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넣기 게임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구멍 넣기는 맨땅에 구멍을 여러 개 파 모든 구멍 속에 자기 구슬을 가장 빨리 집어넣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승패에 따라 주고받는 구슬의 수는 사전 합의로 정하기 때문에 게임 때마다 차이가 났다.
게임 이름처럼 내기를 하기 전 구멍부터 파야 한다. 맨땅에서만 가능한 게임으로 신발 앞꿈치나 뾰족한 꼬챙이로 흙을 긁어낸 뒤 신발 뒤꿈치를 도구 삼아 구멍을 팠다. 가운데에 하나, 위아래 좌우에 각각 하나씩 모두 5개의 구멍이 필요하다. 구멍과 구멍 사이의 거리는 1m 이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에 땅바닥이 얼어붙어 구멍이 잘 파지지 않으면 연탄집게를 가져와 모양을 낸 뒤 발뒤꿈치와 앞꿈치로 마무리 손질을 하기도 했다.
자기 구슬을 5개의 구멍에 가장 먼저 넣는 사람이 이기는 구멍 넣기 놀이는 힘보다 기술이 중요했다. ⓒOkkisafir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구멍 넣기 게임 방식과 방해 작전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다음 이긴 사람부터 게임을 시작하는데 가운데 구멍을 출발점으로 윗구멍에서 시계 방향 또는 시계 반대 방향의 구멍에 차례대로 구슬을 넣어야 한다. 구슬을 한 차례 튕겨 구멍 안에 넣으면 다음 구멍을 공략할 수 있다.
한 번에 넣지 못하면 다음 사람이 공격권을 행사한다. 이런 식으로 한 바퀴 돈 뒤 출발점인 가운데 구멍까지 구슬을 가장 먼저 골인시키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본인 공격 때 앞에 있는 상대 구슬을 자기 구슬로 맞히면 구멍에 골인한 것으로 간주해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 둘 또는 서너 명이 주로 맞붙었다.
구멍 넣기 게임은 거리 감각이 뛰어나야 해 구슬을 튕기는 중지를 놀리는 기술이 승부의 관건이었다. 쪼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구멍을 정조준해 구슬을 튀겨 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발사 직전에 실없는 소리로 교란 작전을 펼치는 비신사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방해가 심하면 서로 다투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구슬치기 때도 그랬다.
#구슬치기와 구멍 넣기 게임의 차이
구멍 넣기 게임을 할 때 구슬을 튕기는 요령은 구슬치기와는 달랐다. 중지 손톱 위와 엄지손가락 첫마디에 구슬을 끼운 뒤 중지에 힘을 주어 구슬을 공중으로 살짝 띄워 구멍을 향해 날려 보내야 한다. 구슬치기가 엄지손가락이나 중지에 힘을 실어 강한 반동으로 세게 튀기는 방식이라면 구멍 넣기는 중지로 구슬을 낮게 깔아 띄운다는 기분으로 미는 기술이 중요하다.
눈으로 구멍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적절한 힘과 알맞은 속도로 중지를 내뻗는 감각적인 요령을 터득해야 한 번에 골인시킬 수 있다. 구멍 가까이에서 구슬이 멈춘 뒤 2차 공격 시에는 중지로 가볍게 툭 건드리면 쉽게 구멍에 들어가곤 했다.
구멍 넣기 게임을 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구멍에 구슬이 빨려 들어가는 순간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짜릿하다. 구슬치기의 매력이 상대 구슬과 부딪힐 때 나는 경쾌한 소리에서 전달되는 쾌감이라면 구멍 넣기는 단숨에 골인하거나 들어갈 듯 말 듯 하다 쏙 들어갈 때의 정복감이다. 어렸을 때 구멍 넣기를 잘한 사람은 골프도 잘 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골프를 치지 않아 알 도리가 없다.
맨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도시 어린이들에게 구슬치기와 구멍 넣기는 딴 세상 이야기일 것이 분명해 그 옛날 아이들을 울리고 웃겼던 구슬 놀이의 영화(榮華)는 구세대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됐다. 지금도 구슬 놀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실내에서 벌어지는 체험교육 목적이라 옛날 구슬 놀이와는 딴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