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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 사회를 위한 지역혁신의
기반 사회주택

 오늘은 저비용 사회의 기반이 되는 사회주택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죠.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이 떨어집니다. 봉급쟁이 노동자들 처지에서는 월급이 오르길 바라게 되죠. 하지만 급여가 물가 인상에 맞춰 계속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긴 오르더라도 한계가 있는 거죠.     


고비용이 드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사는 도시생활자의 급여를 계속 인상할 수 없다면, 도시 생활에 드는 비용을 낮추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도시생활자가 실제 내는 생활비를 낮출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좀 더 윤택해질 것 같습니다. 나아가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도시의 삶은 곧 고비용의 삶입니다. 대표적인 고비용 지출이 바로 주거비입니다. 그래서 저비용 사회로 가는 가장 빠른 게 바로 주거비를 낮추고, 쾌적한 주거를 부담할 수 있는 비용으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오늘의 주제를 ‘저비용 사회를 위한 지역혁신의 기반 사회주택’으로 잡아보았습니다.


물리적 공간이자 심리적 장소      

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몇 가지 단어가 직감적으로 떠오릅니다. 희망과 기쁨, 좌절과 분노, 이런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새로 집을 장만했을 때는 희망과 기쁨의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집값 폭락으로 하우스푸어가 되거나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됐을 때의 좌절과 분노가 마음을 지배하지요. 최근에 전세 사기로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목돈(전세보증금)을 강탈당한 피해자들은 마음 좌절과 분노로 지옥을 오갈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피해자도 나오고요. 

     

한 곳에 담을 수 없는 이 단어들이 모두 대표적인 공간과 장소가 바로 집입니다. 희망, 기쁨, 슬픔, 좌절, 분노가 한 공간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게 바로 집입니다. 우리는 이 집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먼저 집을 개념적 설명해 보겠습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과 심리적 장소로서의 집, 이 두 가지 개념으로 말이죠.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 집은 비나 눈보라, 태풍, 폭우, 그리고 추위와 더위 같은 자연 변화에 의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공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범죄 등 다양한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래서 집을 잃었다는 것은 위협적인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심리적 장소로서의 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심리적 장소로서의 집은 여행을 마친 뒤 휴식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집을 잃어버린 ‘나’는 휴식을 영위하지 못한 채, 도시유목민처럼 떠돌게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상당히 불안한 세상살이를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 집이 하우스(House)라면, 심리적 장소로서 집은 홈(Home)입니다. ‘공간’은 물리적인 곳에 개인이나 공동체의 경험, 감정, 의미가 부여된 곳이 바로 ‘장소’입니다. 물리적인 공간인 집에 나와 가족의 경험이 쌓여 기억으로 축적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인 장소로서 집이 된 것입니다.     


물리적 공간이자 심리적 장소인 집을 상실한 대표적인 사회 계층이 바로 노숙자(Homeless)들입니다. 노숙자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안전지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마음을 둘 장소를 상실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무주택자(Houseless)라고 부르지 않고 홈리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서진 주거사다리     

우리에게 집은 희망의 느낌이 들기보단 좌절, 분노의 감정을 일게 합니다.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그려지게 됩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에 집은 벼락거지라는 상실감과 좌절의 이미지였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자마자 깡통전세 문제가 터지면서 전세사기가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피해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해서 집은 분노와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이지요. 결국 집의 상실로 인해 몇몇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좌절과 분노를 못 이기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의 주택시장에서는 전세사기 같은 문제가 다시는 안 터진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전세사기에 피해 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해서 긴급하게 구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근본적인 처방의 하나로 새로운 집, 사회주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이름의 사회주택을 건설하고 공급해왔습니다. 2015년 1월 서울시 사회주택 지원조례가 만들어진 뒤부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민간이 참여하는 사회주택이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회주택을 공공이 주도하는 공공임대주택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사회주택으로 좁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회주택(Social. housing)은 어떤 집을 말하는 것일까요? 참고로 사회주택은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칭이고 나라마다 사회주택을 부르는 이름들은 다 다릅니다. 오스트리아는 이윤제한주택(Limited-profit h ousing) 또는 인민주택(People’s housing), 덴마크는 공동주택(Common housing) 또는 비영리주택(Not-for-profit housing), 프랑스는 적정가격주택(Housing at moderate rent)으로 부릅니다.     


조금 개념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면 사회주택은 크게 세 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우선 공공(LH공사, 지자체 등) 또는 사회적임대인(비영리법인,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이 운영·관리하는 임대주택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시장 임대료보다 낮은 임대료로 제공되는 임대주택입니다. 세 번째는 수요(필요, needs)에 따라 의해 공급·배분되는 임대주택입니다. 이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임대주택을 사회주택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주거 이동이 단절된 대표적인 임대시장을 가진 나라입니다. 만약에 공공임대주택의 입주하면 사람들은 같은 가격의 민간임대주택으로 이동하게 되면 훨씬 안 좋은 주거 환경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주거 하향 이동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사람들은 민간임대주택으로 주거를 옮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임대주택시장은 공공임대주택시장과 민간임대주택시장이 따로 작동하는 나라가 된 것이지요. 이거를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이중임대시장이라고 부릅니다. 공공임대주택의 주거 환경의 수준에 맞게끔 민간임대주택으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게 한국 임대주택시장의 특징입니다. 이중임대시장에서 주거 이동은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중임대시장 구조를 가만히 내둬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생애주기별로 주거 이동을 할 수 있는 주거사다리를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사회주택 사업을 하는 혁신가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거 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이을 수 있는 새로운 집, 새로운 주택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회주택이 주거사다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집들이 몰려온다     

더디지만 한국도 주거사다리 역할을 할 새로운 집, 사회주택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택 사업을 하는 혁신가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회주택 출발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2011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이후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민간이 선도적으로 사회주택 실험을 했습니다. 이후 서울시가 2015년 1월 사회주택 지원조례를 시행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서울시의 사회주택 지원조례 시행 이후 여러 지자체가 서울시 사회주택 지원조례를 모델로 사회주택지원조례를 제정·시행하였습니다.     


- 서울특별시 2015. 1.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 

- 시흥시 2016. 5. 「시흥시 사회주택 지원에 관한 조례」 

- 전주시 2018.12. 「전주시 주거복지 지원조례」

- 부산광역시 중구 2019. 3. 「부산광역시 중구 사회주택 지원에 관한 조례」 

- 부산광역시 동구 2019. 6. 「부산광역시 동구 사회주택 지원에 관한 조례」 

- 고양시 2019. 6. 「고양시 청년을 위한 사회주택 지원에 관한 조례」 

- 부산광역시 2019. 8. 「부산광역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 

- 경기도 2020. 5. 「경기도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    

  

사회주택은 2015년에 43호를 시작으로 2016년에 325호 이렇게 쭉 공급들이 이제 이루어지면서 2023년 3월까지 대략 5500호 정도가 전국에 공급되었습니다.   

   

집이 좌절과 불신 그리고 분노의 공간이자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집은 3안(安) 주택이어야 합니다. ‘안정, 안심, 편안’이 바로 3안이지요. 거주 기간의 안정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심하고, 주거 환경이 편안한 집이 바로 사회주택입니다.


특히,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은 보안이 촘촘하고 잠금장치가 많은 집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 속의 집이 안심주택입니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에서는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서로 지켜봐 주고, 서로서로 돌봐줍니다. 그런 마을 속 집이 바로 안심주택이지요.   

   

안정, 안심, 편안, 이 3안 갖출 수 있는 주택이 바로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장소로서의 집에 가장 부합합니다. 새로운 집은 개인이 소유하거나 집주인한테 월세 내고 사는 게 흔히 보는 주택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소유하든지 사회적임대인이 소유 및 운영·관리하지만 만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집입니다. 지금 이런 새로운 집들이 우리 일상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걸 저는 몰려온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물론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회주택 퇴행 정책으로 사회주택의 신규 공급은 주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택이 몰려오는 것은 큰 흐름이기 때문에 더뎌질 수 있지만 이 흐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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