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17>: 하나와 오직 하나뿐인

봉준호 감독의 신작 리뷰


봉준호 감독님의 신작, 미키17 보셨나요?


콘텐츠 노트 저자는 최근에 두 번째 관람을 하고 왔습니다.

이번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오가고 있는데요.

흥행과 작품성을 둘러싼 논의는 물론, 봉 감독님의 영화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의 이전 작품들을 총망라한 듯한 영화라는 의견이 많은데, 저도 어느 정도 공감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요소들이 더 많게 느껴졌습니다.


지난주까지 톨스토이 작품을 읽으며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빠져 있던 콘텐츠 노트. 이번 주는 따끈한 신작을 함께 살펴보며 출발해 보겠습니다.


2054년, 니플하임 행성


미키17의 배경은 현재로부터 약 30년 뒤인 근미래입니다. 우주 이민과 인간 복제 기술이 실현된 사회인데요. 기생충의 문광과 근세처럼 빚더미에 허덕이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니플하임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 탐사선에 탑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합류한 방식은 다소 특별했어요. 그는 Expendable, 즉 복제 가능한 인간으로서 선택된 거예요. 쉽게 말해, 언제든 재생산할 수 있는 소모품 같은 존재였던 거죠.




“One and Only” - 하나와 오직 하나뿐인


기생충이 사회 계층 구조를 '상하 개념'과 '냄새'로 풀어냈다면, 미키17은 '분열'과 '단일성'을 통해 계층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탐사선을 이끄는 지도자 마샬(마크 러팔로)과 최하층 계급인 미키의 대비가 이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마샬과 그가 따르는 종교는 '하나와 오직 하나뿐인' 신을 찬양합니다. 심지어 마샬을 소개하는 문구도 '하나와 오직 하나뿐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 마샬의 삶은 철저히 특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는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제 소스가 뿌려진 고급 요리를 즐기죠. 반면, 일반 이민자들은 모두가 똑같은 회색 죽과 빵 조각을 배급받아요. 누구나 쉽게 복제될 수 있는 하층민의 삶과, '하나뿐인' 권력을 독점하는 지도층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무엇보다 미키는 Expendable이기에, 누구든 그를 아무렇게나 다뤄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단순한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그의 존재는 영화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이 부분은 아래에서 조금 더 다루겠습니다.




단일한 생명과 죽음의 존엄성


니플하임 행성을 차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그에 대해 미키는 이렇게 생각하곤 하죠.

"아무리 반복해도, 죽는 건 여전히 끔찍하고 두려워."


내일이면 다시 복사기에서 출력될지라도, 죽음은 여전히 미키에게 공포로 다가옵니다. 단일한 인간이든, 복제된 인간이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생명에 대한 갈망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영화는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는 메시지를 미키17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복제 인간과 다수 인간(Multiple)의 개념이 정착된 미래라 해도 말이죠.


특히, 생명을 마음대로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의 섬뜩함은 다음 대사에서 더욱 극적으로 표현됩니다.


"나를 만져보아라. 귀신인지, 아니면 참 인간인지 보아라."


이는 영화 곡성에서도 사용된 성경 구절, 누가복음 24장 39절을 인용한 대사인데요.

("…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대사는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실험인간 미키: 고통과 체벌


미키는 자신이 Expendable로 지원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어린 시절 실험실 개구리를 괴롭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이 그에 대한 벌이라고까지 생각해요.


복제 가능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나 함부로 취급당하는 미키의 현실은 끔찍했습니다. 방사선을 맞으며 피부가 타들어 가는데도 실험팀은 무덤덤하게 관찰했고, 실험용 성장 호르몬이 주입된 줄도 모르고 음식을 먹었다가 결국 구토하며 몸부림쳤어요. 복사되자마자 주사를 맞고 단 15분 만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복제된 인간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가해지는 폭력들.


잘려나간 미키의 손이 우주를 떠돌다 부유층의 창가 앞을 맴도는 장면은 특히나 저자의 마음을 울렸는데요. 이를 보고 열광하는 실험팀의 모습은 정말 섬뜩했습니다.


실제 복사기처럼 몸을 인쇄하는 기계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미키의 생명을 그 누구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섹스도, 식사도 통제되는 그의 삶은 체벌과 다름없었고, 그는 스스로 이러한 생활을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어린 시절 '빨간 버튼'을 눌러 엄마가 차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울부짖으며 견뎌야 하는 실험도 애인 나샤에게 곧장 가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이라고 여겼어요.


미키의 '정상화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감독님이 꼬집고자 했던 사회적 이슈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사회 속에서 ‘나라도 괜찮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과 생명을 계속 내어주는 미키의 씁쓸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봉 감독님 특유의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영화적 감각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비인간적인 실험을 당한 뒤 방을 나서는 미키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식사 초대, 감사해요."



보야리즘(Voyeurism)과 카메라: 시각의 힘


미키17 속 사회에서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자, 때로는 저항의 무기가 되기도 해요.

채권자 다리우스 블랭크는 빚을 갚지 않은 사람들을 끔찍하게 살해한 뒤, 그 장면을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합니다.

지도자 마샬은 언론과 라이브 방송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죠. 미키와 니플하임 시민들은 대개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마샬과 독대하거나 마샬의 라이브 쇼를 관람하며 그와 관계를 맺거든요.


반면, 사람들은 생방송 카메라와 조명을 미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에게 마구 들이댑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말이죠. 미키의 개인성이 완전히 지워지는 순간들이었어요.


그러나 카메라는 시민들에게도 힘을 부여하는 도구가 됩니다. 니플하임 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들은 자신들을 촬영하는 장비를 파괴하며 시각적인 감시를 거부하는데요. 또한 반란을 계획하는 이들은 몰래 카메라를 이용해 지도층의 부정을 폭로하기도 했어요. 봉 감독님은 미키17을 통해 '촬영과 시각'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근접한 미래의 우주에서도 봉준호 감독님은 광활한 공간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선택했습니다.


설국열차가 아닌, 설국 탐사선 속 치열한 니플하임 이주민들의 생활은 정재일 음악감독의 사운드트랙으로도 잘 표현되었는데요. 웅장한 SF식 사운드스케이프가 아니라, 부드러운 현악기와 피아노로 풀어낸 음악이 미키17이 구현하는 감성을 더욱 깊이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미키17과 18의 다양한 모습들—가슴 아프면서도 공포스럽고, 때로는 재밌다가도 섬뜩한 표정들을 완벽하게 표현해 낸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지금까지 본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연기라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기생충과 플란더스의 개, 그리고 봉준호 감독님의 초기 단편영화 Looking For Paradise가 떠오르는 지하실도 이번 작품에서 빠지지 않았는데요. '봉준호의 지하실' 특유의 고요한 어둠과 참혹함이 묻어 있는 동시에, 다소 귀여웠던(?) 팀워크가 돋보이는 미키17의 작은 사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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