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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변호사 Sep 14. 2021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일 때

상속 한정승인과 상속포기


  상속 전문 변호사로서 일하다 보니 부모님의 빚 문제로 고민을 하는 분들로부터 많은 상담문의를 받습니다.


  뉴스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벌들처럼 회사의 경영권이나 큰 재산을 놓고 형제들 사이에 분쟁이 있는 상황만을 상속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천애고아로 자라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상속은 누구나 언젠가는 겪어야 할 상황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부모님은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고, 평생 독신으로 산 형제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분으로부터 물려받을 재산보다 빚이 더 크다면 반드시 이 문제를 정리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속인 본인의 경제적, 사회적 삶에 큰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상속(相續)은, 법률의 규정에 의해 자연인의 재산법 상의 지위가 그 사망 후에 특정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1) 이를 쉽게 풀어쓴다면,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법률상 '피상속인'이란 단어를 씁니다) 그 사람의 승계인('상속인'이라고 합니다)이 피상속인의 모든 재산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이어받는 것을 상속이라고 하죠.


  이 재산적 권리와 동시에 의무도 같이 승계하기 때문에, 피상속인에게 채무가 있다면 상속인들은 채무까지 상속받습니다.


  만약 물려받은 재산으로도 그 빚을 갚을 수 없다면, 상속인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재산으로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면 너무나도 가혹한 결과가 되겠죠.


  그래서 민법은 물려받은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을 때(또는 많을 우려가 있을 때) 이런 빚의 상속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상속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입니다.


Image by Quang Nguyen vinh from Pixabay


민법
제1019조(승인, 포기의 기간) ①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다.
제1028조(한정승인의 효과) 상속인은 상속으로 인하여 취득할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할 수 있다.
 제1030조(한정승인의 방식) ①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함에는 제1019조 제1항 또는 제3항의 기간 내에 상속재산의 목록을 첨부하여 법원에 한정승인의 신고를 하여야 한다.
제1041조(포기의 방식)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할 때에는 제1019조 제1항의 기간 내에 가정법원에 포기의 신고를 하여야 한다.
제1042조(포기의 소급효) 상속의 포기는 상속 개시된 때에 소급하여 그 효력이 있다.


  상속의 포기와 상속 한정승인은 모두 일정기간 내에 법원에 신고를 하여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상속포기각서'를 썼다는 것은 상속포기가 될 수 없습니다. '상속포기각서'는 상속인들 사이에 자신은 재산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 즉, 상속재산분할협의의 한 내용에 불과하죠.


  법원에 상속포기를 하면 그 상속인은 상속개시시(피상속인의 사망시)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닌 것처럼 됩니다. 그럼 상속재산을 분배받을 수 없지만 반대로 상속채무를 갚을 의무에서도 완전히 벗어납니다.


  한편, 법원에 한정승인을 하면 그 상속인은 상속을 받은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을 의무를 부담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만약 피상속인이 1억 원의 재산과 10억 원의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했다면 그 상속인은 1억 원의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을 책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상속인은 여전히 9억 원의 채무가 남아 있지만 자신의 재산으로 그 재산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피상속인의 채권자는 9억 원의 채권을 변제받을 길이 없어지겠죠.


  다만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은 상속재산을 관리하고, 채권자에 대한 공고 및 최고, 여러 채권자들에 대한 배당 변제 등의 의무를 이행하여야 합니다.


Image by Bessi from Pixabay


  그렇다면 상속인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면 그만인 것 같은데, 왜 한정승인을 하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속인의 순위를 알아야 합니다.


민법
제1000조(상속의 순위) ① 상속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3.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
② 전항의 경우에 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친등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공동상속인이 된다.
제1003조(배우자의 상속순위) ①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제1000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인이 없는 때에는 단독 상속인이 된다.


  위 조문에서 직계비속(直系卑屬)은 본인으로부터 곧장 밑으로 내려간 혈족 즉, 자녀, 손자녀, 증손자녀 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직계존속(直系尊屬)은 조상으로부터 직계로 내려와 본인에게 이르는 혈족, 즉,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등을 말합니다.


  그래서 피상속인에게 자녀와 손자녀와 같은 직계비속이 있으면 피상속인의 부모나 형제자매는 상속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때 피상속인에게 자녀와 손자녀가 모두 있으면 자녀가 최근친 직계비속이므로 자녀만 상속인이 됩니다.


  그런데 피상속인이 재산보다 채무가 많은 상태에서 배우자와 직계비속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해버리면,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나 4촌 이내의 방계혈족들이 또 법원에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 신고를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다른 친족들에게 큰 민폐를 끼치는 결과가 되겠죠.


  그래서 위 상속순위에 있는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한정승인을 하면, 그 사람의 후순위자들은 상속인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보통은 최선순위 상속인 중에 한 명이 한정승인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피상속인 사망 직후에 상속인들이 상속재산과 채무를 조회했음에도, 상속재산보다 채무가 더 큰지 확실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무턱대로 상속포기를 하면 상속재산을 전혀 분배받을 수가 없겠죠. 나중에 채무보다 재산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말입니다.


  상속 전문 변호사로부터 상속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에 관해 상담을 받아보셨다면, 보통은 상속인 중의 한 명 정도는 한정승인을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럼 피상속인에게 자녀와 손자녀가 있고, 배우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누가 한정승인을 하고 누가 상속포기를 해야 할까요?


  모법답안은 자녀 중에 한 명이 한정승인을 하고, 배우자와 다른 자녀들이 상속포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손자녀의 상속포기 신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1순위 직계비속이면서 최근친인 자녀 한 명이 한정승인을 하면 다른 공동상속인들이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후순위자들에게 상속권이 넘어가지 않죠(손자녀들은 직계비속이지만 상속인은 아닙니다).


  반면에 배우자가 한정승인으로 하고 자녀들이 상속포기를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1순위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인데, 손자녀 역시 직계비속이기 때문이죠. 자녀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면,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됩니다. 이 점을 정말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할 예정이라면 반드시 손자녀도 같이 상속포기를 해야 합니다.


  또한 피상속인에게 2순위 직계존속이 있는 상태에서 1순위 직계비속이 모두 상속포기 신고를 했을 경우, 그 2순위 직계존속과 배우자가 공동상속인이 되기 때문에 또 직계존속이 상속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여야 합니다.


  

Image by David Mark from Pixabay


  피상속인이 사망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면 돌아가신 분의 빚으로부터 나의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을 놓쳤다거나 잘못된 법률조언을 받고 엉뚱하게 한정승인 또는 상속포기를 했을 때에 입을 피해는 상속채무액수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의 기간을 놓쳐 상속채무를 떠안아 파산을 하거나,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해야 하는데 상속포기각서를 써놓고 안심하다 채권자들로부터 사해행위취소소송을 당하는 등 정말 상상하는 것조차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물론 피상속인의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속인들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여 결국 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가 생기겠지만, 피상속인의 상속인들이 자신이 빌리지도 않은 돈 또는 보증서지도 않은 채무 때문에 큰 피해를 봐서는 안 되겠죠.


  이렇게 상속포기와 상속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빚으로부터 나의 삶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자 유일한 수단입니다. 만약 부모님이나 형제가 빚이 많은 상태에서 돌아가셨다면 잊지 말고 법원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여 그 빚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1) 친족상속법 강의, 윤진수, 박영사, 2016. 3. 26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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