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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pr 07. 2022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2)

"엄마 백수야?"


천진한 표정으로 아이가 묻는다.


"응......"

"근데 백수가 뭐야?"

"글쎄. 정확한 뜻이 뭐지.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인가. 네이버에서 찾아봐야겠다."


"근데 엄마는 왜 백수가 됐어?"

"음...... 글쎄......"


"그냥 다시 복지관 다니지 그래?"

"이제 그만둬서 다시 못가."

"왜?"

"음...... 엄마가 안 다닌다고 그만뒀으니까......"

"에이, 다시 다니면 되잖아."


아이는 '복지관'이 언제라도 다시 갈 수 있는 학원쯤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아이의 물음에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하고 어, 음, 그러니까 하며 시간을 끌었다.

분명 내가 선택해서 결정한 일인데, 누군가 왜 그랬냐고 물으면,

어, 음, 그러니까 하며 말끝을 흐리게 될 때가 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혼잣말처럼 이렇게 얘기했다.


"15년 동안 다녔으니, 잠깐 쉬어도 괜찮아."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이미 저만치 떨어져 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나의 두 번째 직장은 서울 근교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이었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처음으로 일한 곳이자, 직장인으로 가장 오래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의 삼십 대 인생의 대부분이 그 안에서 혹은 그 곁에서 만들어지고 흘러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복지관에 입사했을 때, 나는 얼마간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둥둥 떠 다녔다.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다 낯선 행성에 불시착을 한 것처럼, 이전까지 평범한 지구인으로 살다가 일순간 외계인이 되어 버린 것처럼 당황스럽고 멀뚱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복지관은 이전에 내가 보고, 듣고, 발 붙이며 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민간기업에서 일을 하다 복지관 같은 비영리기관으로 옮겨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의 내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사회초년생 동기들보다 예닐곱 살은 많았고, 또래의 동료들과는 직급과 경력에서 차이가 났다. 나이와 직급, 경력의 차이는 은근히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누가 일부러 만든 벽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벽이 나와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다. 실은 사회복지사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이런 것들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전쟁터 같은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 공부를 하고 사회복지사가 되면 모든 게 지극히 평화롭고 순조롭게 흘러갈 거라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참 순진하고 무지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복지관과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서른셋, 나이 많은 1호봉 신입 사회복지사. 월 급여 200만 원(세금 떼면 그 이하).

뒤로 몸을 저치고 기지개를 켤 수조차 없게 비좁고 낡은 사무실


그것이 내가 새롭게 발 디딘 현실이었다. 적잖이 실망하고 후회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나의 도전을 힘껏 응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엄마는 단연 최고였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재연하듯 넥타이를 이마에 묶고 몇 날을 드러누워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결사적으로 반대했었으니.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고 후회하면 안 됐다. 절대로.


돈은 적게 벌지만, 마음은 편해.

난 괜찮아. 정말이야. 진짜야.


실망과 후회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 자신까지도 속였던 날들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면 그 집이 진짜 내 집, 내 공간으로 느껴지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서 두렵기까지 했던 가정 방문과 상담도 여러 번 반복하니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이전보다 조금은 넓어졌다. 세상에는 이처럼 다양한 개성들과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진, 굴곡진 삶을 마주할 때마다 무언가 배우게 됐다. 섣불리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고, 마음대로 불쌍히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상담일지 몇 줄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불행하게만 보이는 인생에도 가끔은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것을.


만족은 그런 것들에서 왔다. 좁고 낡은 업무 공간과 낮은 급여는 여전했지만 다른 형태의 만족이 찾아왔고, 나는 그렇게 조금씩 사회복지사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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