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12. 가정방문(家庭訪問)과 가정 환경 조사

by 박인권

가정방문(家庭訪問)과 가정 환경 조사


#신학기 초의 의례적인 행사

학년이 올라가고 학기 초가 되면 꼭 치러야 하는 의례적인 행사가 있었다. 이름하여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였는데 학생들에게는 성가신 골칫거리였고 담임 선생들에게는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학생 지도 과제였다.


가정방문이나 가정 환경 조사 둘 다 학생들의 집안 속사정이 일방적으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사생활과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70년대 초중고 학교 현장에서는 효율적인 교육 행정 구현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된 새해 신학기 초의 필수 행사였다.


#반(反)인격적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

학생들이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를 싫어한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사적 공간인 집안 살림살이가 낱낱이 드러나고 가정 풍경의 민낯이 노출되는 데에 따른 부담감과 수치심 조장, 인격권을 모독한다는 것이었다. 엄중한 시대 상황과 교육 현장의 권위주의적 풍토에 짓눌려 드러내 놓고 항변할 수 없었을 뿐, 학생들의 속마음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가끔 용기를 내어 입바른 소리를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교육 정책 실천과 학생 지도의 최일선에 선 담임 선생들은 쓸데없는 만용(蠻勇)을 부린다며 나무라기 일쑤라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는 신학기 초의 정례 의식처럼 고착(固着)됐다.


이유는 딴 데 있었지만, 중학교 2학년 3월 초 나도 담임 선생에게 가정방문에서 제외해 달라는 당돌한 요청을 했다가 거침없이 되돌아온 단 한마디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으며 일갈(一喝)한 담임 선생의 한마디는 비수(匕首) 같았다.


‘내가 너그 집에 놀러 가나!’.


담임 선생들도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를 내켜 하지를 않았다. 안 그래도 과중한 학급업무에 시달리는데 학생들이 반기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떠맡는 데에 따른 심리적 부담과 행여나 청탁 시비의 구설수에 휘 말려 교사 경력에 오점을 남길 염려 때문이었다.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가정 환경 조사

학생들과 담임 선생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해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가정방문에 앞서 가정 환경 조사가 먼저 실시됐다. 가장 환경 조사는 담임 선생의 구두(口頭) 질문과 학생들의 거수(擧手)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정 환경 조사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고 노골적이었다. 가령 집이 자가(自家)인 사람? 집에 자동차 있는 사람? 집에 에어컨 있는 사람?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집에 TV 있는 사람? 과 같은 세간에 대한 것부터 집안 형제 현황은? 부모님 학력은? 형제자매 학력은? 부모님 직업은? 형제자매 직업은? 과 같은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것까지 다 포함됐다.


학생들도 어차피 담임 선생이 사실 여부를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특정 살림살이가 없는 데 있다고 하거나 부모님 학력과 직업을 약간 씩 부풀려 손을 들기도 했다. 가정 환경 조사는 때에 따라 학생들이 직접 써서 제출하는 서면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고달픈 가정방문의 달

담임 선생들로서도 가정방문은 여간 귀찮고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칫하면 불미스러운 일로 엮여 교사의 품위가 손상되고 명예가 훼손될 위험까지 있었다. 학급당 인원이 70명 안팎일 때라 담임 선생 혼자 70가구를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고달픈 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비슷한 주소지에 사는 학생들을 권역별로 묶은 뒤 하루에 한, 두 권역의 가정을 집중적으로 탐방했는데 버스 편으로 이동하고 이 집 저 집을 다니느라 다리품을 팔아야 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새 학년 학기 초마다 담임 선생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시달렸을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자식 교육에 목을 맨 부모님들

부모님의 입장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도 편달하는 담임 선생이 가뜩이나 어려울 판에 안방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장면의 어색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형편이 녹록지 않은 가정(家庭)은 가정대로, 먹고살 만한 가정은 가정대로 부모님들은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해 담임 선생을 깍듯하게 예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자리에서 선을 넘는 과도한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과도한 광경이란 자식 교육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간절한 마음이 지나치게 솟구친 나머지 촌지(寸志) 또는 거마비(車馬費) 명목의 봉투가 은밀하게 오가는 것을 말한다. 대놓고 봉투를 받을 선생이 어디 있으랴만, 부모님들은 손사래를 치는 담임 선생 뒤를 쫓아가 양복(洋服) 호주머니에 한사코 봉투를 밀어 넣는 일이 그 시절 드문 일이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워 미처 봉투를 준비하지 못한 부모님들도 꺼림칙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나름의 방법으로 정성을 표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개 자영업에 종사하는 부모님들이 그랬는데, 가게에서 취급하는 물건이나 작은 선물 보따리를 건넸다.


스승의 체면을 구기고 교육 풍토를 흐리는 검은 유혹을 뿌리치기는커녕 은근히 뒷돈을 바라는 선생들도 전혀 없지만은 않았다.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의 허상(虛像)

지금 생각하면 가정방문과 가정 환경 조사를 백번 한들 무슨 교육적 실효성이 있을까, 쓴웃음이 나올 뿐이지만 강압적이고 상명하달식 일방통행이 체질화된 스산한 시대 분위기의 소산(所産)이라 어쩔 수 없이 시키고 따랐던 지난날의 자화상(自畵像)이라 여겨진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만사(萬事) 제쳐두고 직진하는 부모님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학생의 가정 환경을 이해하고 학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사제(師弟) 간의 긴밀한 관계를 도모함으로써 교육 성취도를 끌어올린다는 목적으로 담임 선생이 학생들의 집을 찾아다니는 가정방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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