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홀로 빚을 갚은 삶
나에게 할머니는 헌신과 사랑이다. 그러나 그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과 외로움과 빚을 갚는 고독한 삶이었다. 할머니의 과거는 거의 베일에 가려있다. 평생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아버지도 안 했다. 그래서 여러 설이 있다. 우리가 듣기 좋은 과거는 결혼한 뒤, 남편이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가고,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다, 전쟁통 전에 아들 하나 데리고 남하한 것이다. 그리고 또 주워들은 나쁜 과거는 할머니가 첩이었는데, 남편이 소식이 없자, 남하했다는 것이다. 대쪽 같은 성격에 깔끔하고 오직 살림밖에 모르던 외골수인 것을 보면 전자가 맞을 거 같다. 후자라 하더라도, 기품이 당당한 할머니는 양반집 규수와 같았다.
그리고 오랜 뒤에 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인 이북에 가고 싶어 하셨다. 거기에 삼촌들이 있다고 했고, 그분들은 기독교인이었고, 목사도 있다고 했다. 아마 내가 신앙을 가지게 된 것도, 그분들의 기도 덕도 있을 것이다. 믿음의 대가 한세대를 넘어 이어지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히 있었다.
할머니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고달픈 나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남한에서, 독자 아들 하나 데리고 홀로 사셨다. 스스로는 어떤 돈도 벌 수 없는 여인이었다. 그냥 살림만 아는 아녀자였다. 때문에, 아버지가 9살 때부터 나무 패서 팔고, 주유소 사원으로, 기름때 묻은 돈으로 겨우겨우 살았다. 그렇게 살림만 하고 빠듯하게 살아도, 품위를 잃지 않는 꼿꼿한 여성이었다.
그러다 너무 배운 엄마를 며느리로 맞이하자, 자존심이 상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많았고, 또 홀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호되게 시켰다. 고부갈등이 심화되었다. 거기에다가 엄마가 소아마비 예방주사를, 내게 맞혀야 한다고 했는데, 유료인 접종이었다. 할머니는 “그거 안 맞아도 다 건강하게 산다.”라고 반대했고, 나는 예방주사를 못 맞았다. 그런데 내가 소아마비에 걸리자, 엄마의 말 없는 원망이 있었고, 서로 갈등이 더 심해졌다. 더구나 아버지가 바람이 나자, 그 모든 원인을 엄마의 교만 때문으로 보고, 미워하셨다.
그러나 할머니의 모든 삶은 내게 대한 속죄와 긍휼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업고 이리저리, 여기저기 치료를 위해 헤매고 다녔다. 방학 때는 한 달씩, 김천으로, 서울로 원정 치료를 받았다. 호청의 바늘땀의 수만큼 나는 침을 맞았다. 또한, 할머니도 시치던 바늘에 자신의 손을 찔리셨고, 가슴을 찔리셨다. 할머니는 나를 업고, 안수 새벽기도, 민간도사 등 종교에 상관없이 다녔고, 냉수 목욕과 정안 기도를 빠짐없이 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종교였다.
시골 학교는 멀었다. 할머니는 내가 웬만큼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나를 업고 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동생이나, 누구에게도 놀림받지 않도록, 나를 호위했다. 맛있는 것은 내게 먼저 주었다. 매일 따뜻한 밥을 해 주었고, 공부한다고 하면 동생들이 떠들지 못하게, 집안을 다스렸다. 여름날에는 곁에서 부채질을 해 주었고, 겨울이면 언 내 발을 가슴에 묻고 데워 주었다. 이불 안에, 새 내복을 따뜻하게 묻어두었다. 석유집을 하던 시골 일과 집을 다 팔고, 시내 좋은 학교로 전학 가야 한다고, 떼를 쓰신 분도 할머니였다. 나는 귀한 집 아씨였고 할머니는 종과 같았다.
서울서 대학공부 할 때도, 결혼 후, 살림을 도맡아서 하고, 증손자를 돌보는 것까지 다 하셨다. 이웃을 잘 사귀지도 않으셨다. 늘 혼자서 집안 살림을 하고, 손자 3명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셨다. 외로운 삶인데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 분이셨다. 오랫동안 혼자 사시면서, 혼자 사는 방법을 아셨다. 자신의 삶에 대한 더 이상의 확장을 원하지 않으셨다. 오직 나의 삶 가운데에 늘 계셨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웠다. 그것이 유일한 출구였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담배 한 대로 또 일어나 집안일을 다해 주셨다. 그 연기 속에 할머니의 깊은 한숨과 갇히고 서러운 세월이 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오직 유일한 낙은, 담배를 피우는 것과 뉴스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폐암이 왔다. 그래도 담배를 끊지 못하셨다. 폐암의 고통 속에서도, 할머니는 꿋꿋하셨다.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이 없으셨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내게 “네 친엄마 한번 보고 싶다. 내가 너무 심했어”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와 새엄마를 두고, 엄마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가지고 계셨던 모든 돈과 패물을 내게 주셨다
아주 옛날인데도 팔십오 세를 수 하셨으니, 오래 사신 것이다. 아마 나를 두고 가지 못해 오래 사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다. “내게 고운 명주 수의를 입히지 마라. 그리고 너에게 미안하다”였다. 그리고는 담배 한 대만 달라고 하셨다. 그 담배의 흰 연기는 할머니의 한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나를 놓았다. 자신을 때리던 매질을 멈추셨다.
할머니의 삶은 외로웠다. 그리고 서러웠다. 그러나 나를 향한 애닮음으로 그 외로움과 서러움에 빠져 살 수도 없었다. 할머니의 삶은 빚을 갚듯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그 모든 시간은 나를 위해 스스로를 묶은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