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보자기에 싸인 선물
첫아이 출산일이 다가왔다. 큰 병원에 갔더니,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했다. 좀 더 작은 병원에 가니, 자연분만이 가능할 거 같다고 했다. 수술은 겁이 나, 용기를 내어, 자연분만을 택했다. 그 작은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다.
진통이 시작되자, 병원의 분만대기실에서 진통주기가 점점 짧아지길 기다렸다. 출산 조짐이 보이자, 고통 속에 짧은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 들어오고, 힘을 주라는 지시대로, 호흡 조절을 하며, 있는 힘을 다했다. 그러나 좀처럼 태아는 나오지 못하였다. 그런 시간이 거의 20시간이나 되었다. 다리에 마비가 오고,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생명은 이런 고통을 겪게 하고 우리에게 오는 걸까?
의사는 자궁문이 다 안 열리니, 아이를 집게로 집어낼 수는 있는데, 혹 뇌를 다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는 안 한다고 했다. 뇌성 장애아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의사는 급히 나를 수술실로 옮겼다. 수술실 천장의 둥근 등이 보였고, 벽의 큰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의식을 잃으며, ‘아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느닷없이 의식을 잃자. 당혹한 의사는 마취과 의사를 호출기로 불렀다고 했다. 작은 병원이라, 마취과 의사가 없고, 큰 병원에 있는 마취과 의사를 불러야 했다. 그런데 그 의사는 회식 중이었다. 겨우겨우 연락되어 온 것이 2시간이나 걸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누군가 내 뺨을 세차게 때렸다. "아줌마 정신 차려요!! " 양쪽 뺨을 때리며, 의사는 ”열을 세어 보세요 “ 하고는 입에 마취제가 든 마우스를 덮었다. 에틸알코올 같은 냄새가 내 폐에 들어감을 느낌과 함께, 또 의식을 잃었다.
그때 어느 깊숙한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 안으로 확 빨려 들어가는 나를 보았다. 거기서, 지나간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냅사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나의 아집과 욕심과 속임의 순간들이 영화필름처럼, 지나는 것을 보았다. 수 없는 회한들과 후회와 상처들이 속에 남겨져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죽음 직전의 단계까지 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생과 사가 한 찰나였다. 그때 나를 아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를 살려 달라는 기도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끝없는 터널에서 돌아 나왔다. 당시에 느낀 건, 삶과 죽음이 아주 지척이라는 것과 결국은 이 땅의 모든 삶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다는 것이었다.
수술실을 나왔을 때는 10시가 넘었다. 제왕절개 수술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거의 두 시간 넘게 있었다.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묻기도 전에 극심한 하체 고통에 시달렸다. 양쪽 다리는 오 분도 가만히 둘 수가 없을 만큼 저리고, 극심한 통증이 찔러대었다. 너무 용을 쓴 나머지 거의 하체가 마비되고,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남편은 다리를 주무르고, 올리고 내리고 두드리고, 계속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나는 ‘양쪽 다리가 다 마비가 되어 이제 걸을 수가 없게 되는구나’라고 절망했다. 고통의 일주일이 지나자, 다리는 서서히 감각이 돌아왔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했다. 그렇게 첫 아이를 품에 안았다. 죽음의 터널을 돌아 나와 첫째를 만났다.
앞으로 살면서, ‘좁은 마음을 찢으라.’는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게 했다. 이생은 그렇게 길지 않으니 너무 연연하지 말고, 영원히 이어지는 내세를 준비함이 중요함을 느꼈다.
얼떨결에 큰아이 6개월에, 둘째 아이를 가졌다. 둘째 아이의 분만은 제왕절개를 하기로 미리 정하였다. 그런데 둘째 아이 임신 6개월 즈음에 병원이 불이 나서 다 타버렸다. 불나서 재산을 다 잃은 것이 두려웠는지, 아니면 첫아이 출산의 고통이 압박했는지, 또는 마취사고인지는 몰라도, 제왕절개 수술 후에 며칠을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 있었다.
그때의 마음 상태는 이러했다. 어떤 무의식의 세계 가운데 있었다. 시간을 넘어선 세계로, 의식이 반쯤은 돌아와 있었다. 병실 안의 TV 소리는 너무나 거슬리는 소음이었고,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리고 슬리퍼 끄는 소리, 누가 이야기하는 소리, 모든 소리가 확성기를 댄 듯이, 귀에 울리고 때리고, 정신을 혼란하게 했다. 둘째 아기를 품에 안겨주어도, 아이인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남편은 의사의 멱살을 잡으며, 왜 저러냐고 따졌다. 의사는 마취 후에 간혹 본인이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있으면 저럴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마취에는 많은 뇌세포가 죽는데, 더 많은 뇌세포가 죽으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바이탈 사인은 정상이니, 일주일 기다려보고, 다시 마취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돌아오는 것과 식물인간처럼 되는 것이, 반반 확률이라고 했다.
며칠 동안, 나는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 즈음에서 숨만 쉬었다. 의식이 점점 돌아오던 때에도 나의 시간은 뒤죽박죽이었다. 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오 분쯤 지나있었다. 그런 혼란의 날을 지낸 4일 후에, 기적적으로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다. 남편도 보이고, 우는 가족들도 보였다.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둘째를 품에 안았다. 하나님의 세계는 이 땅의 시간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두 아이의 출산을 통해, 생명을 받고, 떠나는 것이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철저히 느꼈다. 생명은 꺼지기 쉬운 촛불 같으면서, 동시에 아주 질긴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약하고도, 끈질긴 것이었다. 생과 사,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넘어 받은 두 생명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아픔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하면서 낳은 생명이었다. 고통의 보자기에 싸인 축복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