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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05. 2024

예이츠의 『사랑의 슬픔』:  사랑의 두 얼굴

큐피드와 장미. 둘 다 사랑의 이중성을 상징합니다. 사랑은 아기천사 큐피드의 피부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며 순수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황홀함 뒤에는 날카로운 화살촉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행복과 고통은 사실 파트너입니다. 장미는 이 세상 모든 발렌타인을 위한 꽃입니다. 장미는 여성미의 상징이며 장미의 붉은 색은 태양처럼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아래에는 큐피드의 화살촉 같이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면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따라옵니다. 언제 가시에 찔려 장미 빛 같이 붉은 피를 뚝 뚝 흘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이츠에게 모드 곤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비수를 숨긴 장미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사랑의 슬픔」(“The Sorrow of Love”)(1893)은 이러한 장미를 닮은 여인의 이중성을 노래합니다. 시의 첫 번째 연을 읽어봅니다.  


처마 안 참새들이 시끄럽게 다투며 지저귀는 소리  

휘영청 밝은 달과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

그리고 저 잎새들의 축복받은 하모니가

인간의 모습과 울음을 지워버렸다  


The brawling of a sparrow in the eaves,   

The brilliant moon and all the milky sky,   

And all that famous harmony of leaves,   

Had blotted out man's image and his cry.


자연과 인간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새, 달, 별, 하늘, 나뭇잎으로 대표되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합니다. 대자연 앞에 아무 존재감 없는 인간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연부터 인간이 자연에 반격합니다. 그 시작은 소녀입니다.


붉은색 슬픈 입술을 가진 한 소녀가 일어났다

눈물에 잠긴 위대한 세상처럼 보이는

오디세우스와 고난의 바닷길에 던져진 배 같은 운명을 가진   

그리고 귀족들과 함께 살해된 프라이엄 왕 같이 고고한 소녀가  


A girl arose that had red mournful lips

And seemed the greatness of the world in tears,   

Doomed like Odysseus and the labouring ships   

And proud as Priam murdered with his peers;



“한 소녀가 일어났다”(A girl arose)에 이 시의 핵심 상징인 장미가 숨어 있습니다. Arose는 일어나다를 의미하는 arise의 과거형임이지만 동시에 장미를 뜻하는 a rose입니다. 그러니까 일어난 소녀는 피어난 장미꽃이라는 말입니다. 장미꽃은 미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가시 박힌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이 소녀의 장밋빛 입술은 슬픈 입술입니다. 아름다움의 파괴적인 힘을 암시합니다. 이 소녀를 사랑하면 비극을 피할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피로 물들인 트로이의 헬렌처럼 말입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세상을 눈물에 잠기게 하며,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방황하는 오디세우스의 배처럼 방황할 운명을 지녔고 그리고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트로이의 왕의 고고함을 닮았습니다. 시에는 소녀라고 쓰고 있지만 시인은 모드 곤을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비극을 불러오는 소녀의 아름다움. 그 미는 신비한 영적인 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에는 왠지 모를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습니다. 시의 세 번째 연을 읽어 봅니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즉시 시끄러워지는 처마

텅 빈 하늘 위로 뜨는 달

그리고 잎 새들의 모든 한탄은

인간의 모습과 울음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니   



Arose, and on the instant clamorous eaves,   

A climbing moon upon an empty sky,   

And all that lamentation of the leaves,   

Could but compose man's image and his cry.



여기에서 “일어났다”(arose)의 주체는 물론 두 번째 연의 장미꽃(a rose)같이 아름다운 소녀입니다. 이 마지막 연은 이 소녀의 미가 갖는 긍정의 힘으로 시작합니다. 상승의 기운(“일어나고” “올라가고”)을 조성하며 자연도 감탄시킵니다. 처마 밑 새들은 전세계  k-pop 팬들이 자신들의 우상 BTS 를 향해 열광하며 소리를 지르듯이 소녀를 향해 난리법석 소란을 떱니다. 첫 연에서 벌어졌던 새들의 다툼은 이제 미를 향한 아우성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텅 빈 하늘에 뜨는 달이” 말해주듯이 소녀의 미는 어둠도 밝히고 공허함도 채우는 거의 영적 경지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마무리는 그 찬란한 아름다움의 이면에 드리워져있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이 소녀를 보고 잎새들이 한탄하는 이유입니다. 이 자연의 탄식은 사실 인간의 모습이며 울음소리입니다. 시인이 쓴 「사랑의 슬픔」은 아름다움의 이중성이며 사랑의 두 얼굴입니다. 바로 시인이 모드 곤을 사랑하며 느낀 슬픈 예감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1898년. 예이츠는 모드 곤에게 청혼 실패 1년 후 후 완성한 희곡『캐슬린 백작부인』 (1892) 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뮤즈 모드 곤에게 헌정한 작품으로 캐슬린 백작부인이 기근이 들어 굶어 죽어가는 아일랜드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판다는 내용의 운문 드라마입니다. 파리에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모드 곤을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길 생각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 때 예이츠는 모드 곤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곧 아일랜드에 가게 되니 만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흥분한 시인은 그녀를 만나기 하루 전 꿈을 꿉니다. 그가 모드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꿈이었습니다.  예이츠는 모드 곤을 만나 이 꿈 이야기를 했고 그녀도 똑  같은 날 꿈을 꾸었다며 말하며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합니다.  "잠결에 침대 곁에 정령이 서있는 걸 보았고 그는 나를 많은 영혼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그 중에는 당신도 있었죠. 그는 내손을 당신 손에 쥐어 주고는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고 선언 했죠." 그 꿈 이야기를 한 후 모드 곤은 시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합니다. 그녀는 시인에게 다가갔고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시인은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때 그리고 나서 그녀는 처음으로 내게 입으로 키스를 했다.” ( Then and there for the first time with the bodily mouth, she kissed me.) 만난 지 거의 10년 만에 둘의 관계는 우정 그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모드는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후회하며 예이츠에게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예이츠의 아내가 될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10 년간 가슴속에 간직해왔던 자신의 비밀을 마침내 털어 놓습니다. 자신은 유부남인 루시엔 밀레보예와 연인관계이며 이미 둘 사이에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 사람과 동거하는 관계는 아니며 앞으로도 같이 살거나 결혼할 의사도 없다. 아니 그 누구하고도 결혼은 절대로 안할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사랑은 끔찍하고 무섭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예이츠는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의 시에 영감을 주는 뮤즈이자, 자신이 숭배하는 젊은 여왕 그리고 도탄에 빠진 아일랜드의 농민을 구한 캐슬린 백작부인의 살아있는 모델이 사생아의 엄마라니. 아일랜드 문단을 이끌 명망 높은 시인으로 평가받는 자신이 어떻게 5살짜리 애 엄마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가정을 이루겠는가? 시인은 고통 속에서 신음합니다.  그는 10년 간 허상을 쫓아다니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환상을 부여잡고 꿈을 꾸고 시를 쓰며 그리워하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6년 전 『사랑의 슬픔』에서 암시된 “붉은색 슬픈 입술”로 인한 “눈물”과 “울음”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큐피드의 황금 화살에 맞은 지 거의 10년이 다 되가는 해에 장미에 숨겨진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결코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비참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재정적인 후원자이자 오래된 친구 그레고리 여사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레고리 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거라고.” (“I don’t wish her any harm, but God is unjust if she dies a quiet death.”) 그럼에도 시인은 모드 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899년 예이츠는 정신적인 충격에서 회복한 후 모드곤이 살고 있는 파리로 갑니다.

청혼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이츠의 삼촌은 모든 곤의 키스를 프라미싱 (promising) 한 사인으로 해석했고 조카에게 다시 도전할 것을 권한 겁니다. (사실 연예 상담은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모드 곤은 일년 전에 보았던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파양을 결심한 견주가 헤어질 자신의 반려 견을 대하듯 시인에게 냉랭해졌고 시인의 눈을 피했습니다. 모드 곤은 다시 한 번 시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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