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데이
샤워 후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립글로스를 바르는데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엄마, 어차피 마스크 쓸 텐데 립스틱은 뭐 하러 발라?” “샀으니까 바르는 거야. 그리고 내 만족이다 뭐~” “아이고, 엄마~ 자기만족에 빠지셨네. 빠져나와 어서.” 컸다고 제법 간섭이 심하다. 오늘 입을 목적으로 산 스커트는 아니지만 입고 가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은, 여러 옷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 화려한 색과 무늬의 아프리카 스타일의 랩 스커트를 두르고 수년 전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엔틱 스타일의 귀걸이도 했다. 딸아이에게는 바빠서 학교에 못 간다고 했지만 내가 나타나면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릴 것이다.
한껏 꾸미고 학교에 도착하니 선생님들도 아프리카 스타일로 멋지게 차려입고 맞아주었다. 선생님들과 서로의 의상을 치켜세워주며 인사를 하고 주변 학부모들과는 눈인사와 가벼운 대화, 예를 들면 날씨가 무척 좋다거나 역시나 의상이 멋지다는 식의 의미 없는 대화를 마친다.
객석에 앉아 아이들을 찾아보는데 많은 아이들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쉽게 눈에 띄었다. 딸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상대로 놀라며 무척 좋아한다. 아들은 역시나 시크하다. 본척만척하는 것이 3.8 춘기쯤 된 것이 분명하다.
순서에 맞춰 아이들이 무대에 오른다. 딸아이는 무대 중앙에 배치되어 노래와 율동을 무리 없이 해낸다. 다른 아이들이 딸아이의 동작을 보며 따라 하기 바쁘다. 괜히 어깨가 봉긋해지는 기분이다. 올해로 ‘아프리카 데이’ 행사에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곧 초등학교를 마치는 아들은 마이크를 잡고 주변 아프리카를 소개하는 멘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젠틀하게 해낸다. 저렇게 잘하면서 맨날 못한다고, 모른다고 한다. 난 아이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어주었다.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러 갔다. 같은 주제로 각각의 개성으로 만들어낸 작품들 중 큰아이의 작품이 단연 돋보였다. 창의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비슷한 듯 보였지만 남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이제 교실로 가 아이들의 프로젝트를 보고 집에 가기만 하면 된다. 교실로 들어서며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해 얘기하며 위트 있는 농담도 했다. 아이의 프로젝트는 제법 근사했고 선생님도 정말 잘 준비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학교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을 잘 양육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오늘만큼 보람을 느낀 날도 없었던 것 같다. 화려한 스커트만큼이나 마음도 화사해지는 학교 방문이었다.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렇지만 학교에 도착해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아무 역할도 맡지 못한 듯 보였는데, 마지못해 무대 뒤쪽 의자에 앉혀놓은 것 같았고 소리가 없는 악기도 악기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악기를 맡았다. 뭐 하러 무대에 올라갔나 싶을 정도로 아이의 역할은 없었다. 딸아이는 두 번째 줄에 서서 메인 댄서들의 그늘에 가려졌다. 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삶의 씁쓸함을 나는 안다. 이래서 학교에 오기 싫었는데, 역시나 또 실망을 하고 말았다. 언제나 빛나는 누군가의 그림자 혹은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조연처럼 살아온 나는 나의 아이들을 통해 잊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만큼은 반짝반짝 빛나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들을 통해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려 했었나 보다. 마음과 달리 선생님들 앞에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얼어버린 나는 학교를 돌아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입맛이 썼다.
(2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