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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골목길 놀이문화 ⑤이병 놀이(上) 사회학적 가치와 게임 방식
골목길 놀이문화 ④이병 놀이(上) 사회학적 가치와 게임 방식
#냉혹한 승부의 세계, 개인종목
골목길 놀이는 두 명이 일대일로 하는 개인종목과 삼삼오오 모여 판을 벌이는 게임, 여덟 명에서 열 명 이상이 돼야 가능한 단체놀이 등 다양했다. 둘 또는 서너 명이 어울려 진행하는 놀이는 대체로 이기고 지는 데에 따른 물질적 혜택이 주어지거나 대가(代價)를 치러야 해 즐겁게 노는 놀이라기보다는 제로섬 게임 성격이 짙었다.
지면 내가 손해를 보고, 이기면 내가 이익을 보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냉혹한 승부였다.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짤짤이가 그런 놀이였다. 셋 다 놀이의 자산을 걸고 내기를 했는데 자산은 구슬과 딱지였다. 딱지는 집에 굴러다니는 두꺼운 종이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구슬은 문방구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해 구슬치기와 짤짤이 판에 나서는 아이들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 생활의 덕목을 익히는 산 교육, 이병 놀이
단체놀이도 이기고 지는 승부를 가린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지만, 물질적 손익을 떠나 놀이 행위 자체에 기뻐하고 실망하고 웃고 떠들면서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학습 과정이었기에 그 자체가 체험 학습이요 산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단체놀이는 아이들 모두 좋아했고, 남자아이들은 이병 놀이와 말타기, 소 타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스토리텔링을 장착한 이병 놀이
놀이의 특징과 놀이에 필요한 규칙의 특성상 셋 모두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셋 중 이병 놀이는 전쟁놀이 또는 전쟁 게임이라고도 불렀는데 각자 군대 위계질서의 상징인 계급을 달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면서 고지를 정복하고 사수해야 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이 특히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병 놀이의 사회학적 가치와 군대적 특성
이병 놀이에는 다른 놀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두드러진 사회학적 가치가 내재해 있었다. 대원들 간의 협동심과 작전 수행 능력,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희생정신과 책임감, 문제해결 능력, 리더십, 순발력, 통찰력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 소양과 덕목을 기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놀이를 넘어 골목길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배우는 산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명령과 복종, 은폐 엄호 능력, 계급별 임무와 권한, 적 후방 침투, 백병전, 기습작전 따위의 군대적 특성도 두루 담겨 있어 남자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래 야 않을 수 없었다. 이병 놀이의 또 다른 특징은 거친 몸싸움과 치열한 눈치싸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병 놀이의 팀 편성과 전봇대
공격팀과 수비팀 두 팀으로 편을 갈라 진행하는 전쟁 게임이다. 참가 인원이 10명은 돼야 가능한 놀이로 편을 가르기 전 양 팀의 대장을 먼저 뽑는다. 대장 둘이 돌아가면서 자기 팀으로 끌어들일 대원들을 한 명씩 지명한다. 눈치 빠르고 몸을 잘 숨기면서 달리기도 잘하고 몸싸움에도 능한 아이를 선호했다. 행동이 굼뜨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이는 후 순위로 밀렸다.
팀 편성이 끝나면 양 팀 대장이 자기 부대원들에게 계급을 부여한다. 대장 아래 부대장, 중대장, 소대장, 졸병(이병) 순이다. 동네에 따라, 지역에 따라 계급별 호칭과 게임 진행 방식 및 규칙이 일부 달랐다.
양 팀 대장이 가위바위보로 공격팀과 수비팀을 가린 뒤 공격팀은 정복하고 수비팀은 사수해야 할 진지(陣地)가 결정되면 게임은 시작된다. 진지를 상징하는 시설물은 골목길에 흔한 나무 전봇대였다. 공격팀과 수비팀이 작전을 수행하는 활동 영역이 넓고 대원의 숫자도 많아 제한 시간을 정하고 개전(開戰)을 선언하는데 대략 1시간 남짓으로 못 박았다. 종전 시간이 임박했는데 공격팀의 움직임이 없으면 수비팀에서 큰소리로 신호를 보내 재촉했다.
#이병 놀이의 진행 방식과 규칙
이병 놀이는 경기 규칙의 특성상 공격팀이 유리했다. 심리전과 머리싸움이 뒷받침돼야 하는 대장의 가위바위보 실력이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각 팀 대장은 부대원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이끌 통솔력도 있어야 했고 유사시 임기응변 전술과 위기관리 능력도 갖춰야 해 아이들의 신망을 받는 골목대장이 주로 맡았다.
내가 살던 동네의 이병 놀이 진행 방식과 규칙은 이랬다.
활동 범위와 수색 작전
-게임의 활동 범위는 수비팀의 진지인 전봇대를 중심으로 반경(半徑)이 동네 어귀에 이르는 곳까지인데 거리로 따지면 대략 100m에서 150m 이내였다.
-게임 시작 신호와 함께 공격팀은 작전 수행 범위 내 일정 지역으로 각자 흩어져 은신한다. 10분 후쯤 수비팀이 공격팀 대원들을 색출하는 수색 작전에 돌입한다. 공격팀은 게임 시작 전 미팅을 통해 대장의 비밀 지휘통제소와 대원들이 각자 몸을 숨길 1차 은신처, 공격 포인트가 될 중간 지점 몇 곳을 미리 정한다. 수비팀도 공격팀의 은신처가 될 만한 여러 장소를 추측해 대원들에게 전달한다.
단 한 명만 전봇대를 짚으면 승리하는 공격팀
-전쟁의 승패는 공격팀의 경우 대원 중 누구라도 수비팀의 진지인 전봇대를 손이나 발로 터치하면 승리하고 이 순간 전쟁은 끝난다. 공격팀은 대원 4명이 잡혀 아웃 되더라도 나머지 1명이 살아남아 전봇대를 터치하면 전쟁에서 승리한다.
아웃시키려는 자와 살아남으려는 자의 대결
-수비팀은 공격팀 대원들을 수색해 전원 타진(打盡), 아웃시켜야 이기는데, 방법은 적군의 팔이나 신체 부위를 사전에 정한 규칙에 따른 횟수만큼 손으로 때리는 것이다. 우리끼리 아웃이라고 부른 때리는 횟수는 계급별로 차등화돼 있다.
대장은 20대, 부대장은 15대, 중대장은 10대, 소대장은 8대, 이병은 5대 식이다. 수비팀에서 적군 대장을 잡아 19대까지 때리고 마지막 1대가 남았을 때 대장이 탈출에 성공해 도망가면 체포 작전 실패로 간주한다. 나머지 계급도 마찬가지다.
이병 놀이(下)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