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고 영리하게 유언 남기려면
자신의 재산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보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자유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일정 부분 이어집니다. 바로 ‘유언’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말이죠.
유언은 그저 단순한 문장이 아닙니다. 유언장을 쓰는 순간, 재산의 향방과 가족들 사이 관계까지 바꿔놓는 힘을 가집니다. 유언장이 때로 유산 분배를 둘러싼 가장 격렬한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유언장에 적힌 내용은 무조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런 유언장을 남기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요? 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박 선생은 평생을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자식 셋을 두었고, 은퇴 후에는 막내딸 수진 씨 부부와 함께 지냈습니다. 박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막내 수진 씨가 형제들을 불러 모아 한 장의 유언장을 꺼내 보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걸 쓰셨어요. 전 재산의 80%를 저에게 주시고, 나머지는 큰오빠와 둘째오빠에게 각각 10%씩 남기신다고 하셨어요.”
장남인 경수 씨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셨다고? 글씨 쓰는 걸 귀찮아하시던 분이 직접 그걸 썼다고?”
둘째 아들인 민수 씨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게 정말 아버지가 쓰신 게 맞는지 모르겠네. 저렇게 긴 글을…”
막내딸 수진 씨는 아버지의 마지막 뜻을 존중해달라고 말했지만, 두 아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박 선생의 평소 성격을 아는 경수 씨는, “아버지 성정상 자식 간에 차별을 두셨을 리 없다”며 유언장의 효력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가족 간 유언장을 둘러싼 갈등은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유언이 그만큼 강력한 효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은 상속 순위나 상속 지분을 전면적으로 바꿔놓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이 충격적이어도 유언이 효력을 가지려면 법이 정한 형식을 엄격히 갖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박 선생이 남겼다는 유언장은 흔히 많이 사용되는 ‘자필증서 유언’의 형태였습니다. 이 방식은 유언자가 직접 유언장 내용을 손으로 써야 하는 등 민법이 정한 다음 요건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유언의 전체 내용을 자필로 작성할 것
작성한 날짜(연·월·일)를 명확히 기재할 것
주소와 성명을 자필로 써야 할 것
도장이나 서명을 반드시 날인할 것
이 네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유언장은 법적으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예컨대, 작성 날짜가 ‘2024년 봄’처럼 애매하거나, 주소를 쓰지 않았거나, 서명이 빠졌다면 유언장은 휴짓조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사례에서처럼 유언 내용이 다소 편파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유언장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식적 요건만 충족된다면, 유언 내용은 피상속인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매우 불균형하거나, 평소 피상속인의 언행과 맞지 않다면 유족들은 종종 진정성 여부나 작성 당시 정신상태를 문제삼게 됩니다. 실제로 유언이 조작되었거나 강요되어 작성된 경우라면, 별도 소송을 통해 유언 효력 여부를 다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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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필 유언이 간단해 보이지만, 위·변조 의혹이나 작성자 본인의 의사 여부로 인해 분쟁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막고자 한다면 ‘공증증서 유언’(유언공증)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공증 유언은 공증인 앞에서 유언 내용을 말하고, 이를 공증인이 정식 서류로 작성하는 방식입니다. 증인 두 명의 입회를 요구하는 등 절차는 복잡할 수 있지만, 유언의 진정성과 효력에 대해 법원이 인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무엇보다 공증 유언은 사후에 바로 상속재산의 등기나 명의변경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가족 간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피상속인에게는 가장 안전한 선택입니다.
법적으로 유언은 강력한 효력을 갖지만, 때때로 그 유언장이 가족의 마음을 갈라놓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유언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법적 요건을 철저히 갖추면서도 가족의 기여와 관계, 감정 등을 충분히 반영한 유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자녀가 부모를 오랫동안 부양해왔다면 다른 자녀들보다 조금 더 많은 몫을 유언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자녀에게 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상속분(유류분)은 반드시 보장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유언은 재산의 향방을 정하는 문서이자, 가족에게 남기는 마지막 의사표시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형식을 갖춘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유언을 준비하거나, 누군가의 유언장에 의문이 든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최선입니다. 유언의 법적 요건, 해석 가능성, 분쟁 대응까지 미리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유언장은 가족 간 신뢰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도 있고, 다툼의 불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지금 준비하기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