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 방과(放課) 후면 아이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자주 들리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입이 즐거워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잘만 하면 군것질거리도 공짜로 생겼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은 복고풍 놀이로 새삼 주목받고 있는 달고나, 이야기다. 초등학생치고 달고나를 모르는 아이는 없었고 맛과 재미가 거부할 수 없이 치명적이라 하루가 멀다, 하고 달려가곤 했었다.
달고나라는 이름은 열을 가한 설탕은 단맛이 더 강해져 설탕보다 더 달구나, 라는 데서 유래됐다고 알려졌다.
#달고나의 흡인력
달고나의 매력이 치명적인 이유는 설탕이 유발하는 단맛의 유혹에 취하면서 보너스가 걸린 게임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었고 문양 분리에 성공하면 경품까지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 주전부리이자 놀이 겸 게임인 속성을 동시에 장착한 달고나는 다른 놀이와 확연히 구별되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 것도 아이들이 달고나를 좋아한 이유였다. 국자에 노란 설탕을 넣고 연탄불 위에 올려 젓가락으로 저으면서 녹인 설탕물에 베이킹소다를 넣어 부풀리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녹이고 젓고 부풀리는 시간이 아주 잠깐이라 성질 급한 아이들의 비위에도 딱 맞았다.
설탕을 녹인 뒤 소다를 넣어 부풀린 달고나. ⓒRuth Hartnup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먹자, 파(派)와 게임, 파(派)
군것질거리이면서 아이들 게임의 방편(方便)이기도 한 달고나의 아우라는 여기서부터 분출된다. 불기운을 덮어쓰고 액체로 변한 설탕이 소다를 머금어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오른 달고나를 아이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했다. 이른바 먹자, 파(派)와 게임, 파(派)로 나뉘었다.
#스스로 만들어 먹는 먹자, 파
먹자, 파는 다 된 달고나를 국자 채 떠먹거나 젓가락으로 찍어 먹거나 철판 위에 붓고 누르개로 납작하게 누른 뒤 입으로 호호 불며 식혀가며 먹는 아이들이다. 먹자, 파는 스스로 달고나를 만들어 먹었다. 게임, 파는 달고나로 나 홀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인데 게임의 내용은 이렇다.
#달고나 게임의 내용
-뜨겁고 끈적끈적하고 눅진눅진한 설탕 액을 철판 위에 조심스레 부은 뒤 함석으로 만든 무늬 틀로 꾹 눌러 별이나 하트, 삼각형, 원, 네모, 십자, 숫자 8 등의 다양한 모양을 냈다. 무늬 틀은 주인만 사용할 수 있어 무늬는 주인이 직접 새겼다.
-바늘이나 핀 따위로 무늬가 새겨진 윤곽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콕콕 찔러 형상이 부서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분리해 떼 낸다. 바늘 작업이 거의 완성됐다 싶으면 두 손으로 떼 내야 했는데,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 염려한 나머지 마지막에 혀로 핥아서 분리하는 아이도 있었다.
*공짜 달고나와 대형 사탕 경품에 목숨 건 아이들
무늬 모양을 온전하게 떼 내면 달고나 완제품이나 100% 설탕으로 만든 노란빛이 돌고 속이 다 보이는 대형 사탕을 경품으로 받았다. 대형 사탕은 물고기나 동물을 형상화한 예술 작품처럼 모양이 멋있었고 오랫동안 빨아먹거나 이빨로 깨뜨려 먹는 재미가 쏠쏠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대형 사탕이 걸린 문양은 8자처럼 난해한 것이 많아 성공 확률이 거의 없었지만 아주 드물게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를 발휘하는 아이도 있었다.
*희비가 엇갈린 달고나 무늬
-무늬의 난이도는 천차만별이었고 그 결정은 주인 마음에 달려 있어 조금 쉬운 무늬가 걸린 아이는 바라는 대로 됐다는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고 까다로운 무늬를 받아 든 아이는 어려운 숙제를 풀게 됐다는 속상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주인은 가끔 아이들을 충성 고객으로 확보할 욕심에 특단(特段)의 경품을 내걸기도 했다. 경품은 현금이었다.
*주인의 상술(商術)
달고나 게임에서 승리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처음 찾아온 고객에게는 단골 확보 차원에서 만만한 무늬를 찍어줬지만, 매상 관리가 중요한 주인으로서는 쉬운 듯 까다로운 문양을 내밀거나 무늬 틀을 느슨하게 눌러 아이들을 골탕 먹이는 일이 잦았다. 달고나에 찍힌 무늬의 윤곽선이 희미하면 경품을 탈 가능성도 희박한데 형상을 분리하기가 어려워 무리하게 힘을 가할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 십중팔구 문양이 부러지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달고나를 상품화한 달고나 판매대. ⓒSharon Hahn Darli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쉽지 않은 달고나 게임
형상 분리에 성공한 아이는 뽑았다! 라고 외치고, 실패한 아이는 꽝! 이라고 탄식했다. 달고나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늘이나 핀을 다루는 꼼꼼한 손기술과 평이(平易)하거나 적당한 무늬의 난이도에 더해 선명한 무늬 윤곽선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아도 아이들은 부지런히 달고나 현장을 찾아 공짜 달고나나 경품을 기필코 쟁취하고 말겠다는 승부욕(勝負慾)을 불태웠다. 실패해도 달고나 한 개는 먹을 수 있었고 성공하면 달고나 두 개, 운(運) 발에 날개가 달린 날이면 경품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포또와 포또 띠기
내 고향 대구에서는 달고나를 포또, 라고 불렀고 달고나 게임을 포또 띠기라고 했다. 달고나 대신 포또라는 명칭이 아이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됐다는 점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을 법한데 이리저리 뒤져봐도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탄불에 녹은 설탕이 소다를 만나 갑자기 확 부풀어 오르는 모양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일본어로 확 또는 번쩍, 을 뜻하는 의태어가 포또(ぽっと)라 이 말을 끌어다 쓴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되는데 근거가 없는 억지 해석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추억의 체험 교실
달고나는 1960년대 초에 길거리 노점상 형태로 처음 등장한 뒤 70년대 전성기를 거쳐 80년대 들어 제과 산업의 발전에 따른 먹거리와 군것질거리가 다양화되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추억의 군것질거리라는 이름의 체험 교실 형태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유명 관광지나 문화의 거리, 일부 지자체 향토문화관 등에서 달고나를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