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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기와집에서 겨울나기 ③윗목과 아랫목

by 박인권

기와집에서 겨울나기 ③윗목과 아랫목


#심술궂은 윗목 추위

고향 집 안방과 작은 방의 윗목 추위는 사납고 끈질겼다. 수은주(水銀柱)가 뚝 떨어지는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까지 쌩쌩 부는 날이면 윗목의 추위도 심술이 심해지고 가족들은 몸을 움츠리며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발을 디밀기 바빴다.


‘아이고 추버라, 와이리 춥노.’

본격적인 겨울이 닥치면 입에 달고 산 이 말의 징후(徵候)는 그전부터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전은 가을의 끝자락이다. 가을의 숨이 넘어갈 즈음, 난방용 연탄아궁이도 늦봄부터 시작된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늦가을의 스산한 기운

기와집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고 길었다. 만추(晩秋)의 스산한 기운이 가장 먼저 인기척을 내는 곳은 안방과 작은 방의 윗목이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전에 성급하게 안방을 무단침입한 그 기운은 고집이 세고 야무졌다. 기운의 다른 이름은 상강(霜降)인데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라는 별칭답게 기세등등하고 매서웠다. 낮에는 얌전하다가도 밤만 되면 오싹할 정도로 기온을 아래로 잡아당겨 서릿가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무렵 감기가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것도 두 자리를 넘나드는 낮과 밤의 일교차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겨울의 한복판보다 이때, 선득선득한 기운이 뼈저리게 시려오는데 환절기 특유의 심한 기온 차가 낳은 체감온도의 충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의 정취가 깊어지면 고향 집 안방과 작은 방의 윗목에도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PARK IN KWON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아궁이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안방과 작은 방의 윗목에서는 한기(寒氣)가 불청객처럼 다가오고 넉 달 남짓 계속될 장기전을 치러야 할 아궁이도 만반의 채비를 서둘렀다. 연탄불의 열기를 쬔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궁이가 실전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하는데 그것은 뜨거운 열과 하루빨리 친해지는 반복훈련이었다.


연탄의 소비도 이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한다. 김장과 함께 70년대 가정집 월동(越冬) 준비의 양대 축인 연탄을 비축하는 시기도 이 무렵이다. 겨울나기의 필수 자원 식량인 연탄은 손수레 뙈기로 주문해서 장만하는데 동네 연탄집의 대목은 이때부터 시작해 겨우내 계속된다. 연탄아궁이가 2개인 안방과 1개인 작은 방의 겨울나기용 연탄은 대략 250장~300장이었다.


#찬밥 신세인 윗목과 사랑받는 공간 아랫목

또 하나 희한한 것은 똑같은 방안에 윗목과는 정반대의 얼굴을 한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윗목과 대비되는 아랫목이라는 공간인데 위, 아래 상반되는 글자처럼 두 공간의 성격은 극과 극처럼 달랐다.


연탄아궁이가 24시간 쉬지 않고 불을 피우는 온돌 난방 구조에서 아랫목은 아궁이와 거리가 가깝고 윗목은 아궁이와 거리가 멀다. 연탄이 제 몸을 불살라 뜨겁게 달군 방바닥의 혜택을 오롯이 아랫목이 차지하는 이유다. 연탄불의 열기는 온돌 난방의 이치상 아궁이와 잇닿아 있는 아랫목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거리가 떨어진 윗목은 찬밥 신세일 수밖에 없다.


아랫목과 가까운 윗목 가장자리는 어설프게나마 뜨뜻미지근한 온기(溫氣)가 남아 있지만 아랫목에서 멀어질수록 한기가 세져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온돌 난방이 가동되는 내내 윗목은 홀대받는 공간이었다.

#아랫목의 과열(過熱)과 그 흔적

부엌과 쪽문으로 연결되는 안방 아랫목에는 바닥이 식지 않도록 늘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놓았고 작은 방 아랫목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랫목 이불 아래 방바닥에 손바닥을 대면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고 아궁이와 가까울수록 그 기운은 뜨거워졌다.


어쩌다 아궁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잠든 날이면 아랫목이 너무 뜨거워 새벽에 깨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 날엔 요를 뚫고 나온 방바닥의 열기를 이기지 못해 몸에 땀이 배기 마련이라 덮고 있던 이불을 발로 걷어차기 일쑤인데 이튿날 배앓이를 하거나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일도 있었다.


부엌으로 연결되는 쪽문과 가까운 아랫목을 자세히 보면 노란 장판이 유달리 거무튀튀하게 보이는 곳이 눈에 띄는데 연탄불이 만들어 낸 뜨거운 열기를 날마다 하루 종일 집중적으로 가장 많이 쏘인 징표(徵標)다. 어머니는 가끔 이곳에 누워 한참 동안 허리를 지지곤 했는데 어린 나는 지진다는 말의 의미를 나중에야 알았다.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 음력 9월 10일)을 전후로 심한 일교차 때문에 환절기 감기에 걸리기 쉽다. ⓒPARK IN KWON

#아랫목의 다양한 쓰임새

아랫목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였고 겨울 한철 톡톡히 몸값을 해냈다.

방 안에 있을 때 식구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랫목으로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한곳에 모인 식구들은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뜨개질을 했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거나 외출했다 귀가하면 득달같이 이불을 깔아놓은 아랫목으로 가 추위로 언 몸을 녹였다.


*밥그릇 보관

안방 아랫목은 또 행여 밥이 식을까, 이불 아래에 밥그릇을 보관하는 자리였다. 전기밥솥을 장만하기 전 어머니는 식구 수대로 금방 푼 밥그릇을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 아랫목에 묻고 이불을 덮었다. 형들과 아랫목에서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이불을 걷어차거나 이불에 쓸려 밥그릇 뚜껑이 열리는 난감한 일도 자주 있었다. 다행히 밥그릇 안의 밥알 덩어리가 밖으로 쏟아지지 않으면 맨 윗부분 밥만 살짝 걷어내고 새 밥을 채우는 식으로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었다.


밥그릇에 담긴 밥알 덩어리가 통째로 방바닥에 쏟아지기도 했는데 그런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 이실직고하고 밥을 새로 퍼 담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으로 대가를 치렀음은 물론이다.


*삼시 세끼 식사와 낮잠의 공간

삼시 세끼 식사도 아랫목에서 했다. 깔아놓은 이불을 치우고 아랫목에 밥상을 폈는데 바닥이 너무 뜨거우면 방석을 깔고 앉기도 했다. 휴일이나 겨울방학 때 낮잠을 자는 자리도 아랫목이었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한잠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뿐하고 기분도 좋아졌다. 방구들이 제대로 열(熱)을 받으면 펄펄 끓는다는 어른들 표현이 실감 날 정도로 아랫목은 뜨거웠다.


연탄 난방 시절 아랫목은 겨우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고맙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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