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스탠포드에서 돌아온 후,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더 커져 있었다. “미국 가서 좋은 거 많이 보고 듣고 왔으니까, 남은 대학 생활도 의욕적으로 잘할 거라고 믿는다.” 지난봄 스탠포드 행을 비용을 모으던 나를 보고 부모님께서는 지금까지 장학금과 과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한 것이 기특하다며 모든 비용을 지원해 주셨었다. 왕복 비행기 값과 체류비, 그리고 ALC 프로그램 참가 비용을 합치면 서울대 일 년 등록금에 맞먹었으니, 스탠포드에서 돌아온 후 열심히 하라고 한 말씀 하시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해보려고 했다. 9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전공 수업들을 가득 채워 학기 시간표를 짰다. 언제나 그러했듯 수업에도 빠짐없이 들어갔고, 숙제도 내 힘으로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교수님이 칠판에 적는 수식들은 머릿속에서 튕겨나가는 것 같았고, 책을 읽으려고 하면 다른 생각이 나서 한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고, 도서관 안과 밖을 계속 서성이면서 잡생각에 빠졌다.
‘아… 뭐지. 이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건가?’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름 공부에서 재미를 느꼈었던 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2, 3주 동안 공부에 집중을 못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유는 명확했다. 스탠포드에서 돌아온 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평생 후회할지 몰라.’
아마 스탠포드에서 내가 느낀 것이 ‘이 친구들은 어나더 레벨인데? 얘네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 같이 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부모님의 바람대로 자극을 받아 더더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한 달 동안 지내면서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각을 했다. ‘자기들이 불행하다고 하는 서울대 학생들과는 달리 스탠포드 학생들은 왜 이렇게 행복하다고 하지? 자기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서 그런 건가? 우린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따라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하기만 한데…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지? 심지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나?’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내 머리는 어떻게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건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석 연휴 동안에도 매일 도서관에 가서 뒤처지고 있던 수업 진도를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공부가 안되길래 하루는 친한 친구를 불러 강제력을 더 높여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지금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렇게 추석 연휴 텅 빈 도서관에서 3일 동안 자신과의 씨름 후, 결국 나는 항복했다.
'도저히 지금 공부는 못하겠고… 우선 휴학을 하자.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찾아봐야겠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 나자 앞이 더 막막했다. 어머니, 아버지께는 뭐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부모님께서는 웬만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시는 스타일이었지만, 박사출신인 아버지는 논리적인 이유 없이 어떤 바운더리를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신 편이었다. 그리고 학기 중에 갑자기 휴학을 하겠다는 것은 분명 그 바운더리를 멀찌감치 벗어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도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그럴듯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저 지금은 도저히 공부를 못하겠다는 것과 당장 어떤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똑같이 살게 되리라는 절박한 마음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저 휴학하겠습니다.”
결국 2007년 9월 30일 저녁, 나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
“휴학? 학교 잘 다니다가 갑자기 왜?”
“공부를 도저히 못하겠어요.”
“뭐라고?”
“공부가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휴학하고는 뭐 하려고 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봐야겠어요.”
“왜? 기계과 공부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잘 모르겠어요.”
“허… 참.”
좋은 영향을 받으라고 미국에 보내줬더니 나쁜 물이 들어서 온 격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건 어떻게 찾아볼 건데? 한 학기 휴학하고 뭘 좀 해본다고 알게 되겠냐?”
“...”
제대로 된 계획이 없었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1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침묵 끝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뭔가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때 뭔가 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평생 후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끔 나는 이 순간을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이건 결국 땡깡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한편으론 어떻게든 제대로 살고자 하는 청춘의 발버둥이다. 그럴듯한 논리는 없지만, 지금 이게 아니면 진심으로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하는데 어느 부모가 쉽사리 막을 수 있을까?
한참 고민 하시더니, 아버지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뭐 한 번 해봐라. 이만 나가 봐라.”
“네?”
“네 뜻대로 휴학하라고.”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안방을 나와 안도감에 깊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