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놀이터 오 골 마당

by 선지은

유년의 놀이터 오 골 마당

어릴 적 자랐던 작은 골목 안에는 오 골 마당이 있었다. 다섯 개의 골목이 한데 모이는 조그마한 광장 같은 곳이었고,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이발소, 구멍가게, 채소전, 문방구 등이었다. 그리고 가게들 앞, 여기저기 좌판들이 있었다. 그 시절, 기억나는 좌판은 시원한 냉차를 파는 리어카, 앉아서 뽑기를 할 수 있는 구멍가게 앞의 달고나였다. 어른들은 모여서 장기바둑을 두거나, 돌아가는 세상 이야기를 했다. 작은 주점도 있어서, 밖에다가 깡통 탁자를 놓고 막걸리도 마셨다.

가끔 엿장수도 오고, 고물 장수도 오고, 화장품 장수, 만물상 장수, 칼 가는 장수도 왔다. 엿장수가 오면 애들은 집으로 달려가 헌 병이나, 헌 신발 찌그러진 냄비 등을 가지고 와 엿으로 바꾸었다. 어떤 애는 사용하고 있는 가정용품을 가져와 엿으로 바꾸다가, 부모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화장품 장수에겐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서 발라보고, 냄새를 맡고, 호들갑을 떨며 더 예뻐지기를 바랐다. 우리가 옆에 가서 부러운 듯이 쳐다보면, “애들은 가라”하는 핀잔을 들었다. 엄마가 집에 사다 둔 화장품을 훔쳐 바르는 줄은 모르시나 보다. 아저씨들은 만물 장수가 가져온 새로운 공구들에 관심이 많았다. 날들을 살피고, 쓰는 법을 묻고, 집에 있는 공구들의 수리를 맡겼다.

다섯 골목 안의 집집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지난밤에 일어난 가정사들이 여기서 다시 펼쳐졌다. 다 비슷비슷하게 울고 웃고 사는 사람들이라, 어떤 가정의 슬프고 기쁜 이야기들에 비아냥과 질투는 없었다. 남편을 욕하면 같이 맞장구를 치고, 자식이 속을 썩이면, 같이 쯧쯧 하며 가여워했다. 누군가 군대 가면 오 골 마당이 떠들썩했고, 누가 결혼을 하면, 온 동네에 떡과 고기가 나누어지고, 한복과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한바탕 몰려서 나왔다.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제기 차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등등 여러 가지를 했다. 나는 구슬치기와 땅따먹기를 좋아했다. 구슬을 치다가, 모양이 이쁜 구슬은 따로 서랍에 넣고, 만지며 즐거워했다. 모두가 구슬을 주머니가 늘어지게 모으고 싶어 했다. 땅따먹기는 돌을 손으로 튕긴 다음, 거기서부터 손 뼘을 그리면 내 땅이 된다.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서 땅을 따먹다가, 저녁 시간에 늦어서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낮에 몰려서 놀다가, 여자친구 몇몇은 저녁 먹고 사람들이 없을 때, 다시 모였다. 거기에 모여, 우리는 자주 노래자랑 퍼포먼스를 연습했다. 동요와 가요도 부르고, 노래에 맞는 율동도 만들어 연습했다. 율동을 만들고 춤추며 돌고, 노래 부르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나는 춤을 출 수는 없었어도, 가사에 맞는 율동을 잘 만들었다. 우리는 저녁 내내 경연에 나가기 위해, 까르르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을 연습했다. 며칠 뒤에, 우리 집 이층 다다미방에서 어린이 노래자랑이 있었다. TV 방송을 보고, 여자애 10명 정도가 하는 경연대회였다.

나는 사회를 맡아 전체 진행을 자주 했다. 색종이 꽃으로 장식한 번호표를 만들어, 출연자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아나운서의 서울말 흉내를 내었다. “우리 동네 가장 예쁜 눈동자의 아가씨 1번 000입니다!” “이 경연을 위해 밤낮 율동 연습을 한 000가 나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가수 남진과 김상희 노래를 같이 불렀다. 내가 심사도 보고 점수를 매겨, 상도 주었다. 상은 집에서 떼를 써서 받아오거나, 살짝 훔친 과일과 과자였다.

그리고 오 골 마당을 좋아한 이유는 또 있었다. 장사에 관심이 많아서, 구멍가게 주인아줌마 옆에서 장사를 도왔다. 주인은 안 되어 보였는지, 거기서 놀게 했다. 구멍가게 주인은 바빴다. 온갖 과자와 잡동사니를 파는 데다, 어묵도 팔고, 달고나도 팔았다. 겨울날, 주인이 어묵을 썰어서 꼬지에 끼우는 것을 보았다. 노는 날이면, 아침 일찍 가서 어묵을 끼우는 것을 여러 번 도왔다. 주인은 “참 별나네, 이것이 그렇게 하고 싶냐?”하면서도 이렇게 썰고 끼우라고 가르쳐 주었다.

주인에게 졸라 달고나를 파는 자리에 앉아, 달고나도 팔아보았다. 달고나는 작은 연탄 화덕에 설탕을 넣은 국자를 준다. 그러면 아이들이 순서대로 설탕을 녹이면, 내가 알맞게 소다를 주었다. 소다를 많이 넣으면 달고나가 구멍이 숭숭 나고 잘 부서졌다. 설탕을 다시 저어서 달고나가 부풀어지면, 애들이 원하는 여러 모양을 눌러주어야 했다. 그 누르는 것이 기술이었다. 너무 누르면 달고나를 떼어 내기가 쉬워서, 상품은 달고나를 다시 하는 것인데, 설탕이 계속 나갔다. 너무 누르지 않아 떼기가 힘들면, 두 번, 세 번 달고나를 하지 않아, 수입이 적었다. 이 고도의 기술을 배워서, 달고나도 팔았다.

여름엔 냉차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서 내가 좀 팔아주겠다고 했다. 땡볕에서 냉차를 파는 일은 힘들지만, 즐거웠다. 시원한 냉차를 유리잔에 한 잔 주고, 대야에 있는 물에 컵을 씻어서 엎어둔다. 동전 들어오는 일이 좋았는지, 사람구경이 좋았는지, 여름엔 냉차 장수 옆에서 냉차를 파는 일도 했다.

오 골 마당은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였고, 장사 터였고, 사람 구경이었고, 세상 살이의 배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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