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 속에서 ‘한국 이름’을 찾는 과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 비율이 인구의 5%를 넘으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이 기준을 넘어섰습니다. 2024년 기준, 외국인 비율이 5%를 초과하면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그만큼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제 귀화자는 일시 체류자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경제·교육 등 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적을 취득했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 귀화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이름과 성본(姓本)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지나치게 낯선 이름은 행정상 불편뿐 아니라, 사회적 적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가족관계등록법은 귀화자가 국적을 취득할 경우, 원칙적으로 외국 성명을 원지음(原地音)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이름 ‘Maria Teresa Santos’는 ‘마리아 테레사 산토스’로, 중국 이름 ‘張東烈’은 ‘창통리에’로 기록됩니다.
이처럼 외국식 성명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인식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은 귀화자가 원할 경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새로운 성과 본을 창설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 절차를 흔히 성본창설 신청이라고 부릅니다.
나탈리야(35세, 가명) 씨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출신으로, 10년 전 한국에서 근로자로 일하던 중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습니다. 이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서울에서 가정을 꾸렸고, 두 아이를 낳으며 완전히 한국 사회에 정착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자연스럽게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로 결심했고, 귀화시험과 면접을 모두 통과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불편을 겪게 되었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이름이 ‘나탈리야 이바노브나 쿠즈미나’로 표기된 것입니다. 이는 본래의 러시아식 이름을 그대로 음역한 결과였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는 자녀들과 달리, 그녀만 서류상 이름이 지나치게 길고 외국식이어서 각종 문서 처리나 주민등록증, 은행 거래 시마다 혼란이 생겼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김’씨 성을 사용하는데, 본인만 ‘쿠즈미나’로 남아 있는 것도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이에 나탈리야 씨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성본창설 및 개명허가신청’을 병합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식 성과 이름을 갖고, 가족들과 같은 성(김)씨로 살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외국인 국적취득자가 성과 본을 새로 정하려면 반드시 가정법원의 허가결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이하 및 관련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국적취득자 본인
법정대리인(미성년자의 경우)
의사능력 있는 미성년자
과거 구 호적법(1998년 6월 14일 이전 시행)에서는 ‘귀화’ 또는 ‘혼인’에 의한 국적취득자만 신청할 수 있었지만, 현행법상으로는 모든 국적취득자에게 신청 자격이 열려 있습니다.
신청인의 성명, 주소
대리인 정보(있는 경우)
신청 취지 및 사유
사건본인의 등록기준지, 출생연월일 등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또는 초본
귀화허가서 등 국적취득 관련 증빙
위임장(대리 신청 시)
법원은 서류 심사 후, 필요시 범죄경력조회를 실시합니다. 다만 귀화 과정에서 이미 신원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문제 없이 허가가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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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서 성본창설 허가결정을 받으면, 결정등본을 교부받은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는 다음 중 하나의 기관에서 가능합니다.
등록기준지
주소지 또는 현재지 관할 가족관계등록관
해외 거주자의 경우, 대한민국 재외공관(대사관·영사관)을 통해 신고할 수 있습니다. 단, 다른 지역을 관할하는 공관에서는 접수할 수 없으며, 우편 신고나 귀국 후 직접 신고도 가능합니다. 기한을 넘기면 허가 효력이 상실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유의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성본창설과 개명신청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외국식 성을 한국식으로 바꾸면 이름도 자연스럽게 변경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탈리야 씨의 경우 ‘쿠즈미나’라는 외국식 성을 ‘김’으로 창설하고, 이름도 ‘나예린’으로 개명하여 결국 ‘김나예린’으로 새로운 한국식 이름을 갖게 되는 식입니다.
이처럼 성본창설과 개명은 ‘법적 신분’과 ‘사회적 정체성’을 함께 정립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국적취득자의 성본창설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절차가 아닙니다. 이는 새로운 국적을 얻은 사람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적·사회적 정체성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다만, 신고기한(허가 후 1개월)을 넘기거나, 재외공관을 잘못 선택하는 경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외국 문서(예: 귀화허가서, 출생증명서 등)를 사용할 경우 아포스티유 확인 또는 영사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빠뜨리면 접수가 반려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외국인 귀화자의 성본창설 제도는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닙니다. 이는 “이제 나는 대한민국의 일원이다”라는 상징적인 선언이자, 새로운 인생의 첫 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적을 얻는 것은 ‘법적 절차의 완료’이지만,
성본창설은 ‘한국 사회 속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따라서 이 절차를 단순히 서류 변경이 아니라, 진정한 귀화의 완성 단계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