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왕도는 없다.

여러분의 첫 영화는 무엇인가

by 몽상가병아리

이 글을 보는 모두에게, 당신들의 기억에 남는 가장 태초 시절의 영화가 무엇인지 묻고자 한다. 나에게 이 질문의 답을 들으신다면 아마 다들 놀랄 것이다.

<아다다 1987, 임권택>

바로 계용묵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1987년작 <아다다> 이다. 참고로 내 블로그 첫 포스팅을 본 이들은 알겠지만 난 20대 초반이다. 근데 왜 이런 영화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이 생기신다면야 기꺼이 해드리리다.

나와 부모님은 나이차이가 상당하다. 어머니가 나를 38세에 나으셨으니 이하생략하겠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부모님은 옛날 것에 대한 고취가 상당하시다. 40년대 흑백영화부터 군사시절 음질 구린 뉴스화면까지... 여튼 그런것들에 향수를 느끼시는 분들이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나 또한 소위 옛날의 고취에 익숙해질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아마 케이블채널이 맞을 것이다. 당연히 그 시대 에로사극 삘이 나고(실제로도 시청가가 19세였다) 화질,음질도 잔챙이가 많이 나는 시시콜콜한 옛날 영화에 흥미가 안가 졸고 있을 때, 문득 한 장면이 나의 신경계를 치고 들어왔다. 작중 남편이 들여온 첩이 이제 막 본가에서 혼나고 돌아온 벙어리 본처한테 "이봐 이봐, 너와 내가 처지가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라는 대사를 쳤을때였다..

충격이었다. 본인도 같은 인간이고 여잔데, 심지어 본처한테 그런말을 내뱉는다는게 어린 나한테 무척이나 충격적이고 이해가 안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나는 기대있던 어머니의 무릎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 시대 여성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 뿐인데 남편, 첩은 물론 본가 친아버지에게마저 등을 돌려진 주인공의 처지가 색칠공부나 줄기차게 하던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우울이 뭔지 알려주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대사와 첩이 날리는 조소가 생생하다. 그 정도로 이 영화가 좋은 영화건 아니었던 간에 나의 가장 태초의 정신적 충격을 준 영화로 뽑으라면 그 이유이다.

이후로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그 시절 우울에 찌들어있기만 하고 신파에 젖어있는 굳이 안넣어도 될 야한 장면을 꾸역꾸역 넣어논, 소위 탄압받던 시절의 영화를 많이 봤다. 전쟁의 충격으로 ptsd에 걸린 아버지나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곁에 두고 친구들에게 신나게 "우리 엄마 죽었다!"라고 자랑하던 아이들의 모습이라던가 포탄을 정면으로 받아 몸이 산산조각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

이런, 내가 또 우울한 글만 주구장창 쓸 뻔 했나보다. 위의 이유들로 인해 우리 부모님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은 접어주길 바란다. 어찌보면 나의 심히 탐미주의적이고 섬세한 신경을 깨워준 이들이 바로 그분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이후 나의 두번째 주요 단계를 꼽으라면 애니메이션이었다. 지금에도 그렇고 어린시절의 나는 창의력이 넘쳐 시덥잖은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다녔다. 아마 초등학생 때 부터 였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다시한번 정신적 충격을 준 영화가 찾아오는데...

<겨울왕국 2013, 디즈니사>

그 명성도 자자한 디즈니의 겨울왕국이였다. 지금이야 명성이 무색하게 돌부리에 걸린 황금마차 처지지만, 그 시절 디즈니의 위력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조잡한 3D기술이 판칠 시절, 화려하고 웅장한 왕국과 마법, 빗발치는 눈덩이 하나마저 포기하지 않고 구현해내고 잘생긴 왕자님이 언제나 소녀들의 로망이 될 순 없다라는 충격적인 클리셰 파괴와 아름다운 두 자매의 사랑과도 같은 자매애는 전세계인은 물론 디즈니에 까막눈이던 아에게조차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후로 난 오타쿠의 길을 잠시나마...

아무튼 그 당시 기술력에 매료된 나는 주구장창 3D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찾아다녔다. 주토피아 라던가 이들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발레리나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이름이 엇비슷한 지브리를 알게되고 일본 아니메에도 손을 뻗게 된 것 같다.

또한 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2차창작을 한다던지 지금와서는 쪽팔려서 어디 내놓지도 못할 만화들을 더욱 생산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지금도 우리 집 어딘가에 소중히 보관되었다. 난 반드시 그 그림들을 내가 재가 되가고 있을 화장터에 같이 넣어달라고 반드시 간청할 것이다.

그렇게 그림의 매력에 한창 매료될 고등학생 무렵, 난 내가 배우고 있는 전공(난 특성화고 출신이고 내가 특성화에 간다했을 때 난 우리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에 실증이 나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때 친구 하나가 이런 권유를 했다. 이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애니학원에 들어가는 건 어떠냐고.. 물론 그건 틀린 권유가 되었지만 애니학원을 다니며(그렇게 난 어머니의 가슴에 두번째 대못을 박았다) 난 현재이자 가장 중요한 세번째 지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애니학원이 전부 애니나 만화만 많이 보라고 할 것 같은가? 물론 반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히 말한 것이 "영화의 미쟝센을 탐구하고 너의 것으로 재탄생 시켜라"(따라하라는 게 아니다!)였다.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하고싶은 말이 뭔지 가장 잘 와닿게 하는 것이 업계 성공의 핵심인데 너희는 너무 일반인들이 보기에 이해가 안될 작품들만 판다는 것이다( 공감은 된다..).

그렇게 난 학원이 추천해준 영화리스트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국태생 영화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이었다.

이분에 대해 설명 드리자면 난 아마 오늘 밤을 설쳐야 할 것이다. 아마 논문도 작성할 수 있을 것이고 모두의 앞에서 이 감독이 얼마나 위대하고 변태적이었는지에 대해 장광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후덕하게 생긴 히치콕 할배에 대해선 시간이 넉넉할 때 원없이 풀어놓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영화를 보며 왜 그가 서스펜스 영화계의 교과서이자 거장인지 알게 되었다. 여러분들, 이 글을 보면 히치콕의 영화 한편이라도 골라보길 간절히 염원한다. 이창도 좋고, 현기증도 좋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나 오명, 새도 좋다.

가장 알려진 영화는 싸이코(1960)이겠지만 나처럼 힙스타병에 걸려 다른 것을 보고 싶다면 오명을 추천하고, 오명이 너무 잔잔하다 느껴질 때면 순수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북북서를 추천하고, 손이 꽉 쥐어지는 체험을 하고 싶다면 이창을 추천하고, 오늘날의 크리쳐물을 있게 한 영화를 추천하면 새를 추천하고, 그 끝에 슬픔과 여운을 즐기고 싶다면 현기증을 추천한다. 참고로 작자는 현기증을 가장 좋아한다.

아무튼 나의 일생일대 영화의 주요 분기점을 세 개로 만들어 꼽아보았다. 제목대로 여러분, 여러분이 어떻게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녀와 소년이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봤든, 살인마와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봤든, 프랑스 요리가 나오는 영화를 봤든, 베니스강이 보이는 영화를 봤든, 종교의 현자가 나오는 영화를 봤든, 성녀가 악녀가 되는 영화를 봤든 B급 포르노그라피를 봤든 그것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당신들이 영화에 헌신하고 푹 빠진다는 것으로 영화계는 다시 한번 숨을 쉬는 것이며 당신들은 시네필의 길로 입문할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아, 사족으로 내가 제목을 왜 이렇게 설정했냐면 어제 내멋대로 휴학을 질러 다시한번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는 내가 무슨선택을 해도 지원해주시지만, 어제는 정말 대판 싸웠다.. 어머니가 나에게 하신 말중에 넌 왜 자꾸 학교를 쉬려는지 왜 남들처럼 다니질 못하니에 대한 말이 기억이 자꾸 남는다.

그러나 여러분, 인생에 왕도란 없다. 난 무언가에 열중하려면 동기가 확실히 잡혀야 하는 인간인데 그저 지금 배우고 있는 전공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공부에 집중도 안될뿐더러 할 의지가 안 생기기에 나와 맞는 진로를 찾으려 휴학한 것이었다. 이렇게 난 어머니에게 또 빚을 지고 말았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1년간, 이제는 정말로 꾸준히 영화를 보며 재정비할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드리며 다음엔 여러분을 시네필로 끌어들이 더 좋은 글들을 가지고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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