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잖아.. (암과 그 후)
45세에 암이 왔다. 그 원인은 많을 것이다. 고기 위주의 음식섭취 변화, 자녀들로 인한 스트레스, 업무 과다의 피로, 등 여러 원인이 있겠다. 몸이 심히 피곤하고, 부정기적 출혈이 비치었다. 암은 2기 직전이나, 자궁과 나팔관뿐 아니라, 서혜부 임파선도 다 잘라내었다. 주치의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다른데, 이분은 암 주변을 완벽히 차단하는 의사였다.
출산 수술 때마다,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암 수술 전에 암이 겁나는 게 아니라, 수술 자체가 겁이 났다. 수술에서 살아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이 불안했다. 그런데 수술 실로 들어가는데, 성령님의 온화한 빛이 이 전후좌우를 두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혼자 수술실로 가는 게 아니었다. 얼마나 든든한지, 너무 편안했다.
그런데 수술 후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살 의욕이 없고, 눈물만 났다. 의사는 생식기를 다 없애서 오는 호르몬 부족이라고, 호르몬제를 주었다. 신기하게 감정이 다시 정상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간 병원에 있으면서, 도리어 쉬었다. 그동안 숨차게 사느라,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에 말씀을 가까이했다. 읽는 말씀 하나하나가 다 기도였다. 그때 내게 주신 말씀들을 노트에 기록했다. 말씀 자체가 생생하게 살아서 내게 역사하는 느낌이었다. 행복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딸과 외국을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 그러면 못 들어가는데, 못 들어가는데!”라고 안타까이 외치다가 꿈을 깼다. 천국에 가는데 너는 여권이 있느냐? 그것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얼마나 생생한지, 믿음의 여권이 없다면, 아무것도 소용없음을 철저히 느꼈다. 이 땅에서 그 여권을 꼭 가져야 했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단지 세상과 100년 삶에 파묻혀 이것을 외면하고 살뿐이다.
그런데 병문안을 오신 분들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물론 그분들은 저를 위해서 말한 것이다. 전도사님이 와서, “혹시 죄지은 거 있는지 꼭 돌아보고 회개하십시오.”라고 했다. 안 그래도 왜 이런 고통이 옵니까라고 하나님께 묻고 있는데, 거기다가 기름을 확 부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암 수술하고 나가서, 6개월 있다가 재발해서 죽었으니, 여러모로 조심하라고 했다. 나를 위한 말이지만, 불안한 내게는 불안을 가중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두 분 다 나를 위해 한 말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엄마가 “야 이제 정말 조심하고 일도 줄여라. 다시 재발하면 죽는데이.”라고 했다. 엄마의 말은 상처가 안 되었다. 가족이 말하니 괜찮고 남이 말하니 상처였다. 내 마음과 귀가 문제였다. 사람들을 내 형제, 자매, 부모로 볼 수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늘 수술 때마다, 하나님은 마음의 찢음과 확장에 대해 말하신다. ‘생사가 네게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땅의 삶에 연연하지 말고, 하늘의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비뚤게 살던 큰아이도 한순간 착해졌다. 저희에게도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가정의 재정과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누군가 ‘내가 쓰러지면 가족이 무너진다.’ 하던데, 나도 그랬다.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은 살려 주셨다.
임파선이 없으니 무리를 하면, 엉덩이와 하지가 퉁퉁 붓는다. 살이 찐 줄 알지만, 부은 것이다. 다리가 천근이다. 그러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얼음찜질을 해야 한다. 어떤 분은 한쪽 다리나, 팔이 3배 정도 커져서, 임파선이 저류 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쉽게 피로하고 지친다. 다 암의 후유증이다. 그래도 살려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급식 나눔과 입양을 했다.
암 환자는 수술 후, 5년 안에는 재발이 없어야, 안심한다. 그때까지는 섭생이나, 중한 노동 등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과 공기도 중요하다. 당시에 같이 위암에 걸린 언니가 있었는데, 당장 모든 일을 접고, 시골로 이사했다. 나는 일을 접을 처지는 안되고, 시골에라도 가서 살고 싶었다. 그때부터 시골 상사병이 생겼다.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남편에게 섭섭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잘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건강에 대해 안달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다. 열심히 살아왔고, 이런저런 풍파에 시달리며, 삶을 놓고 쉬어도 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아직도 감당해야 할 일들도 있지만, 이쯤 해도 된다는 생각도 같이 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건강 검진을 하지 않는다. 사지가 아프면 치료하고, 장기에 병들어 못 살 병이면, 그냥 호스피스 센터에 갈 예정이다. 오랫동안 장애인 상황에서도 살아왔으니, 몸도 이젠 쉬고 싶다고 한다. 너무 건강하려고 노력하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서서히 다리가 약해져 간다. 생에 대한 애착 없음이 나의 게으름과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괜찮다. 더 심하면 휠체어를 타려고 한다.
나는 70%의 능력으로, 그 이상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제는 쉬고 싶다. 비록 내가 이룬 것은 크게 없어도, 이제는 주님 품에서 안식하고 싶다. 물론 죽기 전까지 또 열심히 살 것이지만, 저기 하늘이 훨씬 더 좋은 곳이니까, 나 좀 데려가 주라, 거기 가서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