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고난들

by 선지은

몰아치는 고난들

‘인생은 고해다.’라고 말한다. 누구나 고난이 있을 것이다. 나의 첫 고난은 소아마비라는 장애였다. 평생을 절어야 했고, 보조기를 의존했다. 나이가 들자 점점 약해져서, 이젠 보조기를 의존하지 않으면 걸을 수가 없다. 장애인들은 보통 다 이차적인 장애를 겪는다. 다리에 균형이 깨어지니, 요통, 슬 관절통, 장애 다리는 위축되어, 골 다공도 왔다. 양팔을 의존해서 걷다 보니, 어깨 통증도 있다.


다음에 나의 고난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 당시는 이혼 사례가 적어서, 나는 학교에서 가정사를 숨기기가 바빴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뿐 아니라, 새엄마와의 눈치 보는 생활, 이어지는 동생들의 반항 등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겪은 고난은 결혼 뒤였다. 첫 아이 출산 시에, 제왕절개를 했는데, 거의 죽다가 살았다. 출산 시의 기절과 그 후에 하지마비로 고생했다. 그 여파인지, 첫 아이가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하늘이 노랬다. 좀 기다려보자는 의사의 말에도 나는 오랫동안 불안했다. 다행히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아이는 수술하지 않고 나았다.


일 년 뒤에, 병원에 불이 났다.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 병원이 다 탔다. 전부 30분 만에 다 재가 되었다. 임신 6개월 된 몸으로, 돌이 된 첫 아이를 간신히 업고 절뚝거리며, 병원으로 달려 나갔을 때는 이미 연기가 자욱했다. 들어가서 뭐라도 건지려 했으나, 소방대원들이 남편과 나를 붙들고 말렸다. 망연자실해서 땅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그을린 건물을 원상복구 해주는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아침이어서 2층에 사람들이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옆의 가게로 번지기 전에 불을 꺼서 다행이었다. 40년이 지난 아직도 소방차 사이렌 소리에 여전히 가슴은 놀란다.


그날 저녁에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남편은 아직 학생이라, 수입이 없었다. 전세금을 빼고 대출을 받아, 속히 병원을 개원했다. 15평 되는 작은 병원뒤에 단칸방을 만들어 아이를 키웠다. 돌이 된 아이가 뒤에서 울며 떼를 쓸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6개월 뒤에 둘째를 출산할 때, 4일간 의식을 찾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와 퇴원한 뒤엔, 곧장 병원에 나와서 일했다.


산후조리 같은 것은 내겐 사치였다. 둘째가 생기자, 첫째 아이는 할머니가 데리고 가서 돌보았다. 낮에는 근무하고, 저녁엔 둘째 아이를 돌보았다. 그런데 아이는 밤낮이 바뀌어, 낮에는 자고 밤에는 보채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너무 피곤했다. 낮에 아이를 봐주던 아줌마가 보기가 딱 했는지, 아이를 잠시 데려가서 돌보겠다고 했다. 둘째 아이가 한 달 되던 때, 폐렴이 왔다. 이젠 아예, 낮에는 근무하고, 저녁에는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 가야 했다. 가래를 그르렁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한 달 된 아이를 안으니, 한없이 눈물이 났다. 2주간을 병원에서 살았다.


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겹쳐서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결혼 후 5년 동안, 고난은 몰아쳐서 불어왔다. 나는 사는 것에 지쳤다. 그러나 살아내어야 했다. 돈을 벌고, 먹고살아야 했다. 일 년 뒤에 단칸방에서 벗어나, 작은 한옥에 셋방을 얻었다. 부엌은 심히 좁고, 단차가 심해서 불편했으나, 감사했다. 할머니가 첫 아이를 데리고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런 몰아치는 고난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생명이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과 죽음은 한순간이었다. 소유물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30분 만에 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재앙을 만나면,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내 역량이 아니었다. 생명도 소유도, 자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불가능한 상황으로 낙담할 때에 매어 달리는 마지막 끈이 기도였다. 어떤 것도 행해 낼 수 없을 때가 있기에, 기도도 있다. 그래도 고난 사이사이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다. 고통은 멈추는 시간이 있었고, 꺼져가던 생명도 다시 살게 해주셨다. 불이 났어도 이웃에 피해가 없게 하셨다. 혼자 당하지 않고, 같이 아파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고, 그것은 견뎌낼 수 있는 이유였다.


고난 중에, 이상하게도 ‘마음을 찢어라.’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만 살았다.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도,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몰려오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고난은 인간의 불가능을 알라는 신호였다. 고난은 C.S. 루이스가 말하듯 하나님이 부르는 확성기였다. 시야를 넓혀서, 고통과 아픔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라는 싸인이었다.


그 후로 나는 주위의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혹독한 고난은 마음을 낮아지게 하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었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었다. 그래도 몰아치는 고난은 계속 있었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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