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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 Dec 20. 2022

Due cappucini

[친구와 떠난 애둘맘의 이탈리아 여행기 - ② 여행의 시작]


마흔이라는 나이와 여행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나였다.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이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친구와의 여행을 꿈꾼 것으로 보아 조금은 자유로움이 남아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남의 일 같기만 한 마흔이라는 먼 미래를 상상하며 시작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여행을 하기 위해 말하기 좋은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내가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겨 두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도 우리 가족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과의 여행이라 일정은 하루에 한두 개 정도만 하기로 했다. 움직임이 그나마 적은 볼거리들 위주로 계획했고 맛있게 드실만한 식당 정보도 충분히 검색했다. 나름 고민해 계획한 일정임에도 걸음이 조금 길어지면 두 분은 어김없이 아이들과 우리 부부만 다녀오라며 손을 내 저으셨다. 아무리 좋은 풍경을 보아도 큰 감흥이 없으신 것 같았다. 혹은 아주 짧은 찰나의 감상을 지나면 금세 빈 얼굴이 되셨다. 맛있는 음식이라고 소개를 해 드려도 결국 돌아와 찾으시는 것은 김치와 밥이었다. 당신들에게는 더없이 귀한 막내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이 낳은 손자들과 함께 하시면서도 크게 즐거워하거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으셨다. 적어도 며느리인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남아있기는 하신 걸까. 두 분은 마치 몸에 갇혀 계신 듯했다. 오도카니 그저 지켜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한 표현인 것 같았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의 켜에 약해진 체력을 이겨낼 만한 즐거움이 아니었다.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올 해부터 해마다 해외여행을 한 번씩 간다고 상상해 보았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걸을 수 있는 자유여행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환갑을 몇 년 지난 나의 부모님을 떠올려 보며 적당한 나이를 가늠해 보려 애썼다. 여행을 좋아하는 난 일흔도 끄떡없을 것 같지만 환갑 정도로 쉽게 셈 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난 앞으로 스무 번의 능동적인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해외를 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고, 여행지와 여행기간 역시 여러 제약이 있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곳이 궁금한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프리카의 초원도, 무한히 펼쳐진 모래사막도, 빙하에 둘러싸인 알래스카도 나는 아직 못 보았는데 어쩌나. 열심히 보아도 세상을 다 보지 못하고 나이가 들 것이 자명했다. 한 번의 여행도 소중했다. 특히 이번과 같이 친구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라면 더욱이 그러했다.



그렇기에 여행지는 그 어떤 때 보다 중요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난 20대에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적금을 넣었었다. 그러다 누구에게나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마구 만들어 주던 그때, 겁 없는 대학생은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신용카드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던 나는 몇 달 뒤 청구서를 보고 결국 적금을 깨야 했다. 그렇게 20대에 가지 못한 유럽여행은 직장인이 되니 더 가기가 어려웠다. 유럽은 경제적 여건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요하는 특별한 여행지이다. 휴가와 공휴일을 끌어 모아 가는 곳은 보통 비행기로 6시간 이내의 곳들이었다. 신혼여행을 파리로 다녀올 만큼 나는 유럽이 궁금했다. 코로나가 잦아들 더라도 여행이 가능해 보이는 시기는 올해 말. 아이 둘을 낳고 추위를 타게 된 나는 겨울의 유럽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는 어떨까? 그즈음이면 뉴질랜드와 호주는 여름에 가까워질 것이다. 비행시간과 비용이 비슷한 유럽과 비교하니 여전히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젊음을 시험할 수 있는 열정의 상징은 유럽 배낭여행이 아니던가.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라면 그 젊음과 낭만이 당연히 우리에게 아직은 좀 더 잘 어울린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역시 유럽이다. 문득 설국열차가 달리는 트레블 잡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겨울 스위스의 추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상상을 하며 여행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동안 우리는 여러 나라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복한 방구석 유럽여행의 시간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한 나라로 마음을 모았다.



본 죠르노. 이탈리아였다.

코로나로 많은 나라들이 직항 노선이 없어지거나 취항 요일이 맞지 않았다. 나에겐 주어진 시간을 경유로 쓸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미국에서 출발하는 친구와 한국에서 출발하는 나의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거의 유일 한 나라였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세계 유산들이 차고 넘치는 곳. 체력이 고만고만한 마흔쓰의 여행임을 고려해도 10월 이탈리아의 비교적 따뜻한 날씨는 즐거운 여행이 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올 초, 동생네 가족이 이탈리아로 짧은 이민을 떠났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한 식당에서라도 동생과 만나 밥 한 끼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이색적인 일인가! 모든 상황이 우리를 이탈리아로 이끌고 있었다.



우리는 항공권을 샀고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로마 공항만 열려있는 상황이라 우리는 로마 in 로마 out으로 하는 다소 억울한 일정을 계획해야 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은 미련을 두지 않는다. 다만 너무 많이 남아있는 시간이 문제였다. 어렵게 가는 여행인 만큼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난 이탈리아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켜기만 하면 이탈리아 음식부터 소매치기 영상까지 나에게 끊임없이 추천해 주었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몇 편 다시 찾아보았다. 내가 저곳을 가다니. 지금도 저 모습 그대로일까. 임신을 하면 어딜 가든 임산부만 보였던 것이 참 신기했었다. 지금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탈리아에 대한 것들이었다. 때마다 기분 좋은 설렘이 물처럼 차올랐다 서서히 빠져나갔다. 간단한 이탈리아어를 읽고 말하는 연습도 했다.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여행에는 꼭 필요했다.



나는 여행의 설렘을 끊임없이 되새김하며 10월을 기다렸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일상에 우선 하는 일은 없었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작은 활력이 되어주었다. 그래 맞다, 나 올해 이탈리아 가지? 일상에서 내 등을 두드려주는 것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여행을 준비하는 일상 속에서 함께 시작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곧 이탈리아의 가을 냄새를 알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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