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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⑥동네 개천의 여름과 겨울(上) 잠자리 사냥

by 박인권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⑥동네 개천의 여름과 겨울(上) 잠자리 사냥


#고향 동네 개천의 추억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떠난 고향 집 근처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쯤 가면 개천이 나왔는데 그 주변으로 이름 모를 잡초와 풀이 무성했다. 여름이면 잠자리가 지천으로 날아다녔고 매미 울음소리는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장마철에 개천의 수위는 갑자기 올라가 잡초와 풀을 뒤덮었고 어린 꼬마들이 다가가기에는 물이 제법 깊었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날 개천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며칠 새 잡초의 키가 한 뼘 이상 쑥쑥 자랐고 풀들도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잠자리 채집의 명당

여름방학 때 개천은 또래 친구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아이들은 개천을 찾았고 손에 잠자리채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암수 잠자리 한 쌍이 찰싹 달라붙어 흘레하는 장면이 눈에 띄면 아이들은 신기해하면서 경쟁적으로 다가갔다. 두 마리의 잠자리 눈치를 동시에 따돌리고 맨손으로 순식간에 덮쳐야 해 잡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지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지 않는 아이가 없었다.


잡기만 하면 잠자리 많이 잡기 내기 실적이 두 배로 올라가기 때문인데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아 헛물만 켜는 셈이었다. 흘레붙은 잠자리를 내가 산 지역에서는 곰배 붙었다, 고 표현했는데 곰배는 흘레의 경상도 방언이다.


1. 긴 몸통에 회전 가능한 머리, 6개의 다리,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잠자리.jpg

긴 몸통에 회전이 가능한 머리, 6개의 다리, 한 쌍의 투명한 날개를 지닌 잠자리. ⓒTim Bekaert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맨손 잠자리 사냥이 어려운 이유

맨손 잠자리 사냥이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뛰어난 잠자리의 시력이고 다른 하나는 민첩하고 탁월한 비행 능력인데 둘 다 오랜 세월 진화를 거쳐 잠자리 고유의 특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잠자리는 회전이 가능한 머리에 크고 불룩한 2개의 겹눈과 정수리에 3개의 홑눈을 지녀 상하좌우 사방을 자유자재로 경계할 수 있다. 미세한 인기척만 있어도 고감도 레이더망인 겹눈에 포착되기 십상이다.


잠자리는 또 급상승과 급강하, 급선회, 후진 비행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품 비행 실력을 무기 삼아 공격자의 손이 제 몸에 닿기 일보 직전인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 상황에서도 손쉽게 도망갈 수 있다.


#눈치 100단 잠자리

잠자리는 이런 본능적 생존력 때문에 웬만해서는 맨손 사냥을 허락지 않는다. 엄지와 검지 또는 검지와 중지로 잠자리 날개를 정조준한 뒤 밀착 접근해 집게로 물건 집듯이 양 손가락을 오므리는 순간 성공했다 싶다가도 어느새 공중으로 탈출해 버리기 일쑤다.


맨손으로 잠자리 사냥을 해본 사람은 눈치 100단의 순발력 고수와의 버거운 싸움이라는 말을 실감할 것이다. 잠자리를 맨손으로 잡은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잠자리 사냥에 잠자리채가 필요한 이유다. 잠자리채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2. 몸통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장수잠자리.jpg

몸통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장수잠자리. 개천이나 하천, 개울가가 서식지다. ⓒBrian Adler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흥미진진한 잠자리 사냥의 전말(顚末)

풀이나 나뭇가지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잠자리를 겨냥한 사냥 욕구는 스릴감이 뛰어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스릴감은 잠자리를 눈으로 포착한 순간부터 발동된다. 잠자리 사냥은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사냥에 잠자리채가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촘촘한 그물망 주머니가 달린 잠자리채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살금살금 목표물을 향해 접근한다. 기다란 대나무 막대에 연결된 그물망이 어른 머리가 들어갈 만한 크기로 포획 범위가 넓더라도 눈치 끝판왕 잠자리의 경계망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말아야 한다.


-잠자리가 사정권(射程圈)에 들어왔다 싶으면 그물망이 사냥감을 안정적으로 덮칠 수 있도록 막대를 거머쥔 두 손의 그립을 고쳐 잡고 공격 자세를 취한다.


-잠자리채와 잠자리와의 거리가 30cm 이내로 근접했을 때 승부수를 던지는데 그 요령은 잠자리가 머문 위치에 따라 다르다. 잠자리는 대개 풀밭 위나 화초,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뒤 모기나 파리, 하루살이 따위의 먹잇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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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포획 방법은 잠자리가 착지한 위치에 따라 다르다. 풀밭에 앉아 있을 때는 잠자리채를 위에서 땅바닥을 향해 빠르고 힘차게 내리꽂아야 한다. ⓒPARK IN KWON


하나, 잠자리가 착지한 곳이 풀밭 위라면 위에서 땅바닥으로 잠자리채를 빠르고 힘차게 내리꽂는다.

둘, 잠자리가 화초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면 포획 방법이 달라진다. 이때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잠자리채를 옆으로 세게 빗겨 친 뒤 잽싸게 땅바닥에 뒤엎는다.


*포획했지만 김새는 경우

두 경우 모두 잠자리채를 내리꽂고 휘두르는 타이밍만 맞으면 잠자리를 포획할 가능성이 높다. 포획에는 성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때도 아주 가끔 있다. 잠자리채 철망에 잠자리 몸통이 가격당해 반신불수(半身不隨) 내지 즉사하는 경우인데 이럴 때 아이들은 ‘김샜다’라고 투덜거렸다. 반대로 고추잠자리를 잡은 날, 오늘은 운 발이 따르네, 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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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화초나 나뭇가지 위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잠자리채를 옆으로 세게 빗겨 친 뒤 재빠르게 땅바닥에 뒤엎어야 한다. ⓒPARK IN KWON


*방심은 금물

포획에 성공한 다음에도 조심할 것이 남아 있다. 그물망 속에 갇힌 잠자리를 빼내 곤충채집통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빼내고 집어넣을 때 자칫 방심하면 비행 순발력이 뛰어난 잠자리가 별안간에 탈출해 버린다.


빼낼 때는 그물망 주머니 입구를 땅에 밀착시킨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집어넣을 때는 채집통에 잠자리를 밀어 넣은 뒤 빠른 속도로 채집통 개폐문을 닫아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잠자리 포획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70년대 잠자리의 후손들은 요즘에도 건재해 잠자리 사냥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냥 장소만 산책로 숲길이나 체육공원 풀밭으로 바뀌었을 뿐, 잠자리채의 효용성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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