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치기는 두 장의 딱지가 맨몸으로 겨루는 원초적인 힘의 대결이다. 서로 몸 대 몸으로 부딪쳐 버티든지, 엎어지든지, 선을 지키든지, 선 바깥으로 밀려나든지, 한순간에 삶과 죽음이 엇갈린다. 딱지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은 딱지의 힘인가, 딱지 주인의 힘인가, 둘 다의 힘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또 다른 힘의 작용인가.
#딱지치기 힘의 실체
나는 딱지치기의 힘은 딱지 자체의 힘과 딱지 주인의 힘, 제3의 힘 셋 다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산물(産物)이라고 생각한다. 제3의 힘은 운(運) 발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한다. 딱지의 힘은 딱지의 크기와 딱지의 중량감에서 나오는데 그 힘의 정체는 결국 딱지의 재료인 종이의 재질과 크기에 달려 있다.
딱지는 종이가 두꺼울수록 타격감이 뛰어나고 무게중심이 잘 잡혀 전투 능력이 우수하다. 중국집 홍보전단지로 접은 딱지.
#수동적인 딱지의 운명
종이가 질기고 크면 놀이 도구로 변신한 딱지의 체격도 우람하고 장대(壯大)한데 그것은 딱지 주인의 마음이 결정할 일이다. 종이의 재질과 크기는 딱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는 점에서 딱지의 운명은 지극히 수동적이라 할 수 있다. 운명이 주체적이지 못한 점은 인간도 마찬가지라 딱지 또한 자기 처지를 슬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딱지 주인의 힘은 상대 딱지를 내리치는 물리적인 힘에 기술적인 요령이 더해졌을 때 완성된다. 완성된다는 의미는 힘이나 기술에만 기댔을 때는 반쪽의 성과만 발현돼 상대 딱지의 기(氣)를 제압해 때려눕히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딱지치기 힘과 미학적 요소
손으로 후려칠 때 딱지에 전달되는 힘은 손만의 힘일 수는 없다. 그 힘은 멀게는 발바닥에서부터 무릎과 허리를 지나 어깨와 팔을 거쳐 손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신체 구조가 협동 단결해 만들어 내는 총화(總和)이기 때문이다. 손의 힘에만 의존해 세게 가격한다고 능사가 아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딱지치기 힘에도 조화와 균형이 한 덩어리가 된 미학적 요소가 녹아 있는 것이다.
딱지치기 힘의 또 다른 필수 요소인 기술은 딱지 주인의 타격 감각과 운동신경에 의해 저절로 위력을 발휘한다. 감각과 신경은 마음먹고 달려든다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 딱지 주인도 딱지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하늘의 뜻이니 일종의 복(福)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술의 핵심은 타격 행위에 육체적인 힘의 안배와 딱지가 손을 떠나 땅으로 날아가는 타이밍, 상대 딱지의 급소를 공격하는 정교한 조준 능력이 필수적인데 그것은 딱지 주인의 손목 스윙에서 비롯된다.
노트 종이로 만든 딱지.
#제3의 힘
제3의 힘은 딱지 주인과도 딱지와도 관계없는 상대 딱지가 놓인 땅바닥의 컨디션이나 바람의 방향과 세기 따위의 자연적 요소다. 상대 딱지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굴곡진 땅 위에 놓여 있을 때 외부의 힘은 용수철 효과에 힘입어 반발력을 상승시켜 뒤집힐 확률이 높고, 편평하거나 물기를 머금은 땅 위에 얹혀 있을 때는 외부의 힘을 끌어안아 반발력이 약해져 버틸 확률이 높다.
바람이 상대 딱지에 가해지는 외부의 힘과 같은 방향으로 불 때 엎어질 확률이 높고 바람의 세기가 강할수록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지는 이치다.
#예술 게임인 딱지치기와 딱지종이
이처럼 딱지치기 놀이에는 힘과 기술, 자연적 변수가 연계된 미학적 가치가 내재해 있어 딱지치기는 단순한 놀이 이상의 매력을 지닌 맨땅에서 벌어지는 예술 게임이라 할만하다.
집에 굴러다니는 종이로 만들 수 있어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 서로의 힘과 기술의 우위를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다는 점,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의 영향을 공평하게 받는다는 점은 아이들을 딱지치기 대결 현장으로 이끄는 강력한 유인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딱지종이로는 두꺼운 마분지를 선호했고 빳빳한 잡지 종이도 인기가 많았으며 공책 종이로도 딱지를 접었다. 종이 구하기가 여의찮을 때는 신문지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찰기가 떨어져 몇 차례 공격하고 공격당하다 보면 찢어지거나 접힌 부분의 모양새가 흐트러지면서 전투력이 저하돼 기피 대상이었다.
타격감이 떨어지는 신문지 딱지.
#승부 방식
딱지치기의 승부 방식은 다음과 같다.
-땅바닥에 놓인 상대 딱지를 쳐서 뒤집으면 승리.
-원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일정한 크기의 경계선을 그린 뒤, 그 안에서 상대 딱지를 쳐서 뒤집거나 선 밖으로 밀어내면 승리.
-상대 딱지를 공격했는데 내 딱지가 상대 딱지 위에 얹히면 패배로 간주. 내 딱지보다 상대 딱지의 몸집이 크고 우수할 때 자주 일어난다. 선 안에서 겨루는 방식일 때는 정면승부를 피하고 경계선 쪽으로 상대 딱지를 유도해 스스로 선을 벗어나는 실수를 유도하는 방법이 현실적이고 승산도 있다.
-뒤집거나 밀어내거나 두 방식 다 이기면 상대 딱지를 차지하고 계속 공격권을 갖는다. 게임 시작 전 가위바위보로 선공(先攻) 여부를 가린다. 서로 뒤집지 못하면 뒤집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다.
#뒤집기 요령
뒤집는 요령은 여러 가지다.
-내 딱지로 위에서 상대 딱지를 덮치듯이 후려갈겨 뒤집는다. 일명 배치기다. 내 딱지가 상대 딱지보다 두껍고 더 무거울 때 효과가 있는 타격 방법이다. 내 딱지의 몸집이 압도적으로 우위일 때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우격다짐 방식 대신 상대 딱지 옆 땅바닥을 세게 쳐 약을 올리기도 한다. 뿌연 흙먼지가 나면서 바람이 일어나는데 그 바람의 기운이 상대 딱지를 들어 올려 뒤집는 일이 종종 있다.
-상대 딱지 옆면에 바짝 붙인 한쪽 발 안쪽을 지렛대 삼아 상대 딱지의 또 다른 옆면을 빗겨 올리듯이 때려 뒤집는다. 가격했을 때 상대 딱지에 밀착시킨 내 발 안쪽 면에 상대 딱지의 옆면이 부딪혀 꺾이는 반동을 이용하는 원리인데 그냥 내리치는 것보다 뒤집힐 확률이 높다. 발기술이 좋은 아이들이 유리하다.
#밀어내는 방법
밀어내는 방법은 단순한데 상대 딱지 옆구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식이다. 조심할 것은 탄착점을 잘못짚어 밀어내기에 실패하고 내 딱지가 선 밖으로 나가면 진다는 점이다.
딱지치기는 두 장의 딱지가 맨몸으로 겨루는 원초적인 힘의 대결이다.
#맨땅의 격투기, 딱지치기
딱지치기는 딱지 대 딱지 간의 뒤집고 밀어내고 뒤집히고 밀리는 격투기 같은 놀이라 체력 소모가 상당한데 한 번 승부를 펼치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고 팔과 어깨가 욱신거려 운동 효과도 좋았다. 승패 방식도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해 다툴 일도 없었고 좁은 공간에서 딱지 두 장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용 놀이로는 그만이었다.
딱지치기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도 했고 골목길에서도 했고 집 마당에서도 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전천후 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