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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골목길 놀이문화 ⑨말타기와 마부 놀이(上)

by 박인권

골목길 놀이문화 ⑨말타기와 마부 놀이(上)


#말타기 기수는 뜀틀 체조선수

한 아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더니 바로 앞에 허리를 구부린 아이의 등허리를 두 손으로 강하게 짚은 반동을 이용해 뛰어올랐다. 또 다른 아이도 맹렬한 기세로 달려가다가 조금 전 아이와는 다르게 손을 짚지 않고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대기하던 세 아이도 차례대로 이런 장면을 반복하며 먼저 안착한 동료의 허리춤 뒤에 바짝 붙어 앉았다. 다섯 아이는 모두 뜀틀 체조선수 같았다.


골목길 놀이 중에 유별나게 격렬하고 스릴감이 넘치는 단체놀이가 있었다. 말타기라는 놀이인데 전리품을 걸고 승부를 겨루거나 게임 자체를 즐기는 다른 놀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다소 난폭한 놀이였다. 한쪽에서는 유쾌, 통쾌, 상쾌한 쾌감과 박진감을 만끽하는가 하면 반대쪽에서는 육체적 고통과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거칠고 우악스러운 놀이였다.


#말뚝박기가 전투적으로 진화한 말타기

우리의 전통 놀이인 말뚝박기와 비슷하나 전승(傳承) 과정에서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요소가 가미돼 아이들을 열광시킨 말타기로 정착됐다. 공격적인 몸놀림과 파괴력, 순간 스피드와 점프력, 체공력이 중요해 단체놀이 중 가장 남성적인 게임이었다.


말 타는 장면을 전투적으로 해석해 승패를 가리는 게임으로 발전시킨 놀이인데 여러 명이 허리를 굽혀 대오를 지은 상대 팀 아이들의 등허리에 올라타면서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엉덩이와 하체로 찍어 누르기, 치열한 몸싸움과 버티기로 특징되는 말타기에서는 크고 작은 부상이 속출했다. 특히 말이 된 아이들의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억의 놀이가 된 말타기는 외국에도 있다. 터키 아이들이 말타기 중인 모습. ⓒDossema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기수와 말, 마부 편성

말타기 놀이에는 8명에서 1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했다. 두 팀으로 편을 가른 뒤 양 팀 대표가 가위바위보로 공격과 수비를 정했다. 공격은 말 타는 쪽 즉 기수(騎手)가 되고, 수비는 말과 마부(馬夫) 역할을 맡았다. 놀이 장소는 골목길이나 동네 공터였다.


마부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 서 있고, 맨 앞의 말이 허리를 굽혀 마부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면 그다음의 말은 자기 앞의 말을 상대로 똑같은 자세를 취했고, 나머지 말들도 동일 요령으로 대오(隊伍)를 이루었다.

#선봉 기수의 중요성과 마지막 기수의 임무

공격팀 선봉(先鋒)의 역할은 막중했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 수비팀 대오를 흩트려야 했고, 마부와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리는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도 쥐고 있었다. 몸이 날래고 체격 조건이 뛰어나 말들의 엉덩이와 머리 사이의 취약한 부분을 한방에 공략해 대오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력과 함께 가위바위보 수읽기에도 능해야 했다.


마지막 기수의 역할도 중요했다. 앞선 기수들과의 치열한 공방으로 지칠 대로 지쳐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수비팀 대오의 허약한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겨냥한 끝내기 승부수를 성공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기수들의 파상공세와 말들의 처절한 저항

대오를 무너뜨리려는 기수들의 파상공세와 머리와 목, 등과 허리에 계속되는 하중(荷重)에서 오는 증가일로의 통증을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야 하는 말들의 처절한 저항. 말타기는 남자아이들의 공격본능과 승부 근성, 고통을 참고 견디어 역전 드라마를 쓰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투쟁 정신이 배어있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진검승부였다.


#말타기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육박전

말타기의 승부 방식은 몸으로 몸을 공격하고 몸으로 몸을 방어해야 하는 원초적인 육박전(肉薄戰)이라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크게 엇갈렸다. 육박전의 내용이 공격하는 쪽은 공격만 하고, 방어하는 쪽은 방어만 해야 하는 일방적인 게임이라는 점에서 수비팀의 공격 전환은 절실했다. 승부 방식은 이랬다.


#말타기의 승부 방식

-기수 중 단 한 명이라도 신체 일부가 땅에 닿으면 패배하고 공수가 바뀐다.

-반대로 방어하는 말 중 무릎이 땅에 닿거나 손으로 땅을 짚으면 지고, 수비 대오가 무너져도 진다. 수비팀이 지면 다시 수비 대오를 형성한 뒤 기수들이 처음부터 새로 공격을 시도한다.

-기수가 다 올라탔는데 승패 요인이 발생하지 않으면 맨 앞 선봉 기수와 마부가 삼세판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결정한다. 가위바위보 대신 묵찌빠로 가름하기도 했다. 이긴 팀은 계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기수들에게 유리한 말타기

일방적인 육박전인 게임의 특성상 기수들이 유리한 데다 연달아 공격권을 행사하면 말들의 체력이 고갈되고 육체적인 고통이 심해 전세를 뒤집기가 어렵다. 수비팀은 1차나 2차 방어 때 공격권을 뺏지 못하면 계속 시달리기 십상이다.


이기고 지는 데 따른 보상과 대가가 혹독해 기수들과 말들은 첫 번째 기수가 올라타는 순간부터 사활(死活)을 건 격렬한 전투가 불가피하다. 공격팀과 수비팀이 5명씩 짝을 이룬 말타기 전투 요령은 다음과 같다.


피터르 브뤼헐(1527~1569), 아이들의 놀이, 패널에 유화, 118 x 161cm, 1560,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말타기가 이미 16세기 유럽에 존재한 사실을 증명하는 그림이다. 맨아래 오른쪽 끝에 말타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브뤼헐은 현재 네덜란드인 브라반트 공국 출신으로 북유럽 르네상스 풍속화의 대가(大家)로 명성을 떨쳤다. 눈 속의 사냥꾼(1565), 농가의 결혼식(1568) 등 농촌 생활을 정교한 묘사로 재현한 풍속화로 유명하다.


#공격팀의 전투 요령

-기수들은 달려가는 탄력을 살려 말 등허리를 두 손으로 강하게 압박한 뒤 뛰어올라 말들의 연결고리나 허리 부분을 엉덩이와 허벅지의 힘으로 찍어 누른다. 연결고리는 앞말 가랑이 사이에 끼인 뒷말의 머리와 목 부위다. 연결고리 공략은 주로 덩치가 좋은 말을 상대할 때 사용한다. 체격이 왜소해 보이는 말은 허리 부분이 집중 공격 대상이다.


*무릎으로 내려찍기

-기수 중 도움닫기 실력이 뛰어나고 점프력이 우수한 아이는 말 등허리를 짚지 않고 그대로 올라타는데 대개 선봉 기수가 그런 경우다. 선봉 기수는 빠르고 높고 멀리 날아올라 체공력을 최대한 활용해 양 무릎으로 말의 허리를 내려찍기도 하는데, 이 공격이 탄착점에 제대로 꽂히면 대개의 말은 주저앉고 만다.


무릎 찍기는 성공 가능성이 큰 대신에 위험부담도 컸다. 공격당하는 말이 무릎이 허리에 닿는 순간 몸을 비틀고 흔들면 기수의 무게중심이 흔들려 균형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취약 지대, 두 번째 말과 세 번째 말

-기수들은 착지한 뒤 중간 위치에 있는 두 번째 말과 세 번째 말에 걸쳐 자리를 잡고 앉아 밑에 깔린 말의 목과 등, 허리에 전달되는 하중이 최대화되도록 엉덩이에 힘을 잔뜩 준다. 수비팀의 대오가 주로 두 번째 말이나 세 번째 말에서 무너지는 이유다.


-기수들은 안착한 다음 밑에서 버티고자 하는 말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허벅지와 무릎으로 말 허리를 강하게 압박한다.


*마지막 기수의 승부수

-마지막 기수는 연이은 공격과 허리로 파고드는 하중의 증가로 체력이 고갈되기 직전인 세 번째 말을 겨냥해 승부수를 던진다. 승부수는 높이 뛰어올라 세 번째 말에 올라탄 동료 기수의 몸을 덮치는 방법이다. 이 작전은 가뜩이나 상대 기수들이 짓누르는 무게에 안절부절못하는 세 번째 말의 급소를 가격하는 효과가 있어 승산이 높다. 급소는 세 번째 말의 후들거리는 다리다. 마지막 기수의 몸무게는 무거웠다.


말들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말타기와 마부 놀이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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