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꼭또 Nov 13. 2023

『위대한 유산』: 속물과 신사 (2)

     이웃을 경멸하는 자는 속물이다. 친구를 기억 못하고 높은 곳만 쫓아가는

     자도 속물이다. . . . 자신의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의 직업에 얼굴을

     붉히는 자도 속물이고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자 역시 속물이다. (『속물열전』(1848) 윌리엄 쌔커리 )



   속물은 영어로 스놉(a snob)입니다. 속물(스놉)의 사전적 정의는 “상류층, 권력층, 부유층에게는 과하게 아첨하며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고 교육수준이 낮거나 돈 없는 하류층은 경멸하고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학교의 이름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재물의 유무가 인간의 가치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며 사실 다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스놉의 현대적 정의를 처음 내린 사람이 있습니다.『속물열전』(The Book of Snobs) 쓴 19세기 소설가 윌리엄 쌔커리(1811-1863)입니다. 자신도 속물임을 밝히고 있는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온갖 종류(도시 스놉, 시골 스놉, 군대 스놉, 대학 스놉 등)의 속물들을 소개합니다. 영국에 속물이 창궐하는 이유? 그는 영국의 귀족제도의 영향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영국인들은 귀족의 인간적인 면모보다 귀족의 타이틀과 그들의 재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고 꼬집으며 바로 이런 귀족숭배가  영국의 평민이나 귀족들 모두를 속물로 만들고 속물을 권장하며 또 속물로 남고 싶어하는 현상에 공헌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쌔커리는 책의 결론부분에서 스놉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의 정직한 영어 어휘의 일원이 되었다고 쓰며 이렇게 주장합니다.  “영국의 마인드는 스놉의 주제에 눈을 떠야 한다.” 그는 전부 대문자로 표기한 이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며 영국인들로 하여금 스놉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늘 영국사회에 있어왔던 스놉이지만 역사상 처음 이제 속물은 영국인이 경계해야 할 일종의 “적” 으로 부각됩니다.   

  


   “스놉은 우리의 적”이란 개념은 『위대한 유산』(1861)에서 반복됩니다. 소설의 메인 캐릭터 핍, 에스텔라, 미스 하비샴 모두 스놉이요 속물들입니다. 이제 속물들도 (그들의 평범성에도 불구하고 속물이라는 이유로)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온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만나는 속물 1 호 는 30 대 중반의 노처녀 미스 하비샴과 아홉살짜리 그녀의 양녀 에스텔라입니다. 양조장 재벌 집 딸 미스 하비샴은 거짓 사랑을 고백한 사기꾼 콤페이슨을 만나 한평생을 약속을 했지만 결혼식 날 약혼자는 안 나타나고 재산만 날리게 됩니다. 미스 비샴이 콤페이슨에게 사기당한 이유는 그녀가 사람의 내적인 면모보다는 신사의 겉모습을 중시한 속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콤페이슨은 잘생겼고 매력적인데다가 점잖고 부드러운 전형적인 신사의 매너와 에티켓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위조를 통한 금융 전문사기꾼입니다.  젠틀맨같은 그의 모습과 태도 그리고  말씨는  많은 사람들을 사기치는 데 훌륭한 미끼 역할을 합니다. 그가 미스 비샴에게 던진 거짓 사랑의 고백은 개장수가 개에게 던진 살점이 넉넉히 붙은 뼈다귀나 다름없었습니다. 결혼식이 파탄 난 이후 충격에 빠져 심리적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녀가 살아야 할 이유는 “아무 놈이나 걸리기만 해”식의 남성을 향한 복수뿐입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에스텔라를 양녀로 들인 후 그녀를 남자를 향한 자신의 한을 풀어줄 비장의 병기로 키웁니다. (미스 하비샴은 여성에게 몇 번 무시당한 후 여성을 증오하여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주범같은 캐릭터입니다. 다른 점은 미스 하비샴은 복수로 에스텔라의 미를 이용하여 남자를 유혹하고 버리게 만드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한 것뿐입니다.) 그런 미스 비샴의 양녀가 된 에스텔라.  선천적으로 타고났는지 미스 하비샴으로부터 속물교육을 받은 결과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홉 살짜리 에스텔라는 작품에 등장할 때부터 엄청난 속물포스를 자랑합니다. 이 두 여성 속물 앞에 이제 순진한 그러나 나름대로 속물기질이 풍부한 핍이 걸려들게 됩니다.

  


   소설의 시작에서 어린 핍은 탈옥수 매그위치를 도와준 일이 있었죠. 그 이후 그의 삶에 커다란 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한남동 더 힐 같은 부촌에 사는 재벌급 노처녀 미스 비샴이 어린 핍을 자신의 저택에 초대를 한 겁니다. 미스 비샴의 양녀 에스텔라 또래의 놀이친구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재벌급 노처녀가 초대를 해오자 가난에 허덕이던 핍의 누나는 부잣집에 놀러갔다가 혹시 동생 몸에 돈 부스러기라도 묻혀 오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핍을 단장시켜 미스 비샴 집으로 보냅니다. 누나와 매형과 살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서민 무시형 속물 미스 비샴과 에스텔라를 만난 후 핍의 의식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가진 건 돈 뿐이 없어 불쌍한 미스 비샴과 그녀의 양녀 에스텔라는 핍이 여태까지 “개돼지” 같은 삶을 살았음을 철저하게 일깨워줍니다.  에스텔라를 만난 후 핍은 이렇게 말합니다.



      난 정원에 혼자 있게 되자 나의 거친 손과 평범하기 그지없는 부츠를 쳐다

      보았다. 이에 대한 내 의견은 좋을 리 없었다. 전에는 전혀 거슬리지 않았건만

      지금 보니 천해 보여 심히 괴로웠다. 난 조에게 물어볼 작정이었다. 왜 네이브              라고  불러야하는 카드를 왜 잭으로 부르도록 가르쳤는지. 난 조가 좀 더 품격있는

      양육을 받았었으면 했고 나도 그렇게 길러졌었더라면 했다. (91-2)



비교대상이 없었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던 자신의 손, 신던 구두, 쓰던 어휘가 상류층에 있다 과시하는 속물들을 만나는 순간 비참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생 불행의 시작 바로 비교입니다.)  그리곤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갑자기 원망스럽습니다. 핍이 속물을 만난 후 자신 속에 숨어 있던 속물기질이 드러납니다. 가수 장기하씨는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 . .    

   

   에스텔라에게 망신만 당하고 돌아온 핍. 그러나 매력적인 에스텔라와 재벌집의 아우라가 너무 부러웠던 핍은 이제 자신이 생각해도 경멸스러운 자신의 개돼지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같은 고아 출신이자 친구인 비디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내 스스로를 비범하게 만들려면 비디가 아는 모든 지식을 전수받으면 된다.   

     밤에 웝쓸씨의 큰 숙모 댁으로 갔을 때 비디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내 인생에서

     성공해야 만 할 특별한 이유가 있으니 너의 지식을 내게 전해준다면 난 매우

     감사할거라고 말이다.  늘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해주는 비디는 즉각적으로

     예스라곤 대답하곤 오 분 내로 그녀의 약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101-2)



핍은 대장장이인 자신 매형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내가 무엇을 배우던 조에게 전했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양심상 설명하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난 조가 덜 무식하고 덜 평범하길 원했다. 그래야 나와 어울릴         수준이 되며 또한 에스텔라의 비난을 덜 받을 게 아닌가. (137)



무식한 매형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결국은 자신이 비난을 덜 받기 위함이라는 핍의 생각은 그 역시 에스텔라 못지않은 속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핍은 비디에게 비밀임을 강조하며  “난 신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핍은 가난에 찌든 신데렐라가 성에 사는 왕자를 동경하듯이 대저택에 사는 아름다운 에스텔라를 맘에 품습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파티를 위해 화려한 의상에 유리구두 그리고 마차와 시종도 필요하듯이 핍도 에스텔라와 어울리려면 신사모와 함께 멋진 수트 그리고 신사의 필수품  지팡이를 갖추고 수준 높은 어휘를 구사해야 합니다.  신사가 되겠다는   결국 에스텔라와 결혼하고 싶다는     입니다. 그러나 에스텔라는 『신데렐라』속 왕자가 아니고 『미녀와 야수』속의 야수의 여성 버전입니다. 그녀는 겉은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속은 남자의 마음을 무자비하게 할퀼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고 있는 야수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텔라와 미스 하비샴처럼  타이틀, 재력, 겉으로 드러난 외모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는 어린 속물 핍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핍, 에스텔라 미스 햐비샴은 우리의 자화상 입니다. 핍이 매형을 창피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저도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을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한국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내려 온 우리 집은 생계수단으로 시장 골목에서 작은 식당 (겸 살림집)을 했는데 저는 방과 후 반 친구랑 같이 하교하다 시장입구를 통과하게 되면 우리 가게를 그냥 지나쳐 한참을 더 가다 친구를 보낸 후 다시 오던 길을 돌아서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우리 집이 허름한 식당인 사실이 창피했던 겁니다. 우리 중 누군가 어릴 적 “난 커서 엄마(아빠)처럼 안 살 거야” 라고 외친 경험이 있다면 모두 핍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안의 속물근성을 경험하고 어른이 되어 비로소 철없던 시절 부모님을 원망했던 사실을 후회합니다. 우리의 성장과정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속물인줄 모르는 에스텔라, 미스 하비샴 같은 속물들이 여전히 건재합니다. 재벌, 검사, 의사, 사업가, 교수, 박사  등을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노리는 먹이감들입니다. 상류사회를 숭배하는 특징을 지닌 이들은『위대한 유산』의 속물 삼총사처럼  돈, 지위, 명품 등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속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속물(스놉)의 주제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위대한 유산』 : 겉모습과 실체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