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펼쳐놓고 한동안 그 정신세계를 음미했습니다. 이미륵의 문체는 단순하고 겸손해서, 마치 섬세한 향의 차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높이 평가해 왔기 때문에,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유년 시절, 이미륵이 들어서기를 망설였던 ‘새 시대’와 ‘새 학문’은 당시 조선 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서양 문화와의 교류를 포괄하는 개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륵이 이러한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문화와 학문, 그리고 기술의 공간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했던 그 시절은 오히려 아름답고 솔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가족과 동료, 학문과 호기심, 그리고 자아 사이에서 여러 갈래의 영향을 받으며 혼란을 겪었는데요. 그 사이에서 홀로 서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이 깊이 공감되었지요.
이미륵은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새 학교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나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망쳐지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인가는 아무도 확실히 몰랐던” 학문을 대하는 그의 첫 태도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유교적인 가치관을 따라 부모의 눈치를 보던 그는 결국 새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이는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음을 보여줍니다.
"“너의 영혼은 언제나 맑아야 한다.” 그는 진지하게 나에게 충고했다."
이미륵은 새 학문이 ‘망칠지도 모를’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앞에서 시를 읊었습니다. 이 장면이 유독 중요하게 느껴졌는데요. 마치 동서양 학문 사이에 난 깊은 골짜기를 메우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양 학문의 차가운 논리에 따뜻한 동양의 정서를 더하려는 시도 같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후반에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제 막 소년이 되었을 무렵, 이미륵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유럽으로 떠나려 했습니다. 그는 농촌을 벗어나 신막 시장으로 가 만주행 기차를 타려 했지만, 막상 정거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플랫폼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역무원이 표를 반환해 주며 왜 기차를 타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미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용하지 않고 소란스러워서……”
방 안에 있던 일본인들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차는 이 사람들에겐 너무 시끄럽고 조급하여 점잖지가 않지… 그렇지만 너는 당나귀를 타고 유럽에 갈 수는 없지 않니?”
이미륵이 기차를 타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히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의 내면 깊숙이 새겨진 한국적인 정서를 쉽사리 떼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너는 군자가 될 수는 없다”라며 새 학문에 실망한 누이에게 “지금은 딴 시대가 왔다”고 단호하게 맞선 이미륵은, 문화적으로 조각난 20세기의 첫 한인 교포 중 하나이자, 진정한 의미의 하이브리드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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