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11. 중1 1학기 첫 영어 수업과 선행학습

by 박인권

중1 1학기 첫 영어 수업과 선행학습


#학습 고문(拷問)이었던 첫 영어 수업 시간

입학식이 끝나고 중학교 1학년 1학기 첫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다른 과목 신학기 첫 수업 때처럼 영어 선생님은 칠판에 큼지막하게 당신의 함자(銜字)를 영어로 적고 그 밑에 한글 이름을 적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한자와 한글로 이름을 밝힌 것과 달리 한자 대신 영어 이름을 판서(板書)한 데에는 담당 과목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한 학기 동안 공부할 학습 내용에 대한 개요 설명을 마친 영어 선생님은 교과서를 펼쳐 들고 영어 문장을 줄줄 읽어 내려갔다.

How are you doing? I’m fine, you?

What’s your favorite hobby? My favorite hobby is playing soccer.


머리가 하얘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교과서를 바라보던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눈앞의 낯선 장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교과서 속 영어 단어와 문장은 해독이 불가한 난수표로 다가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입학 전, 영어는 알파벳만 익히면 될 것, 이라는 막연한 부모님의 의견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 겨울방학 내내 대문자와 소문자 습자(習字)에만 매달린 나에게 첫 번째 영어 수업의 충격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가혹했다. 수업 종료 벨이 울릴 때까지 45분간의 시간은 거부할 수 없는 학습 고문(拷問)으로 다가왔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풀 죽은 중1 신입생

마음에 심한 생채기가 난 풀 죽은 얼굴로 집에 돌아온 나는 결국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얼이 반쯤 나간 어린 아들의 허탈한 모습에 부모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지 울먹거리는 나를 달래느라 연신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자초지종을 파악한 부모님은 그까짓 거 이제부터 시작하면 금방 따라잡는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고, 고3 수험생 큰형도 기본 단어 100개만 외우면 중1 교과서에 등장하는 필수 기초 문장 해독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이라고 고개를 떨군 나를 위로했다.


부모님이라고 사전정보가 있었을 리 만무한 터, 그저 귀동냥한 내용을 아들에게 전했을 뿐인지라 멋모르고 투정한 철부지 아들의 냉랭한 마음도 곧 녹아내렸다.


부모님의 당부로 바쁜 수험생의 시간을 쪼개고 쪼갠 큰형은 일주일에 걸쳐 밤늦게 나를 위해 특별과외 선생을 자처했다. 영어의 기본은 암기라는 큰형의 말을 숙지하고 한 달 동안 단어와 문장 외우기에 몰두한 나는 그럭저럭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선행학습의 장벽

본의 아니게 혹독한 영어 수업 통과의례를 치른 나는 얼마 안 가 또 한 번 거대한 벽을 실감했다. 알고 나면 별것 아니지만, 모를 때는 별것일 수밖에 없는 선행학습의 장벽이었다. 1학기 첫 월례고사를 치른 결과 영어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나빴다. 그때는 과목별 개인 성적을 학생들이 다 알게끔 공개적으로 통보했고, 월례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 석차(席次)도 공공연한 방식으로 알렸다.


공공연한 방식이란 담임선생이 개인별 석차를 일일이 호명하면서 밝히거나 전교 석차가 빼곡히 적힌 순위표를 복도 게시판에 부착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70년대 중반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내 나름의 시험 범위 내 학습 내용을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이유는 선행학습의 유무(有無)에 있었다. 시험 범위는 정해져 있었으나 막상 영어 문제의 출제 경향은 사전 고지(告知)와는 무관하게 선행학습을 한 아이에게 유리하도록 난이도가 설정됐다는 이야기다.


그때는 선행학습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약삭빠른 학부모와 아이들에게는 엄연한 사실로 통용되고 있었다. 선행학습은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 특히 심했던 걸로 기억한다.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더라도 교과 과정을 충실하게 소화하고 단계별 심화학습을 자기 주도적으로 성취하면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교육 현장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중1, 그것도 1학기 초 상황에서 선행학습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나는 몸소 체험했다.


#한영사전의 존재감

첫 번째 시험에서 무참하게 무너진 자존심에 마음 아파하던 차에 우연히 바로 옆줄에 앉은 아이에게서 실상을 알게 됐다. 그 친구에게 중1 학생에게는 어려운 영어 단어 하나를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식당의 영어 표현이 궁금하던 차에 그 친구에게 질문한 것인데 잠깐만, 하고서는 책가방에서 뭔가를 뒤지더니 이내 레스트런트(restaurant), 라고 작은 소리로 발음하고 철자를 적어 보여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영한사전만 알았지, 아직 한영사전의 존재 사실과 그 활용법을 인지하지 못해 우리말의 영어 표현을 알아내는 데에 애를 먹을 때였다. 옆줄의 그 친구도 내가 물은 우리말의 영어 단어를 자기 머릿속에서 꺼낸 것이 아니라 책가방 속 한영사전을 슬쩍 보고서 찾아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당시 중1 첫 학기 초에 한영사전을 갖고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선행학습의 비밀

내친김에 옆줄 친구에게 좀 더 사적인 질문을 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나의 의도를 선의로 받아들였는지, 속사정을 들려주었다. 자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중1 영어 과정을 다 끝냈고, 공부 방법은 개인과외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미 개인과외를 받는 아이가 적지 않았고 6개월에서 1년 치 선행공부는 치맛바람을 타고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교육 의존도를 지금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때도 이미 사교육이 있었고, 선행학습도 있었던 셈이다. 그 친구는 또 6학년 중에서 중1 과정 영어와 수학 선행 개인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꽤 있고 국어와 사회 등 기타 과목까지 미리 배우는 아이도 있다고 귀띔했는데 딴 세상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선행학습의 한계

선행학습에 대한 충격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서서히 아물어져 갔다. 교과 과정에 맞춘 학습량이 늘어나고 반복 학습과 나름의 공부 방법이 몸에 배면서 선행학습의 효과도 단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시 공부는 타고난 머리와 본인의 의지가 끄는 수레바퀴를 뒤에서 미는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될 때 결실을 거두는 법이라는 점을 주변 친구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 않나, 싶다.


1975년 중1 때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 가운데 중3 올라가서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친 아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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