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10. 중학교 입학식

by 박인권

중학교 입학식


#중학교 배정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배정된 중학교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다니게 된 학교는 큰 형이 재학 중인 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의 사립 명문중학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내심 바랐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학교 배정에 만족스러워하며 곧 중학교 교복을 입게 될 나를 격려했다. 중학교는 대구 서문시장 바로 옆에 있었고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 통학을 해야 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의 모교 교정(校庭) 전경. ⓒPARK IN KWON


#교복, 교모, 배지와 영남 지역 최초의 중등 교육기관

며칠 후 교복과 교모(校帽), 학교 배지(badge)를 받아 든 날, 아, 나도 이제 중학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식을 앞두고 학년과 반(班), 성명이 새겨진 명찰을 교복 상의에 부착하고 학교 배지를 빳빳한 교복 깃에 달고 나니 중학생 신분을 실감했다.


3년간 다닐 중학교가 소속된 학교법인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고등학교도 함께 운영했다. 1906년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애덤스(1867~1925)가 대구에 설립한 영남 지역 최초의 현대식 중등 교육기관으로 내가 68회 졸업생이다. 고등학교와 교문(校門)이 같았고 교정(校庭)이 따로 분리돼 있지 않고 한 울타리에 속해 있었다. 등하교 때 교문에서 중고생들이 늘 마주쳤고 운동장에서도 자주 부딪혔다. 2016년 3월 고등학교는 대구 시내 다른 지역에 지은 신축 교사(校舍)로 이전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도 1900년에 애덤스 선교사가 지었다는 사실을 세월이 한참 지나 알게 됐는데 불교 신자인 나로서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 중학교 교무실로 사용 중인 애덤스 관(館)은 1908년에 지은 영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중학교 교무실로 사용 중인 영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애덤스 관(館). 1908년에 건축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5호다. ⓒPARK IN KWON


#기억에 박제된 입학식 날 광경

1975년 3월 3일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열렸다. 그날의 광경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입학식을 기준으로 1학년이 된 전교생은 700명 수준이었다. 전체 10학급에 한 반(班) 인원이 70명 안팎. 요즘의 중학교 편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학생 수였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어리벙벙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사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운동장 연단(演壇)에 선 교목(校牧) 선생님의 지휘 아래 학생들은 손에 쥔 프린트물에 적힌 노래 가사를 어렴풋이 눈치껏 훑어 내려가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수백 명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엇박자에 좌충우돌로 음정이 뒤섞여 알아듣기 힘든 소음처럼 들렸고,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중학교 교실 건물인 성재관. ⓒPARK IN KWON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영문도 모르고 떼창을 한 노래는 이름도 낯선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었고 노래를 아는 아이보다 나처럼 모르는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4절까지 입만 벙긋거리는 제창(齊唱)이 끝난 뒤 애국가와 교가(校歌)를 차례로 따라 불렀다.


난생처음 알게 된 찬송가의 여운은 강하고 길게 뇌리에 박혔는데 국민의례(國民儀禮)보다 앞선 입학식 첫 행사로 찬송가를 부르게 된 특이한 경험과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의 기억 특유의 지속성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찬송가 몇 구절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敎科) 과정에는 신구약성서인 성경(聖經) 과목도 있었고 한 학기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두 차례 성경 시험을 치렀다. 주기도문(主祈禱文)을 외워서 쓰시오, 라는 서술형 문제가 출제된 기억도 난다.


중학교 졸업 기념 학급 단체 사진. ⓒPARK IN KWON


성경 수업 시간에는 수업 시작 전 교목 선생님이 임의로 학생을 지목해 기도 의식을 진행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군말 없이 귀동냥으로 들은 기도문을 주워섬겼다. 나처럼 기독교 신자가 아닌 아이들로서는 내키지 않을 법도 한데, 교사의 가르침과 지시를 거부하는 행위는 학생의 본분에 어긋난다는 사회 통념이 자연스러울 때라 성경 수업 전 기도를 드리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은 기독교에서 복(福)을 기원하는 축복기도, 축도(祝禱) 송(頌)이라는데 돌이켜보면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찬송한 노래가 아니었을까,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유서 깊은 50계단

입학식 광경이 잊히지 않는 그럴만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50계단이라고 하는 고즈넉하면서 유서 깊은 계단 길 이야기다.


학교 정문을 지나 교실로 향하는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있고 계단 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학생들은 그 계단을 50계단이라고 불렀다. 계단의 수가 50개라 자연스럽게 붙은 명칭이다. 입학식 때 처음 밟아본 50계단 길을 학생들은 신기해했고 3년 내내 등하교 때마다 어김없이 오르내려야 했다. 50계단의 인상은 강렬했다.


정문을 지나면 바로 이어지는 50계단. ⓒPARK IN KWON


#모교 대선배 신도환(辛道煥) 전 의원

50계단과 관련해서 특별하게 생각나는 일도 있다. 중학교 선배로 국회의원을 지낸 신도환 전(前) 신한민주당 총재 권한대행(1922~2004)이 재학 중에 모교를 방문해 ‘동문과의 만남’ 강연 도중 들려준 회고담(懷古談)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 불온(不穩) 인물로 낙인찍힌 자신을 체포하러 온 일본 순사를 피해 50계단으로 달아나다가 등에 권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며 50계단과의 인연을 후배들 앞에서 소개한 것이다.


거의 50년 전의 중학교 입학식 풍경을 소환한 김에 오늘 밤에는 집에 가서 졸업 앨범도 한번 들춰봐야겠다. 유수(流水)보다 빠른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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