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권 Aug 01. 2023

삶의 정거장에서

11. 등대의 언어, 등대의 침묵

등대의 언어, 등대의 침묵     


 바닷가 등대가 빨갛게, 예쁜 단장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설렘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불안함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곧 만나게 될 기대에 설레고, 혹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불안하니까요. 저 등대의 기다림은 어느 쪽일까요.     


나는 저 빨간 등대의 존재감이 무심(無心)함의 표식(標式)이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무심함은 마음이 없어 허망한 것이 아니라 조바심이 없어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등대 본연의 책무를 너무 사랑해서입니다.


등대는 말이 없습니다. 그저 바다를 바라볼 뿐입니다. IN KWON PARK


 등대는 아무도 없는 항구와 포구의 어두컴컴한 곳에서 묵묵히, 언제까지고 바다만 응시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알아달라고 보채는 일도 없습니다. 무심히 불빛을 깜빡이는 일에만 몰두할 뿐입니다.


등대의 불빛은 등대가 살아 숨 쉬는 호흡입니다. 등대의 불빛이 꺼져 있을 때, 등대의 호흡도 멈춥니다. 등대의 호흡이 정지될 때, 등대는 더 이상 등대가 아니겠지요. 등대가 자신의 호흡, 불빛을 켜고 꺼뜨리기를 쉼 없이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켜지고 꺼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안도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뿐입니다. 그러니 등대가 조바심을 낼 까닭도 있을 리 없습니다.


등대는 말없이 밤바다 유일의 소통 수단, 불빛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불빛은 등대의 언어이자 등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등대 스스로 이름을 밝힌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등대의 언어가 침묵이니까요.

내가 등대의 침묵을 예찬하는 이유입니다. 등대의 무심함을 닮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속세의 단물에 빛바래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등대는 말합니다. 침묵을 언어 삼아 묵언수행(默言修行) 하는 것이 어찌 나 혼자뿐이겠냐고. 늦가을 낙엽도, 바람도, 공기도, 대지(大地)도, 물도 모두 침묵으로써 말을 대신하는 존재라고.     


 어쩌면 등대의 무심함을 닮고 싶다는 것도 또 다른 조바심일 수 있겠습니다. 하여, 그저 등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 삼으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의 정거장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