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창고 추억여행

65. 기와집에서 겨울나기 ⑤만둣국과 감자수제비

by 박인권

기와집에서 겨울나기 ⑤만둣국과 감자수제비


#겨울철 별미이자 단골 메뉴

몸이 으스스하고 입맛이 없는 겨울날 자주 해먹은 음식이 있었다. 만둣국과 수제비는 한겨울 우리 식구들에게 입 호강의 행복감을 선사한 별미(別味)였고 동짓날 먹는 동지 팥죽도 1년에 한 번 즐기는 특별한 먹거리였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식구들은 유난히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는 날, 만둣국과 수제비는 밥상에 오른 단골 메뉴였다. 한파(寒波)가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만둣국이나 수제비를 끓였다.


네 식구가 아랫목에 둘러앉아 후후 불어가며 먹는 만둣국과 수제비의 맛에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서려 있었다. 만둣국과 수제비는 어머니의 음식이자 우리 형제들의 음식이었고 겨울철 고향 집 풍경을 소환하는 정겨운 음식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서는 만둣국과 수제비를 손수 만들어 먹었고 형제들 모두 도우미로 나섰다. 만둣국과 수제비는 둘 다 수수하고 털털한 음식이지만, 레시피는 사뭇 달랐다.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 집의 겨울철 별미였던 만둣국. 점심때 자주 가는 단골 식당에서 주문한 수제 만둣국. ⓒPARK IN KWON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간 만둣국 조리법

만둣국을 준비하는 과정은 까다로웠고 손이 많이 갔다. 조리법의 첫 순서는 밀가루 반죽이다. 반죽을 치대고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일에는 어머니는 물론 두 형과 나까지 손을 보탰다. 조리법을 기억나는 대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네 식구가 먹을 만큼의 양을 가늠해 밀가루 포대에서 밀가루를 종기로 퍼 양푼에 담은 뒤 물을 붓고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이때 밀가루 양과 물의 비율이 중요한데 밀가루가 많으면 반죽이 뻑뻑했고 물이 많으면 멀겠다. 밀가루와 물의 양은 어머니가 정했다.


-밀가루와 물이 알맞게 섞여 차지고 끈끈한 점성(粘性)의 기본 형태가 갖춰지면 밀가루 초벌 반죽을 대형 쟁반으로 옮겼다. 밀가루 반죽을 옮기기 전 쟁반 위 구석구석에 밀가루를 골고루 뿌려 놓는데 반죽이 쟁반과 엉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던 반죽 치대기

-이제부터 밀가루 반죽의 점성을 끌어올리는 고단한 작업이 시작되는데 두 손으로 반죽을 쥐고 치대는 일이다. 이때 반죽을 주무르는 손아귀의 힘을 영리하게 부려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어가면 손가락과 팔이 저리고 너무 약하면 반죽이 탄력을 잃게 된다.


반죽을 치대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들었는데 멀리는 허리에서부터 어깨와 팔을 거쳐 두 손아귀로 이어지는 착실한 연속 동작이 필요해 길고 지루한 중노동(重勞動)이나 다름없었다. 삼 형제가 반죽 한 덩어리씩을 맡았다.


*반죽의 중요성과 만두피 만들기

-반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했다. 하나는 반죽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만둣국을 끓일 때 만두피가 터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 치댄 반죽은 찰기가 모자라 만둣국의 맛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죽이 다 된 뒤에는 만두피를 만들 차례다. 일정량의 반죽을 떼 낸 다음 도구를 사용해 얇게 밀고 동그랗게 만두피를 떠내야 했다. 반죽을 미는 도구는 다듬잇방망이였고 만두피를 떠내는 데에는 주전자 뚜껑이 동원됐다.


*만두 빚기와 만두소

-이제 만두를 빚는 일만 남았다.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 둔 만두소를 숟가락으로 떠 만두피 위에 올린 뒤 만두피를 반달 모양으로 접은 다음 두 손으로 만두피를 만지작거리며 만두 모양을 완성하는 식이다.


빚다, 는 만들어 낸다는 타동사인데 만두를 빚다 말고도 여러 가지 용례(用例)가 있다. 가령 물의를 빚다, 차질을 빚다, 갈등을 빚다, 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술을 빚다, 는 밥과 누룩을 버무려 술을 담근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는다는 표현도 있다. 새삼 우리말의 미학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어휘가 아닐 수 없다.


만두소에는 잘게 썬 김치와 으깬 두부, 부추, 다져서 익힌 돼지고기 따위가 들어갔다. 집 집마다 만두소 재료는 조금씩 달랐다. 만두를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형들이나 나나 만두를 빚을 때마다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쟁반 위에 펼쳐진 만두를 보면 누가 빚은 것인지 금방 티가 났다. 만두소를 넣고 반으로 접은 만두피 둘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모양이 질서 정연하고 만두피 양 끝이 야무지게 서로를 감싸고 있는 만두는 어김없이 어머니의 작품이었다.


#어머니표 만두 쟁탈전

형들과 내가 빚은 만두는 만두피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하고 만두피 양 끝이 어설프게 맞물려 만두가 끓는 동안 다 풀어지곤 했다. 만두 빚는 솜씨야 두말할 나위가 없는 어머니표 만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만둣국은 늘 냄비째 밥상에 올려졌는데, 삼 형제는 어머니표 만두를 서로 집어 먹겠다고 기(氣)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 형들의 체취가 깃든 만둣국을 먹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했다.


만둣국과 함께 수제비는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PARK IN KWON


#단순한 수제비 조리법

반죽하고 만두피 만들고 만두를 빚기까지 품이 많아 가는 만둣국과 달리 수제비 조리법은 단순했다. 반죽 작업을 마치면 수제비를 조리할 준비가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열심히 치댄 반죽 덩어리를 조금씩 떼 내 냄비에 넣고 끓이면 그만이었다. 반죽 요령은 만둣국 때와 똑같다.


끓는 물에 수제비용 반죽 조각을 투하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입에 들어갈 분량의 반죽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떼 낸 다음 양손 엄지와 검지로 주무르고 눌러 편평하게 펴서 넣기도 했고, 한 움큼의 반죽 덩어리를 숟가락 위에 얹고 다른 숟가락 옆 날을 이용해 자르듯이 툭툭 내리쳐 냄비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숟가락 치기라고 부른 이 방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감각이 필요한 숟가락 치기

그 이유는 반죽 덩어리의 점성 때문에 맨 숟가락으로는 잘 분리되지 않아 숟가락에 물을 묻혀가며 작업을 해야 해 번거로웠고, 자칫하면 물을 머금은 반죽과 숟가락이 달라붙어 떼 내기가 쉽지 않은 등 몸으로 익힌 나름의 감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 나는 언젠가 옛날 생각이 나 숟가락 치기를 한 번 시도해 봤는데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감자와 호박을 넣고 끓인 감자수제비는 만둣국과 함께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한 고마운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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