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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May 26. 2022

쓰지 못한 날들에 대한 긴 변명

 일을 그만둔 지 5개월째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지는 벌써 한 달째다. 뭐라도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무력감이 세트처럼 찾아와 마음을 들쑤신다. 퇴사하면 지난 10년간 장애인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경험한 것들에 대해 글로 써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5개월째 진전이 없다. 이렇게 에세이 수업에 제출할 글만 마지못해 근근이 쓰고 있다.

호기롭던 다짐과 결심은 언제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몸을 움직여 달려들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싸한 다짐과 결심도 그저 힘없는 농담으로 끝나 버린다. 그나마 이번에 확실히 배운 건, 다짐이나 결심은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 없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말에 책임을 지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사실 다들 별 관심이 없다)과 쓸데없는 스트레스만 얻게 될 뿐이다. 그냥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무조건 놀기만 한다고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한다.   


 실은 갑작스러운 퇴사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긴 했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타당한 이유.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매우 그럴싸한 이유가 되었다. 요즘은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자기 글을 쓰는 시대이기도 하고, 직업적인 면에서도 내 분야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쓴다는 건 분명 큰 장점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마치 비장한 다짐을 하듯 올해 일 년은 글을 쓰며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다음 행보를 준비하겠다고 사방팔방 이야기하며,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처음엔 정말 뭔가 시작하는 듯했다. 난생처음 블로그를 만들고, 평소 잘하지 않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그러나 시작은 역시 반이 아니라, 그저 시작일 뿐인지, 5개월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SNS에 글을 올리면 괜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누군가가 내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면, 나도 그의 피드에 ‘좋아요’를 눌러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점점 피곤해지고 금방 싫증이 났다. 역시 나는 SNS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다른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셀프 안식년’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 개의 글을 꾸준히 올려보자 다짐했지만, 한 달에 한 개를 올리기도 버거워 두 달째 휴재 중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출발하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처음 도착한 휴게소에서 갑작스럽게 여행이 중단된 기분이다. 애초에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또 왜 가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해져 난감하고 황당한 기분.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특히 소설과 만화책을 좋아했는데, 배를 깔고 누워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수업시간에도 책상 서랍 속에 책을 펼쳐 놓고 선생님 몰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었고, 가끔 드물게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대학 입학 시,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그런 마음을 이야기하진 못했. 글 쓰는 일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내가 입학한 대학에는 문예창작학과가 있었는데, 3학년 1학기에 용기를 내어 '문예창작 입문' 수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거기서 첫 번째 과제로 제출한 글에 대해 뜻밖에 칭찬을 받았다. 교수님은 이후에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말씀하셨는데, 졸업 후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내내 글쓰기에 대해 갈망은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15년 만의 퇴사의 이유를 글쓰기로 정했을 때 드디어 오랜 갈망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고, 정말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발뺌을 하고 있다. 정말 글이 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역시 글쓰기는 퇴사를 위한 좋은 핑계일 뿐이었나. 매일 데리고 사는 내가, 가끔 이렇게 내 뒤통수를 세게 때릴 때가 있다. 마흔세 해를 나로 살았는데, 아직도 내가 새롭다.


 만약 글쓰기에 대한 오랜 갈망이, 실은 환상에 불과하고 진짜 욕망이 아니라면 나는 이 버거운 짐을 계속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타인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에, 나의 다짐 따위는 진작에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정말 글쓰기가 나의 오랜 갈망이 아닌지,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쓰지 못했다는 압박감과 죄책감, 무력감에서 해방되든, 축 처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토닥여 다시 노트북 앞에 앉힐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이토록 글쓰기가 두려워진 이유를.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글을 쓸수록(사실 얼마 쓰지도 않았다) 한없이 부족한 어휘력과 얕디얕은 생각의 깊이만 두드러져 보였고, 그런 한계를 과감히 뚫고 나갈 재능과 근성이 내게는 없는 것 같았다. 뭘 써도 새롭지 않았고, 늘 거기서 거기인 듯 재미없고 평범한 문장들을 보며 ‘대체 이런 글은 써서 뭐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찰떡같은 표현과 문장들에 감탄했다. 그들의 독창적이고 깊은 사유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죽기 전에 절대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이라 자조했다. 전문작가도 아니면서 자기 글을 쭉쭉 써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백수가 되기 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글을 써 보겠다고 다짐하기 전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글에 감탄하고, 환호는 자주 했지만 질투하며 한탄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건 그들의 일이고, 나의 일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의 빛나는 재능을 부러워하며 점점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노트북을 펴고 책상에 앉는 대신, 소파에 길게 몸을 누이고 TV를 켰다.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을 정신없이 오고 가며,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을 멀뚱히 바라봤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오후 3시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대충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무기력은 날이 갈수록 몸집이 커졌고, 곧 몸뚱이에도 전이되어 출산 이후 역대급 몸무게를 기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 줄도 쓰지 못한 밤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알바천국, 알바몬 같은 취업 정보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아무도 등 떠민 사람 없는데, 제 발로 회사를 나와 놓고는 몇 달도 되지 않아 일할 곳이 없나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계속될수록, 더욱 취업 사이트를 습관처럼 들여다봤다.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면, 글을 쓰지 못했다는 이 찝찝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루 서너 시간만,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사이, 집과 가까운 곳. 그런 맞춤형 일자리를 찾는 일은 아파트 청약 당첨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만 확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냉정한 현실을 깨달은 뒤론, 더는 졸린 눈을 비비며 취업 정보 사이트를 하릴없이 들여다보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인기 블로그나 전문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야심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매일 서너 시간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며 내가 통과해 온 지난 시간에 대해, 만나왔던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었다. 또 15년간 직장인으로 쉼 없이 달려왔으니, 잠깐 멈춰 서서 지금의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을 천천히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며, 현재를 좀 더 농밀하게 살아가며 앞으로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여있는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가지런히 나열하고, 나라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흔들렸고, 슬펐으며, 기쁘고, 감동했었는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주고 싶은지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쓰는 일이 막상 너무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좋아하는 일이 다 잘하는 일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 이왕이면 잘 쓰고 싶었다. 그런데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도리어 내게 덫이 되어, 나를 꽁꽁 묶고 한 줄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이렇게 긴 변명을 늘어놓으며, 이제야 조금씩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내려놓기. 어떤 문장이라도, 단 한 줄이라도, 정직하게 내 언어로 표현하기. 다른 사람 따라 하지 않기.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두려움을 내려놓고 매일 한 줄이라도 쓰는 것, 그것뿐이다.


동네 카페에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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