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종말임박, 프로젝트의 대한민국 담당자로 국민을 설득하는 글을 써보라
2022.11 글쓰기 주제
20◇◇년, 당신은 지구 종말에 대비한 '노아프로젝트'의 대한민국 담당자로 임명되었다. 대한민국과 관련된 단 세 가지만 이 '절대 방주'에 실을 수 있다면 무엇을 싣겠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과 세계시민을 상대로 설득, 설명하는 글을 써보라. (유형/무형, 생물/무생물 무관. 그 외 상황들은 마음대로 가정).
“미쳤습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데 고작 그딴 것을 가져와요?” 웅성거리던 회의장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씩씩대는 모 장관의 거센 숨소리만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방구석에서 책만 읽던 사람을 데려오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냐! 그런 낭만은 혼자 즐기시라고, 나 참 답답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어요? 어디 변명이라도 좀 해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눈이 한 사람을 향했다.
보푸라기 잔뜩 일어난 겉옷으로 간신히 감춘 것처럼 보이는, 산맥처럼 솟아오른 앙상한 어깨뼈가 천천히 오르내렸다. 그는 그 건조하고 주름진 손으로 유리병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리병에는 작은 돌들이 섞인 흙과, 탁한 물이 담겨있었다.
카메라를 잡고 있던 ㅂ은 숨이 턱 막혔다. 현장은 국민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방송 사고일 것이다. 마른 침을 삼켰다. 모 차관이 이를 수습하려는 듯 황급하게 끼어들었다. “아니, 우리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지 않습니까? 다른 분들의 도움을 조금 받아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전문가를 찾아서...”
지구 종말에 대비한 '노아프로젝트'.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음모론 정도로만 여겨지던 지구 종말이 현실의 국가안보문제로 떠오른 것이 벌써 6년이다. 인류가 이뤄낸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전 세계 각 국이 힘을 합쳐 ‘절대방주’를 만들었다. 이 방주는 언젠가 지구를 떠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미래 인류, 우리 문명을 발견할 외계생명체에게 발견되는 것을 목적으로 멀리 우주 공간에 쏘아질 계획이었다. 공간과 연료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모든 나라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술 지원 덕에 운 좋게도 대한민국은 세 가지를 실을 수 있었다. 간신히 얻어낸 세 자리였다.
미래에 전해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를 선정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보여줄 수 있으며 역사와 전통,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하며... 위원회는 이를 포함한 여러 기준을 제시했다.
그렇게 결정된 두 가지가 ‘훈민정음 해례본과 훈민정음’,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본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 문화, 언어, 이념과 목표를 모두 담은 것으로 선정한 이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오늘이 대망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한 가지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종말의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저 나뭇가지 같은 늙은이 하나가 고작 지저분한 흙과 탁한 물이 담긴 정체불명의 유리병을 가져 온 것이다. 아찔했다. ‘공직 경력이 여기서 끝나겠구나. 뭐 종말이면 어차피 끝나겠지만...’ 주먹 쥔 ㅂ의 손바닥에 깊은 손톱자국이 생겼다.
“저 인간 여기서 빨리 치워!“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려던 순간, “이게 대한민국입니다!”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나뭇가지 노인의 어디에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오는지. 그의 충혈 된 눈이 반짝였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얇은 입술에서 마른 나무껍질처럼 갈라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국민과 주권이 국가를 이루는 요소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을 상징하는 훈민정음을, 주권을 상징하는 헌법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상징일 뿐입니다. 국민과 주권을 직접 실을 수 없었기에 선택한 차선일 뿐입니다. 지금 이 유리병에 담겨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왔던 땅입니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영토를 미래에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실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 육지과 바다가 대한민국이 존재했다는 물리적 증거가 될 것입니다. 공허한 우주 공간에서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왔던 땅은 위로와 안식이 될 것입니다. 단지 그 뿐이 아닙니다. 이 흙과 물을 분석해 대한민국의 환경을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걸 넣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우리가 실재했다는 증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