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성본변경심판청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관념 중 하나는 ‘성(姓)씨 = 아버지’라는 고정관념입니다. ‘집안’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예전만큼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계 중심 혈연 사고는 가족 구성과 자녀 문제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녀의 성과 본입니다.
우리 민법 제781조는 혼인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원칙적으로)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혼인신고(출생신고가 아님에 주의!!)를 할 때 부부가 합의하면 자녀가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혼인신고서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항목이 있죠. 여기에 체크하지 않으면 자녀는 자동으로 아버지 성을 따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모든 가정이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진 않습니다. 이혼, 재혼, 별거 등 사유로 가족 구조가 달라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의 성과 본 변경’이라는 문제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특히 재혼가정의 경우 자녀들이 성이 다르면 실제 가족관계나 정서적 유대에 혼란을 줄 수 있기에, 성본 변경은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곤 합니다.
대구에 거주하는 송지영 씨는 이혼 후 5년 만에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현재 남편 김성훈 씨 역시 이혼 경험이 있으며, 첫 결혼에서 얻은 중학생 아들이 있습니다. 지영 씨에게도 초등학생 딸이 한 명 있습니다. 이들 네 사람은 한 집에서 따뜻한 가족으로 잘 살아가고 있지만, 최근 지영 씨는 딸과 관련해 고민에 빠졌습니다.
딸이 곧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새아버지와 이복오빠와의 관계를 설명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겁니다. 지금까지는 딸과 오빠 사이가 매우 돈독했지만, 학교나 외부에서 반복적으로 "너넨 왜 성이 달라?"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아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지영 씨는 딸의 성을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자의 성과 본 변경 허가 신청’을 검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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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자녀의 성과 본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정법원에 성본변경허가청구를 해야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단 하나, 바로 자의 복리, 즉 자녀의 행복과 이익입니다.
성본 변경이 아이의 정체성, 사회생활, 심리적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법원은 허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재혼가정처럼 형제 사이 유대감을 위해 성을 통일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변경 신청이 아이의 복리에 부합한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성과 본을 바꾸는 절차가 생각보다 간단치는 않습니다. 법원은 심판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아이 친아빠의 의견을 청취합니다. 친부가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친조부모에게까지 의견청취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는 부모 양측의 입장을 듣고, 자녀의 현재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친부가 반대하면 자녀 성본 변경이 불가능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부가 반대하더라도 법원이 자녀의 복리에 더 이롭다고 판단하면 변경은 허가될 수 있습니다. 다만, 친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가사조사나 상담 절차가 추가로 진행될 수 있고, 그만큼 성본 변경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진 부부의 경우, 의견청취 단계 자체가 당사자에게 큰 부담이자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이 때문에 성본 변경을 고민 중이라면, 관련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습니다. 절차는 물론, 법원이 어떤 점을 중요하게 판단하는지도 전략적으로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본 변경이 반드시 재혼가정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이를 단독으로 양육하고 있고, 아버지와는 오랜 기간 연락조차 없는 경우에도 가능합니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아버지 성을 쓰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성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아이의 성을 엄마의 성으로 바꾸면, 정서적 안정감과 가족 유대가 훨씬 강해질 수 있습니다.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의 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실제 가족과 같은 성을 갖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엄마와 성이 같아지는 것’이 무조건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는 건 아닙니다. 가족 내 소통과 관계가 이미 잘 형성되어 있다면 성은 단지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와 엄마 성이 같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색다른 시선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요. 아이가 주변 시선에 민감하거나,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성의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잘 고민해야 합니다.
성본 변경은 단순히 ‘이름이 바꾸는 것’ 차원이 아닙니다. 이는 한 아이의 사회적, 정서적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며, 가족 구성원 간 유대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도 단지 서류상의 요건만 따지지 않고, 자녀의 현재 환경, 정서적 상태, 미래에 미칠 영향 등을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절차상 까다롭고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자녀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면 주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문가와 함께 준비해나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자녀의 행복과 이익이 최우선이라면, 성본 변경이라는 선택은 그 자체로 깊은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는 점 잊지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