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골목길 놀이문화 ⑦자치기
골목길 놀이문화 ⑦자치기
#막대기와 나무토막
골목길 놀이 중 막대기와 나무토막이 도구인 놀이도 있었는데 자치기란 이름의 놀이였다.
자치기는 막대기로 나무토막을 쳐서 날아간 거리를 따져 승부를 겨뤘다. 자치기라는 놀이 이름은 길이의 단위인 자(尺, 자 척)에서 나왔는데 자를 재서 더 먼 거리를 기록한 사람이 이기는 방식에서 명명(命名)됐다. 막대기의 길이가 1자의 기준인 30cm 정도인 것도 그래서였다.
막대기는 채라 불렀고 나무토막은 알이라고 했는데 알의 길이가 막대기의 3분의 1인 10cm가량 됐다. 막대기는 긴 직사각형 형태인데 나무토막 타격 시 접촉면을 최대한 확보할 요량(料量)에서 비롯됐다. 막대기와 달리 나무토막은 양 끝이 뾰족한 모양이다. 끝을 뾰족하게 처리한 것은 바람의 저항을 적게 받아 멀리 날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자치기 방식
게임은 나무토막의 한쪽 끝부분을 막대기로 건드리듯 톡 내리쳐 살짝 튀어 오르게 한 뒤 힘껏 쳐 멀리 날려 보내는 식이다. 타격은 반지름 10cm 크기의 원을 그리고 원 안에 나무토막을 놓고 시작한다. 나무토막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수비수가 잡으면 아웃이고 공수가 교체된다.
수비수가 나무토막을 잡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면 포인트가 올라간다. 포인트는 원의 중앙 지점에서 낙하지점까지의 거리를 말하는데 공격권을 뺏길 때까지 계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공수 교대 시에는 먼저 공격한 아이의 나무토막 낙하지점을 표시하기 위해 작은 돌을 내려놓았다. 이런 식으로 공격과 수비를 몇 차례 반복한 다음에 획득한 최종 거리를 따져 승부를 가렸다.
자치기를 표현한 삽화. ⓒThe Strand Magazin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나무토막 띄우기
나무토막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첫째는 막대기로 스윙하기 알맞은 높이로 나무토막을 띄워 올리는 요령이다. 땅에 놓인 상태에서 나무토막을 가격해도 되지만 공중으로 띄웠을 때보다 비거리가 나지 않아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나무토막이 비행하지 않고 땅에 깔려서 나아갈 때는 아웃으로 간주한다.
1차 타격과 2차 타격
나무토막의 한쪽 끝을 막대기로 툭 건드려 위로 뜨자마자 바로 스윙해도 되고, 위로 뜬 나무토막을 막대기로 한 번 더 띄워 올려 휘둘러도 되는데 둘 다 정교한 타격 타이밍 기술이 필요하다. 나무토막을 공중으로 띄운 뒤 헛스윙하면 아웃이고 공중에 뜬 걸 다시 띄운 다음에 헛스윙해도 아웃이다. 1차 타격 시 헛스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2차 타격 시 헛스윙하는 경우는 더 많았다.
1차 타격 때는 주로 한 손만 사용했고, 2차 타격 때는 양손을 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손만으로 1차 타격을 하는 아이들은 타격의 정확성 제고(提高)를 그 이유로 들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공중에 뜬 나무토막의 높이가 낮아 두 손을 다 사용하기에는 불편했고 자칫 스윙하기도 전에 나무토막이 땅에 떨어질 염려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2차 타격은 나무토막을 두 번 띄울 수 있는 기술의 정확성에다 타격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스윙하는 정교한 감각까지 겸비해야 해 까다롭고 어려운 공략법이었다.
그러나 2차 타격은 1차 타격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풀 스윙을 할 수 있어 나무토막의 체공 시간이 길고 비거리도 멀리 나와 아이들은 2차 타격 시도를 선호했는데 선호한 만큼 헛스윙 확률도 높았다. 실속파 아이들은 안정적인 쇼트 게임 위주로 게임을 펼쳐나갔는데, 쇼트 게임은 1차 타격을 말한다.
#또 다른 타격 방법
전혀 다른 타격 방법도 있었다. 한 손에 나무토막을 쥐고 다른 손에 막대기를 쥔 상태에서 나무토막을 공중으로 띄운 뒤 타격하는 것이다. 야구에서 야수의 수비 훈련을 위해 코치가 쳐주는 펑고와 같은 요령이다. 땅에 놓인 나무토막을 띄워 올려 타격할 때보다 쉽고 양손 풀 스윙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헛스윙이 아웃인 것은 마찬가지다. 타격 방법은 경기 전 서로 합의에 따라 결정한다.
#자치기의 거리 상한선과 홈런
자치기에는 비거리 상한선이 있었는데 상한선에 먼저 도달하는 아이가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가끔 2차 타격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풀 스윙의 힘이 제대로 실리면 한 번에 상한선을 넘어가기도 했다. 우리는 이것을 홈런이라고 불렀다. 홈런이 나오면 게임이 종료되고 새로 승부를 시작했다. 공이 아니라 나무토막이라 웬만해서는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
#지역마다 다른 경기 방식
다른 놀이와 마찬가지로 자치기도 동네에 따라, 지역에 따라 경기 방식이 일부 달랐다. 예컨대 공격수가 친 나무토막을 수비수가 잡지 못했을 때 포인트가 주어지는 대신 수비수가 나무토막을 집어 타석을 향해 다시 던지면 공격수가 맞받아쳐 기록한 거리를 포인트로 인정하는 식이다. 승부를 결정짓는 홈런을 인정하지 않는 지역도 있었다.
수비수가 땅에 떨어진 나무토막을 잡아서 시작 지점을 향해 던졌는데 공격수가 맞히지 못하고 원 안에 들어가면 아웃 처리하는 규칙을 적용하는 지역도 있었다.
공격팀 3명, 수비팀 3명씩 편을 갈라 팀플레이로 진행하는 방식도 있다. 공격은 한 명씩 나서고 수비는 3명이 다 출전하는데 각자 정해진 수비 위치가 있다. 한 명이 살아 나가면 다음 사람이 계속 공격하고 비거리를 더해 포인트를 정한다. 공격팀 3명 모두 아웃을 당하면 공수가 교체된다. 일대일 경기에 비해 박진감이 떨어지고 경기 시간도 오래 걸려 성질 급한 아이들은 외면했다.
#자치기와 야구
자치기는 재미 삼아 겨루기도 했지만, 구슬이나 딱지를 전리품(戰利品)으로 내걸고 진검승부를 펼친 적도 종종 있었다. 물체를 맞히는 타격 감각과 체중을 막대기에 싣는 운동신경이 필요한 게임이었다. 자치기를 잘하는 아이들은 야구도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