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조건인가 사랑인가
대학 졸업반인 26세가 되자, 집에서는 결혼에 대해 걱정했다. 장애가 있으니, 결혼 상대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연애는 했으나, 결혼할 상대는 아니었다. 남자 잘 만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복인 줄 아는 새엄마는 무조건 선을 보라고 했다. 그래 선이라도 봐주자, 하는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갔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하고 착해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홀어머니라는 것 외에는, 다 좋았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인과 결혼하길 원했다. 상대는 불교였다.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여, 종교 때문에 갈등하는 결혼 생활을 택하기는 싫었다.
아버지에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네 처지도 생각해야지, 그런 신랑 만나기가 쉽지 않다”라고 했다. 재차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고 올라왔다. 상대 남자는 내가 마음에 든다며, 학교까지 찾아왔다. 나는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아버지가 사주단자를 받을 예정이고 결혼은 졸업 후에, 곧장 한다고 했다. “아니 제가 싫다는데 왜 그러세요?”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나는 친구 집으로 가출했다. 그것이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항의였다. 2달이나 친구 집에 머물렀다. 나중엔 돈이 다 떨어졌지만, 염치가 없어서 친구에게 꾸어 달라는 말을 못 했다. 정말 100원을 아끼면서 살았다. 2달이 지나자, 아버지가 “이년, 이렇게 아버지 얼굴에 먹칠한 괘씸한 것, 앞으로 니 결혼은 네가 알아서 해라. 혼자 살든지 말든지.”하면서 화를 내었다. 그러나 내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그 후에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혼자 살 마음은 없었다.(그 당시는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살 수도 있고, 그게 장점도 많은데..) 그래서 몇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했다. 첫째 같은 신앙인, 둘째 장애인을 섬기는 비전이 같은 사람, 셋째 온화한 인품, 넷째 건강한 사람, 다섯째 맏이가 아닌 사람, 여섯째 대학은 나올 것, 일곱째 변치 않는 사람이다. 내 처지를 생각하면 과도한 요구였다. 기도야 뭐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쩌면 결혼 자체가 사랑 이전의 조건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우리의 이기심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2년을 기도하고 찾아도 사람은 안 나타났다. 말씀에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가 있으니 용기를 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어느 날, 큰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놀러 왔다. 그 교회 청년 신상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중에 2명에게 보자고 한다고 연락하라고 했다. 한 명은 거절했고, 한 명이 나왔다. 만나보고 아니면 땡이지 뭐,라는 배짱이 생겼다. 간절함일 수도 있다.
다방에서 만났다. 앉자마자, 대뜸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아 드디어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헤어지는 길에, 인사를 하는데 완전히 90도 절을 하는 것이었다. 착각이었지만, 인품도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졸업 후 작은 병원을 막 개업한 상태였고, 상대는 군 생활 후에, 아직 학생이었다. 설레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했다. 콩깍지가 씌었다. 같이 학교 축제도 가고, 철야 기도도 같이 갔다. 믿음은 나보다도 더 좋았다. 그는 나의 장애를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몇 가지 기도 제목도 다 들어맞았다. 신앙생활은 나보다 더 철저했다. 딱 원하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멘토였던 선배들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모두가 짜장면을 시키는데, 혼자 짬뽕을 시켰다. 주방장은 당연히 짜장면부터 내주었다. 나는 면이 불으니, 먼저 드시라고 했다. 그런데 짬뽕이 좀 늦어지자, 대뜸 남편이 주방장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었다. “아니, 같이 왔으면 같이 주어야지 내가 얼마나 뻘쭘합니까”라고 했다. 나중에 선배는 조용히 나에게 이야기했다. “한 성격 할 거 같은데, 결혼은 재고해 보면 어때.”라고 했다. 내게는 그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짬뽕을 늦게 내준 주방장이 잘못했다고만 생각했다.
결혼도 못 할 줄 생각하신 부모님은 무조건 찬성이었다. 200일이 지나면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프러포즈하기 전에 남편은 고심했다. “뭐야 이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다렸다. 드디어 기도원에서 며칠을 기도하고, 목이 다 쉰 채로 전화가 왔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가 시댁의 반대도 강하게 잠재웠다.
그러나 살아보니 (살아보기 전엔 몰랐다, 안 보였다^^) 남편은 온화한 성품이 아니었다. 매사에 짜증이 많았다. 말리던 선배의 말이 자주 생각났다. 살아보니, 같이 사는 데는 인품이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인품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상대를 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처지를 생각하면, 과분한 사람일 수도 있다. 몇 가지가 맞으니, 그로 인한 행복은 저리 밀쳐두고, 한 가지 안 되는 것을 탓하고 있다. 나의 욕심이다. 남편의 단점은 자주 화냄과 이기심이다. 장점은 변치 않음과 사람 눈치 안 보는 당당함이다. 그 장단점으로 인해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남편의 기질은 40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의 화냄과 이기심으로 지칠 때가 많았으나, 나의 충동적인 성격의 단점을 깎아 주는 칼임을 느꼈다. 그것을 참아내면서, 내 성질이 많이 죽었다. 결혼은 모난 돌이 서로 만나 깎여가는 과정인가 보다. 많은 세파의 물결 가운데, 싸우고 갈등하면서, 서로 부딪힌다. 그렇게 깎이어, 둥글둥글해진 돌이 되어가는가 보다. 그래도 나는 아직 모난 돌인가 보다. 아직은 깎이지 않은 삐죽 한 곳이 늘 아픈 돌인가 보다. 사랑으로도 조건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돌 틈이 여전히 시리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깨지 않는 딱딱한 돌멩이들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