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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Feb 18. 2024

캡틴과 선배

2024 카타르 아세안 컵의 교훈

대한민국 축구팀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 기적을 이루었다. 


그 때 조별 예선 첫 경기가 폴란드전이었는데 황선홍과 유상철의 득점으로 2대0으로 승리했다. 이는 한국의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처음으로 거둔 승리였다.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대표해서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한 것은 1954년 스위스 윌드컵 때다. 헝가리에 0대9, 터키에 0대7로 대패하고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까지 34년동안 한번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1986년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까지 계속 본선에 진출했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모두 조별 탈락했다.


그러다 2002년에 천지가 개벽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이 본선에서 4강에 진출한 것이다. 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히딩크 감독의 업적이라고 말하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그는 부임 후 먼저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상당 시간 동안 K리그를 포함해 한국축구계 전반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파악한 문제점을 몇 개로 압축하여 이에 대한 해결책을 수립하였다. 그는 외국인 감독으로서 이전까지 만연한 한국 축구계의 악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있었다. 그래서 협회의 지원하에 과감하게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는 선수를 선발하고 경기에 기용할 때 학연, 지연 등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또 선수들 간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주전경쟁을 위한 무한 경쟁을 유도했다. 이른바 실력 지상주의다. 그리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체력 훈련을 도입했다. 한국침이 히딩크가 오기 전에 유럽 팀과의 경기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체력이 좋은 유럽선수들과의 몸싸움을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거칠기 짝이 없는 유럽 리그에서 살아 남으려면 패널티를 감수해서라도 몸싸움에 이겨야 한다. 반칙도 게임의 롤 일부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보강이 필수다.


이외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히딩크감독이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한 것은 소통문제였다. 그는 식사 시간에 고참은 고참끼리 어린 선수들은 어린 선수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그러다 보니 평소 선후배간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고 상황이 긴박한 필드에서도 선후배간의 소통이 서로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소통개선을 위해 선후배 선수들이 한 테이블에서 섞여서 식사하도록 했다. 필드에서는 이름을 부르고 존대말을 안해도 되도록 했다. 패스가 필요하면 선배는 후배에게 손을 들면서 '어이'하면 되지만 후배는 쉽지가 않다. 무례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찬스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4강전 경기 전날 있었던 선수간의 충돌 소식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충돌 그 자체에 대한 것 보다 고참선수와 어린 선수, 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사분오열 된 국가대표팀 내 분위기 때문이다. 선후배 간의 소통 문제는 히딩크 감독 때 해결되고 이후 정착된 걸로 생각을 했는데 카타르에서 선후배가 따로 노는 것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충돌로까지 이어지다니. 다시 2002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궁금한 것은 히딩크 감독 이후 여러명의 감독이 거쳐갔고 벤투감독이 클린스만 감독 직전의 감독인데 그동안 어땠을까? 서서히 망가졌을까, 아니면 1년 동안 한국팀을 지휘하면서 한국에는 두달도 머물지 않은 클린스만 감독 1년동안 급속히 망가젔을까? 


2002년 이후 작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한국팀의 성과를 보면 답을 어느 정도 알 수있지  않을까? 한국 팀은 본선에 다섯번 연속 진출하고 16강에 두번 오르는 등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전부터 서서히 망가졌으면, 다시 말해 예전부터 카타르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4강전 때의 팀웍이었다면, 본선 16강은 고사하고 본선 진출도 힘들었지 않았을까? 팀의 성과를 위해서는 몇명의 스타플레이어 활약도 중요하지만 감독 한 사람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여러명의 스타플레이어라는 구슬도 전술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을 때 보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전술은 소통으로 완성되며 팀의 성과로 이어진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자 축구협회에서는 벤투감독 선임 때와 똑같은 프로세스에 따라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문제의 핵심은 책임자 처벌이 아니다. 재발방지다. 축구협회의 말대로 프로세스에 따라 선임했다면 아무도 처벌할 수 없다. 허술한 프로세스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 외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분해도 책임자를 처벌하면 안된다. 허술한 프로세스는 그대로 둔 채 화풀이로 책임자 처벌에만 매몰되면 문제는 계속 발생될 것이고 프로세스를 따랐던 선의의 피해자는 양산될 것이다. 이 말은 누구나가 다 입장이 바뀌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전세계에 부끄러움을 안긴 이번 사건을 진정시키고 재발방지를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정말 축구협회에서 말한대로 프로세스에 따라 감독을 선임했는지 조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만일 그랬다면 프로세스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지금과 같이 최악의 결과가 충분히 예측되는데도 불구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는지, 또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어떻게 프로세스를 개선하면 되는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축구협회 행정은 잘 모르지만 축구협회가 프로세스 대로 감독을 선임했는지 확인하는 감사는 집행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외부 기관 혹은 위원회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내부감사와 외부감사를 통해 프로세스의 이행과 개선, 그리고 경영의 건전성을 담보한다.


후배가 선배에게 주눅 안들고 할 말 하는 것은 히딩크 감독이 변화시킨 좋은 변화다. 대한민국의 팀전력이 세계적으로 성장한 것은 이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캡틴의 말을 무시하고 항명한 것은 이와는 다른 문제다. 반드시 그리고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경기까지 망쳤다면 더 더욱. 그런데 현재 분위기는 캡틴과 팀원의 문제를 선배와 후배의 문제로 몰고 가는 듯한다. 히딩크가 변화시킨 좋은 문화를 2002년이전으로 되돌리는 분위기가 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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