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창고 추억여행
47. 골목길 놀이문화 ⑥이병 놀이(下) 백병전과 다양한 공격 전술
골목길 놀이문화 ④이병 놀이(下) 전봇대 앞 백병전과 다양한 공격 전술
#공격팀이 유리한 이유
공격팀은 4명이 아웃되더라도 나머지 한 명이 전봇대를 정복하면 승리하는 반면, 수비팀은 공격팀 전원을 빠짐없이 아웃시켜야 이기는 점, 공격 대원은 적군에게 잡히더라도 규칙에 정해진 아웃 충족 횟수가 채워지기 전에 도망가면 다시 살아난다는 점은 이병 놀이에서 공격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합동 작전
공격팀 대원 한 명이 적군에게 잡혔을 때 뒤따르던 동료의 도움으로 아웃 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수비팀 대원 한 명이 적군을 잡았을 때 동료의 가세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사례도 있다.
#승부처는 전봇대 앞
게임의 규칙대로라면 공격팀이 쉽게 이길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상황에서는 그렇지만도 않다. 서로 뺏고 지켜야 하는 전봇대 앞에 수비팀 대원 한 명이 보초(步哨) 근무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전쟁의 승패는 전봇대 앞에서 결정되고 전봇대를 둘러싸고 매번 사활을 건 치열한 백병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전봇대 수호 특명이 수비팀 중에서 완력이 세고 체격 조건이 뛰어난 아이에게 떨어지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전봇대 앞에서 펼쳐지는 백병전 양상
전봇대 앞에서 벌어지는 불꽃 튀는 백병전은 전쟁놀이의 하이라이트인데, 그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어림잡아 수비팀 진지 5m 앞까지 접근한 공격팀 대원과 전봇대 수호 병사가 대치하며 팽팽한 신경전에 들어간다. 마침내 전투 의욕을 가다듬은 공격팀 대원이 돌격 앞으로, 구호와 함께 전봇대를 향해 돌진하고 수비팀 병사는 온몸으로 방어벽을 친다. 수비팀 병사는 쳐들어온 적군의 몸을 붙잡고 아웃 요건을 충족시키려 안간힘을 다하고, 공격하는 병사는 아웃 되기 전에 전봇대를 짚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승부의 키는 힘의 차이다.
밀고 나아가려는 자와 버티면서 밀어내려는 자와의 힘 대결인데 십중팔구 힘센 아이가 이기게 된다. 막으면 살고, 막지 못하면 죽고, 뚫으면 살고 뚫지 못하면 죽는 백병전의 특성상 둘 다 가벼운 부상이 불가피하다. 가벼운 부상은 주로 팔과 다리에 생긴 타박상과 찰과상이다.
#기습 공격
전봇대 앞 수비 병사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기습 공격할 때도 있다. 적막을 가르고 맹렬하게 달려 들어가는 공격 병사가 제자리에서 돌아서 얼떨결에 방어 자세를 취하는 상대의 몸을 체중을 실은 어깨로 강하게 들이받아 고꾸라뜨리는 전술인데, 기습 공격의 장점이다. 전봇대 후면 경계를 소홀히 한 수비 병사의 허를 찰나에 찌른 공격 병사는 승리의 영웅이 되고, 전쟁은 종료된다.
#협공(挾攻) 작전
적의 수색망을 따돌린 공격 대원 여럿이 한꺼번에 앞, 뒤, 좌, 우에서 전봇대로 뛰어들 때도 있다. 찾아내려는 자와 들키지 않으려는 자와의 1차 승부에서 기선을 제압한 공격팀이 수적 우세와 대원들의 사기(士氣)에서 앞서 승부는 보나 마나다. 전봇대 앞 수비팀 숫자와 공격팀 숫자가 동수(同數)인 경우에도 공격팀에게 유리한 전쟁놀이의 아웃 규칙상 수비팀이 이길 공산(公算)이 크지 않다.
#대장의 작전 지시 방법
모든 작전은 발로 뛰고 숨고 도망가고 쫓아가고 몸싸움을 벌이는 식으로 이뤄졌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대장의 작전 지시는 오직 한 가지 채널로만 전달됐다. 대장이 숨어있는 후방의 비밀 은신처에 연락병 임무를 맡은 대원이 수시로 오가며 하달된 작전 명령을 전방에 은신한 대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최악의 경우 대장이 아웃 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부대장이 대장 역할을 대신하기로 사전에 약속해 두지만 실제로 일이 터지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였다.
#대장의 은신처와 경계병의 임무
공격팀 대장의 은신처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 지하 계단 공간이나 공터에 쌓아 놓은 벽돌 더미 뒤, 공사 현장의 창고 안 등 지나치기 쉬운 장소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대장 은신처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곳에 대원 한 명이 대기하는 일도 있었는데 경계 근무는 주로 졸병이 섰다. 대장이 적군에게 사로잡혔을 때 자신을 희생양 삼아 대장의 탈출을 돕는 일이 졸병의 임무였다.
이병 놀이는 동네 골목길을 무대로 벌어지는 아이들의 다양한 놀이 중 참여 인원도 가장 많았고 활동 범위도 가장 넓었으며, 놀이 방식과 규칙도 가장 복잡했고 체력 소모도 가장 심했으며, 소요 시간도 가장 긴 인상 깊었던 놀이로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