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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창고 추억여행

42. 골목길 놀이문화 ①구슬치기

by 박인권

골목길 놀이문화 ①구슬치기


#연중무휴 놀이터, 골목길 놀이문화의 종류

고향 집 동네 골목길은 연중무휴 놀이터였다. 학교 운동장 말고는 아이들이 딱히 놀 곳이 없던 70년대에 방과 후 놀이터는 언제나 골목이었다. 학교에서는 학교 친구들과 골목길에서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렸다. 골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놀이문화와 신기한 볼거리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게임기도 없던 아날로그 환경에서 자란 또래의 아이들에게 야외 놀이문화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짤짤이, 말타기, 소 타기, 이병 놀이, 술래잡기, 자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개인기가 중요한 개인종목

그때 놀이문화는 맨땅인 골목길을 중심으로 펼쳐졌으며 골목길은 언제나 아이들 소리로 넘쳐났다. 놀이는 둘이 승부를 결정짓는 개인종목부터 셋 또는 넷이 어울리는 게임도 있었고 대여섯 명을 넘어 두 자릿수 인원이 참여해야 진행할 수 있는 단체종목까지 이름도, 규칙도, 승부 방식도, 참가 수도 실로 다양했다.

일대일로 맞붙는 개인종목이면서 서너 명까지 참가 인원을 늘려 확장된 제로섬 게임으로 진행되는 놀이도 있었는데, 구슬치기와 딱지치기가 그랬고 짤짤이는 3명까지 가능했다. 짤짤이는 2명이면 승자독식 게임인데, 3명이면 한 판에서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등 복잡한 상황이 연출됐다. 자치기와 공기놀이는 둘이 대결하면 이긴 사람이 과실을 다 따먹는 개인종목이지만 셋 이상 참가하면 실력에 따라 순위를 가리는 순위결정전 성격이 강했다.


70년대 구슬치기에 사용된 구슬 모양. ⓒMichiel1972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팀워크가 중요한 단체종목과 술래잡기

말타기와 소 타기, 이병 놀이는 한, 두 명의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단체종목이었다. 술래잡기는 술래인 한 아이가 숨은 아이들을 찾아내는 게임으로 술래에게 발각되는 아이가 다음 술래가 되는 식으로 반복 진행된다. 개인종목도 아니고 단체종목도 아닌 특이한 놀이였는데 술래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언제까지고 게임을 즐길 수 있어 아이들이 은근히 좋아했다.


#상대 구슬 맞히기(알까기)

골목길 아이들 놀이 중 대표적인 개인종목이 구슬치기와 구멍 넣기다. 구슬치기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상대 구슬 맞히기와 구슬 쳐내기였다.


일명 알까기라고도 한 상대 구슬 맞히기는 가위바위보로 우선권을 정하고 진 사람이 일정하게 떨어진 자리에 구슬을 던져 놓으면 이긴 사람이 시작 지점에서 구슬을 손가락으로 튀겨 상대 구슬을 맞히는 게임이다.

구슬을 맞힌 사람은 상대 구슬을 차지하고 이전과 똑같은 조건에서 계속 공격권을 행사한다. 상대 구슬을 못 맞히면 그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공격권을 넘겨준다.


처음 공격권을 따낸 사람이 한 방에 목표물을 명중시킬 자신이 없으면 상대 구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자기 구슬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명중 확률이 높은 근접 거리에서 공격당해 구슬을 뺏길 우려 때문이다.


#구슬을 튕기는 요령

엄지손가락 첫마디와 중지 손톱 사이에 구슬을 끼우고 중지로 구슬을 밀어 치거나 엄지손가락 손톱과 검지 첫마디로 구슬을 누르고 있다가 조준을 한 뒤 엄지손가락을 튕겨 구슬을 상대 구슬 쪽으로 발사해 승부를 겨뤘다. 정확성과 힘 조절, 두 가지 조건이 다 맞아떨어져야 성공하는데 1m 이상 거리에서는 한 번에 맞히기가 어렵다. 아이들 엄지손가락 손톱과 중지 손톱 겉면에 패인 자국과 닳은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다 구슬치기 때문이다.


색깔도 모양도 디자인도 예쁜 구슬들. ⓒGlenda Gree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구슬 쳐내기

구슬치기 중에서 아이들이 선호한 방식은 삼각형 안 구슬을 자기 구슬로 쳐내 따 먹는 게임이었다. 분필이나 작대기로 땅바닥에 삼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각자 판돈 성격의 구슬을 태우고 가위바위보로 선(先)을 정해 진행하는 놀이다. 요령은 삼각형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가로로 선을 긋고 그 지점에서 자기 구슬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삼각형 안 구슬을 쳐내는 식이었다. 구슬을 튕기는 요령은 상대 구슬 맞히기와 같다.

자기 구슬로 삼각형 바깥으로 밀어낸 구슬을 가져가는데, 성공하면 계속 공격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밀어내기에 실패하면 출발 지점에서 상대가 공격한다. 구슬이 모인 과녁 정중앙을 가격하는 정확성과 함께 파괴력이 셀수록 삼각형 안 구슬을 최대한 많이 선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자기 구슬과 삼각형과의 거리가 20~30cm 사이일 경우에는 검지 첫마디를 지렛대 삼아 엄지손가락의 힘으로 구슬을 튕겼다. 중지로 구슬을 튕길 때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둘 다 한 차례씩 공격권을 행사한 뒤에는 자기 구슬이 놓인 그 자리에서 목표물을 공략한다.


#구슬 쳐내기 게임의 묘미(妙味)

나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박진감도 별로인 데다 전리품도 구슬 하나뿐인 상대 구슬 맞히기는 아예 한 적이 없고 오로지 구슬 쳐내기 게임에만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맞대결 상대와 숨 막히는 승부를 연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완승(完勝)하거나 역전승도 가능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슬아슬한 박빙의 경기 양상을 띠기도 해 흥미진진한 묘미가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스핀 기술

조준 능력과 정확하고 강력한 튕기기를 겸비해야 하는 구슬 쳐내기 게임에서는 서로 스핀(spin) 기술을 경쟁적으로 구사했는데 나도 그랬다. 엄지손가락 손톱과 검지 첫마디 사이에 끼운 구슬 몸을 훑어 올리며 튕기는 동작을 취할 때 엄지손가락을 비틀면 발사된 구슬에 강한 스핀이 걸려 파괴력이 증폭되면서 삼각형 안 구슬과 충돌하고 난 뒤 한참 회전을 하고 나서야 멈춘다. 스핀을 세게 걸면 걸수록 삼각형 안 구슬을 쳐내는 데에도 유리했다.


구슬치기에 사용된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양한 구슬들.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희비가 엇갈리는 삼각형 안 구슬의 운명

구슬 쳐내기는 각자 한 번에 구슬 10개 정도를 판 돈으로 태웠다. 삼각형 바깥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구슬의 요격에 20개의 구슬은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운명이 엇갈렸다. 처음부터 삼각형 안에서 살아남은 놈도 있지만 삼각형 밖으로 여럿이 떠밀려 난 놈과 튕겨 나간 놈은 모두 죽은 몸이다.


죽을 뻔하다가 운 좋게 살아난 놈들도 있다. 적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삼각형 대열을 벗어나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순간, 옆에 있던 동료의 몸에 강하게 부딪히며 그게 방패막이 역할을 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놈이다. 이놈과 충돌한 옆의 놈은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인데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자살특공대

삼각형 방어망을 뚫고 들어온 구슬이 공격 후 삼각형 안 다른 구슬의 촘촘한 대오(隊伍)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때도 있는데 우리끼리는 자살특공대란 뜻으로 가미카제(神風, 신풍)라 불렀다. 구슬 쳐내기에서는 게임의 특성상 자살특공대가 많이 나왔다.


자살특공대는 본인 구슬이 죽고 공격권도 뺏기지만 삼각형 밖으로 나가떨어진 구슬을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는 특이한 규칙이었다. 자살특공대 구슬은 판 돈에 얹힌다. 자살특공대 규칙은 동네마다 약간씩 달랐다.


#고수익 고위험 게임, 구슬 쳐내기

짧은 시간에 구슬을 많이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고수익 고위험 게임이라 구슬을 많이 갖고 있고 적극적인 성향의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두 명이 대결하는 일대일 방식이 많았고 가끔 서너 명이 할 때도 있었다. 숫자가 많으면 판돈이 커지는 대신 자칫 자기 순서가 뒤로 밀려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닭 쫓던 개 먼 산 바라보는 신세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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