에서 룸살롱에서 쾌락과 유희를 즐기는 중년의 파우스투스 박사로 변모해 갑니다. 그러나 현대판 파우스트 형 인물들은 실속은 실속대로 챙기고 지옥도 가지 않은 글자그대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메피스토텔레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언 터쳐블 기관에 소속된 탓입니다. 파우스트 형 인간들이 만든 파우스트 형 기관의 힘 덕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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