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짤짤이를 삼치기나 일이삼 놀이라고도 불렀다. 아이들끼리 모이면 세 개의 명칭을 혼용하는 일이 많았으나 어떤 이름을 대도 자연스러웠다. 짤짤이는 동전을 뜻하는 은어(隱語)고, 삼치기는 일, 이, 삼, 세 숫자 중 하나를 알아맞히는 게임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는 홀짝 게임이 유행했었는데 짤짤이와 비슷한 유형이지만 승부를 가르는 방법과 경우의 수가 달랐다.
#손안에 감춘 구슬 수 알아맞히는 게임
짤짤이는 화투패의 선(先) 또는 카지노 게임의 딜러라고 할 수 있는 아이가 한 손안에 감춘 구슬의 수를 다른 아이가 알아맞히는 게임인데 일대일로 맞붙기도 하고, 세 명이 어울려 승패를 가리기도 했다. 4명 이상은 할 수 없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상관없이 승, 패, 무승부가 분명한 게임이라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고 승부의 열기도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훈수 두다 쫓겨나는 아이
다른 게임과 달리 유독 구경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훈수를 둔답시고 주제넘게 몇 마디 거들다가 망신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고, 분위기를 심하게 흐리는 아이는 쫓겨나기도 했다. 짤짤이는 그만큼 아이들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었고, 저마다 판에 끼어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했다.
짤짤이는 구슬치기, 딱지치기와 함께 내가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긴 놀이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짤짤이는 가장 좋아하고 잘했던 게임이었다. 짤짤이는 주로 구슬을 갖고 했는데 가끔 동전으로도 했다.
구슬 수를 알아맞히는 게임인 짤짤이는 딜러와 베팅하는 아이와의 숨 막히는 수 싸움이 볼만했다. ⓒJames Pett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짤짤이 게임 방식
짤짤이는 선(先)이 손에 쥔 구슬 수를 3의 배수(倍數)로 나누고 남은 수를 알아맞혀 승패를 가리는 게임이다. 가령 한 아이가 1의 2에 구슬 5개를 걸었다고 하자. 선이 쥔 구슬의 수가 6개라면, 3의 배수만큼 제하고 남은 수가 0이라 선이 구슬 5개를 가져간다.
구슬 수가 4개라면 3의 배수에서 1이 남아 선이 내기를 건 아이에게 구슬 5개를 줘야 한다. 구슬이 5개인 경우에는 3의 배수에서 2가 남는데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다. 1의 2에서 1은 베팅을 한 아이가 이기는 수, 2는 비기는 수다. 구슬을 한 개나 두 개만 쥐었을 때는 그 수가 정답이다.
3에 베팅한 아이는 구슬이 3개, 6개 등 3의 배수가 나오면 당첨이다. 단, 3의 1 또는 3의 2중 하나에만 걸어야 한다.
베팅하는 구슬의 수는 베팅하는 아이의 마음에 달렸지만, 합의에 의해 상한선은 따로 정했다. 상한선은 대개 15개~20개였다.
#두 명이 할 때와 세 명이 할 때
무승부일 때는 곧바로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는데 처음에 판돈으로 건 구슬을 다음 판으로 이월시키기도 하지만 구슬을 추가로 더 걸어 판을 키우기도 한다. 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손실과 이익도 커져 아이들의 신경도 예민해졌다. 일대일 대결이 아니라 3명이 참여했을 때는 베팅 우선권을 가위바위보로 가린 다음 이긴 아이가 자신이 걸 수를 먼저 확정한다.
후 순위 아이는 선 순위 아이가 선택한 수를 피해 자신의 수를 결정해야 한다. 앞 순위 아이가 선택한 이기는 경우의 수는 무조건 피해야 하고 비기는 경우의 수는 후 순위 아이도 선택할 수 있다. 선을 포함한 참여 인원이 2명이면 승자독식 게임이지만 3명이면 한 판에서 당첨되는 사람과 낙첨되는 사람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등 복잡한 상황이 연출됐다.
#딜러와의 신경전과 신경전 유형
가위바위보로 선(先)을 정하고 나면 선이 두 손안에 여러 개의 구슬을 감춘 채 이리저리 흔들다가 구슬이 든 손만 앞으로 쑥 내미는데, 이때부터 내기를 걸 아이들과 선을 쥔 아이와의 신경전이 펼쳐진다. 신경전은 아이들 성향에 따라 다 달랐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딜러인 선이 두 손을 맞잡고 흔들 때 구슬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구슬의 수를 판단하는 예리한 청각 의존파,
-구슬 소리만으로는 미덥지 않아 선의 표정을 살펴 결심을 굳히는 인상주의 선호파,
-구슬을 거머쥔 선의 손 모양을 보고 구슬 수를 추측하는 매의 눈을 가진 아이,
-선의 평소 짤짤이 스타일을 파악해 그 스타일에서 예상되는 당첨될 수를 파악하는 학구파,
-깍지 낀 양손을 비틀어 하늘 높이 쳐든 뒤 양손의 틈바구니를 뚫어져라 쳐다본 뒤 하늘이 점지해 준 숫자에 내기를 거는 운명론 추종파 등이다.
짤짤이는 베팅하는 아이의 전술도 다양했고, 이에 맞선 딜러의 대응책도 다양했다. ⓒJoe Mabel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운명론 추종파와 동전 마음대로 파
운명론 추종파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다른 네 사례와 달리 무모해 보이지만 의외로 많은 아이가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 운명론 추종파 못지않게 허황한 방법을 시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방법은 이랬다.
-왼 팔목 위에 10원짜리 동전을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동전 옆 팔목을 탁 쳐서 동전이 땅에 떨어지는 방향을 보고 딜러의 구슬 수를 예상하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런 아이를 ‘동전 마음대로 파’라고 놀렸다. 희한하게도 ‘동전 마음대로 파’를 쫓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동전의 방향과 알 수 없는 구슬의 수가 무슨 관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순진한 동심(童心)이 낳은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맞히려는 자와 속이려는 자
확률 게임이라 어느 쪽이든 족집게처럼 정확할 수는 없었고 그로 인해 구슬 수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내기에 임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얼굴에서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이 묻어나기 일쑤였고, 짤짤이가 펼쳐지는 현장은 맞히려는 자와 속이려는 자간의 숨 막히는 머리싸움을 지켜보는 훈수꾼과 구경꾼 아이들로 넘쳐났다.
선을 쥔 아이가 구슬을 감춘 손을 활짝 펴고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벌어지는 광경은 짤짤이 판에 뛰어든 아이 모두를 울리고 웃겼다.
당첨된 아이는 새로 선을 쥐게 되고 갈고닦은 저만의 할리우드 액션과 표정 연기로 다른 아이들 호주머니 속 구슬을 합법적으로 쟁취할 꿈에 부풀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곤 했다. 구슬을 딴 아이는 더 따고 싶은 욕심에 용기백배하고, 잃은 아이는 한 번에 만회할 복수심에 불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데 피만 안 튀길 뿐이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