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에 참여한 아이들의 노림수를 따돌리기 위한 선의 전략도 만만찮았다. 딜러인 선의 작전은 이랬다.
구슬 소리로 현혹하기
-10개가 넘는 구슬을 펼쳐 보인 뒤 양손에 쥐고 몇 번 흔들다가 승패를 가름할 구슬을 감춘 손을 재빨리 내미는데, 그 속에는 정작 달랑 한 개의 구슬만 들어 있는 때가 많았다. 구슬 소리로 현혹하기인데 여러 개의 구슬 소리로 베팅을 걸 아이들의 상황 판단을 복잡하게 만들어 당첨 확률을 떨어뜨리겠다는 수법이다.
눈속임 작전
-손안에 구슬이 1개 또는 2개인데 5개 이상 들어 있는 것처럼 주먹을 쥔 손 모양을 크게 벌려 잡는 수법. 베팅 셈법을 교란하는 눈속임 작전이다. 이 경우에는 구슬을 쥔 손 밑을 다른 손으로 꼭 받치는데, 마치 한손만으로는 쥘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슬이 든 것처럼 위장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속는 아이들이 많고나도 곧잘 사용한 방법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구슬을 잡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끔 얼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하는 수법. 이 경우 베팅을 걸 아이들은 대개 손안의 구슬을 한 개로 예상하는데 그런 사례가 많다는 경험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선(先)인 아이는 바로 이 점을 역이용해 실제로는 2개나 3개를 쥐었다.
딜러가 손에 감춘 구슬의 수가 5개이면 2(2의 1이나 2의 3중 하나)에 베팅한 아이가 승리자다. ⓒLangläufer22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손 바꿔치기
-구슬을 쥔 두 손을 한참 흔들며 구슬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손을 내미는 척하다가 잽싸게 손을 바꿔치기하는 수법. 구슬을 흔드는 기술과 순간 동작이 빨라야 하는데 구슬을 많이 쥔 손을 내민 것처럼 속여 헛다리를 짚게 하려는 의도다.
깜깜이 베팅 유도
-두 손 모두 허리춤 뒤로 감춘 다음 구슬을 흔들지 않고 한 손을 슬쩍 내미는 수법. 베팅에 참고될 만한 구슬 소리나 손동작이 없고 선의 얼굴도 무표정이라 깜깜이 베팅을 유발하는 작전이다.
역(逆) 노림수
-자신의 짤짤이 스타일과 다른 행보로 나가는 수법. 선의 평소 승부수가 숫자 3이었다면 1이나 2로 상대 베팅에 맞서는 작전인데 수 싸움에 능한 아이들을 다룰 때는 역으로 원래 승부수로 배짱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3을 고수한다는 뜻이다. 이런 수 싸움은 짤짤이 판에서 흔하고 역의 역을 공격하거나 역의 역에 한술 더 떠 세 번까지 노림수를 피해 베팅하거나 방어 작전을 쓰기도 했다.
노련한 아이가 선을 잡았을 때 방어 전술을 요약하면 두 가지 흐름이다. 자신의 짤짤이 버릇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때로는 정면승부를 거는 등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구슬 소리와 구슬을 쥔 손의 형태, 손동작과 손을 내미는 속도, 표정 등을 총동원한 베팅 교란 전술이다.
딜러인 선은 기본적으로 베팅을 건 상대의 당첨 가능성을 무산시키거나 확률을 낮추는 방어자의 입장이지만 구슬 수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공격자보다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짤짤이 게임의 경우의 수
2명이 겨루는 짤짤이 판에서 베팅을 거는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6가지다. 1-2, 1-3, 2-1, 2-3, 3-1, 3-2. 앞 숫자가 당첨 숫자, 뒤 숫자는 무효. 3명이 대결하면 후 순위로 베팅하는 아이의 선택권은 4가지로 좁혀지지만, 베팅 참여자가 1명이든 2명이든 당첨 확률은 모두 33.3%로 같다. 다만 선(先) 순위 베팅권을 거머쥔 아이는 자신이 선호하는 당첨 예상 숫자를 선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만 보면 딜러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 같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딴 판이다.
#당첨 횟수와 낙첨 횟수
베팅 인원이 한 명일 때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18가지인데 당첨인 경우가 6회, 낙첨이 5회, 무효가 7회로 당락(當落)의 단순 비교로만 놓고 보면 딜러인 선보다 베팅을 거는 아이가 다소 유리하다. 베팅 인원이 2명일 때는 나올 수 있는 가지 수가 12가지이지만 내용은 꽤 복잡하다.
한 명은 당첨되고 한 명은 무효인 경우가 4회, 한 명은 당첨되고 한 명은 낙첨되는 경우가 5회, 한 명은 낙첨되고 한 명은 무효인 경우가 1회, 두 명 다 낙첨되는 경우가 1회, 두 명 다 무효인 경우가 1회다. 베팅한 두 명의 당첨과 낙첨, 무효가 같은 판에서 얽히고설켜 선과의 우열을 가리기가 까다롭고 힘들다.
#카더라 통신
결국 짤짤이 판은 베팅하는 플레이어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아이마다 베팅하는 구슬의 수가 달랐고, 베팅 구슬의 수는 판마다 또 달랐기에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는 일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때 아이들 사이에서는 딜러인 선을 잡아야 유리하다거나 먼저 베팅하는 아이가 당첨될 확률이 높다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유행했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짤짤이의 전리품인 구슬로 호주머니가 불룩한 아이와 홀쭉한 아이의 윤곽이 드러나는데, 진짜 승부는 이때부터다. 발동을 거는 쪽은 구슬을 많이 잃은 아이로 선과 단둘이 판을 벌일 때 자주 볼 수 있었다. 약이 오를 대로 바짝 올라 씩씩거리는 아이가 선을 잡은 아이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딜러와 베팅을 거는 아이의 모든 구슬을 다 걸고 단 한 판에 승부를 결정짓는 아도 치기는 짤짤이의 백미(白眉)였다. 아도 치기는 둘이 겨룰 때만 가능했다. ⓒJoe Mabel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단 한 판의 끝장 승부, 아도 치기
‘이제부터 아도 치기로 가자’.
아도 치기는 일본어에서 유래돼 구전(口傳)으로 전해온 말인데 싹쓸이란 뜻이다. 70년대에 아이들끼리 짤짤이를 할 때 흔하게 사용한 용어로 네 구슬 내 구슬 다 걸고 끝장 승부를 보자고 할 때 던지는 최후통첩성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승부로 상대 구슬을 다 따거나 내 구슬을 다 잃는 다 걸기 승부다.
이럴 때 선을 잡은 아이가 보이는 반응은 두 부류다. 딸만큼 땄지만, 아예 저놈 구슬을 거덜 내 버려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심보를 드러내는 아이와 애써 딴 구슬을 자칫 한 방에 다 날릴 수 있어 이제 그만하겠다는 아이로 갈린다.
#짤짤이의 백미(白眉), 아도 치기의 현장
아도 치기 승부가 성사되면 선(先)인 아이는 도전한 아이를 초토화(焦土化)시킬 각오로, 도전한 아이는 대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각오로 각자 불퇴전(不退轉)의 자세로 진검승부를 펼쳤다. 아도 친다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놀이를 하던 아이들까지 죄다 몰려들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현장을 지켜보곤 했다. 짤짤이를 좋아한 나도 아도 치기를 여러 번 했었다.
짤짤이 운 발에 날개가 달려 대박이 터진 날이면 하루에 100개 이상의 구슬을 따기도 했다. 다락방에 고이 모셔둔 구슬 상자 안에 든 수백 개의 구슬은 아이들의 소중한 놀이 자산이었고 바라만 봐도 배가 불렀다. 짤짤이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