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한 배우자에게 인정되는 기여분은?
누군가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셨을 때, 법률적으로 이분을 '피상속인'이라고 합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이분의 상속인들은 상속재산을 공동으로 승계합니다. 그리고 공동상속인들은 이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협의를 할 수 있고, 만약 이 협의가 되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재산을 분배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피상속인 사후에 공동상속인들 사이에서 상속재산을 나누는 일을 상속재산분할이라고 합니다.
상속재산분할에서는 여러 공동상속인들이 한 협의가 가장 우선하는데, 만약 협의가 되지 않아 '법대로' 재산을 나눌 때에는 두 가지를 결정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상속재산을 분배하는 비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속재산분배 비율에 따라 상속재산을 어떤 형식으로 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죠.
여기서 상속재산 분배 비율을 정한다 함은, 상속재산이 법정상속분 또는 소위 말하는 '1/n'으로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과 같습니다. 공동상속인들의 분배 비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공동상속인의 특별수익과 기여분입니다. 일단 다음 민법의 조문을 보시죠.
제1008조(특별수익자의 상속분)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자가 있는 경우에 그 수증재산이 자기의 상속분에 달하지 못한 때에는 그 부족한 부분의 한도에서 상속분이 있다.
위 '특별수익자의 상속분'은 쉽게 말해 미리 재산을 많이 받은 사람이 또 남은 재산을 똑같이 나누자고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읽으면 됩니다.
다음은 오늘의 주제인 기여분입니다.
제1008조의2(기여분) ①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ㆍ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에는 상속개시 당시의 피상속인의 재산가액에서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한 그 자의 기여분을 공제한 것을 상속재산으로 보고 제1009조 및 제1010조에 의하여 산정한 상속분에 기여분을 가산한 액으로써 그 자의 상속분으로 한다.
민법은 피상속인이 재산을 형성하는 데에 특별한 기여를 하였거나 또는 피상속인에게 특별한 부양을 한 사람에게 상속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분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여분이라고 합니다.
그럼 오랜 기간 피상속인의 동거를 하면서, 간호를 한 배우자는 기여분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기여분을 인정받을 수도 있고, 인정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답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여분 판단에 특수한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20년 동거하면 기여분 30%, 30년 동거하면 기여분 40% 이런 식으로 기여분의 기준을 정할 수가 없겠죠. 피상속인과 20년 동안 혼인생활을 유지한 어떤 배우자가 법원으로부터 기여분을 20% 인정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건에서도 비슷하게 결론이 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여분은 어렵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11월에 장기간 동안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를 한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있었습니다. 결론만 놓고 보면 '어떻게 이렇게 인색할 수 있나', 또는 '배우자의 기여분을 너무 엄격하게 판단한 것이 아닌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여분은 그 사안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먼저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소개합니다.
배우자가 장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피상속인을 간호한 경우, 민법 제1008조의2의 해석상 가정법원은 배우자의 동거·간호가 부부 사이의 제1차 부양의무 이행을 넘어서 ‘특별한 부양’에 이르는지 여부와 더불어 동거·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동거·간호에 따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 일체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하여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가려서 기여분 인정 여부와 그 정도를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9. 11. 21.자 2014스44,45 전원합의체 결정)
위 대법원 판례에서 핵심은 배우자의 부양인 '특별한 부양'이었는지, 그리고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하여 상속인들 사이에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실제 위 대법원 판례의 사실관계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 주인공의 돌아가신 아버지(피상속인)는 어머니와 3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시다 이혼을 하셨고, 재혼을 한 후 20년 동안 주인공의 계모와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 이복동생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속재산을 나누어야 하는데 계모, 이복동생과 협의가 되지 않았던 이 사건의 주인공은 가정법원에 상속재산을 나누어 달라는 청구(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를 하였고, 계모는 장기간 동안 자신이 피상속인을 동거하면서 간병을 하였으니 기여분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갑이 병환에 있을 때 정이 갑을 간호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기여분을 인정할 정도로 통상의 부양을 넘어서는 수준의 간호를 할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었고, 통상 부부로서 부양의무를 이행한 정도에 불과하여 정이 처로서 통상 기대되는 정도를 넘어 법정상속분을 수정함으로써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여야 할 정도로 갑을 특별히 부양하였다거나 갑의 재산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그럼 장기간 피상속인과 동거를 하면서 간호를 한 배우자의 기여분을 굳이 부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대법원은, 배우자가 피상속인과 동거를 하면서 간호를 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반드시 기여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면, 일체의 사정을 고려하여 가정법원이 후견적 재량에 따른 판단으로 기여분을 정하도록 한 민법과 가사소송법의 입법취지에 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는 제1차적 부양의무가 있는데, 이때의 제1차적 부양의무란 쉽게 말해 '내가 굶어도 상대방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양정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장기간 동거, 간호하였다고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무조건 인정한다면 부부 사이의 상호부양의무를 정하고 있는 민법 규정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공동상속인 중 특정한 신분상의 지위를 가진 상속인의 특정한 행위에 대하여 기여분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면 결국 해석에 의하여 법정상속분을 변경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피상속인이 배우자에게 이미 상당한 재산을 증여 또는 유증하여 그 배우자가 초과특별수익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그 배우자에게 장기간의 동거, 간호를 이유로 기여분까지 인정한다면, 나머지 공동상속인들과의 공평을 심하게 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 위 사안에서, 계모는 별다른 소득활동을 하지 않았고 피상속인의 간병비나 병원비, 생활비는 거의 피상속인 본인의 재산으로 충당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피상속인은 이미 계모와 후처 소생(주인공의 이복동생)에게 충분한 재산을 주었는데, 이 재산액이 꽤 컸죠. 그래서 기여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계모는 남은 재산에서 분배받을 재산이 없었습니다(상속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초과특별수익자'라고 하는데, 법정상속분보다 더 많은 재산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만일 위 사안에서 계모가 주인공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이 전혀 없었다거나, 주인공의 아버지와 가게를 같이 운영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었다면 사안의 결론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상속재산분할 과정에서 상속인들 중 일부가 기여분 주장을 했을 경우, 이 기여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정말 많은 요소가 고려됩니다. 핵심은 과연 그 기여가 '특별한 기여'였는지, 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인 공평과 형평의 관점에서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여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