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13. 공포의 유도(柔道) 수업

by 박인권

공포의 유도(柔道) 수업


#유도 수업과 용모 검사

유도장에 침묵이 흘렀다. 깔깔대면서 장난치던 학생들은 검은 띠를 조여 맨 건장한 체격의 유도(柔道) 교사를 보자 조건반사적(條件反射的)으로 입을 다물었다. 긴 참나무 몽둥이를 든 유도 선생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빠진 사람 없나? 라고, 소리쳤다.


유도 선생의 목소리는 다부지면서 날카로웠고 아이들은 저절로 군기가 바짝 들었다.


반장의 의례적인 출석 보고가 끝나고 유도복에 흰 띠를 동여맨 학생들은 언제나처럼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10열 종대(縱隊)로 헤쳐 모여!’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들은 부리나케 움직였고 수십 명의 발소리가 매트에 부딪히며 유도장 안으로 퍼져 나갔다.


유도 실기 수업에 앞선 필수 코스인 용모(容貌) 검사는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시절 유도장에 대한 추억이 각별한 것도 바로 이 용모 검사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색다른 수업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성경 수업, 다른 하나는 유도 수업이었다.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도 명문교라 중학생들도 1, 2학년 때 주 1회씩 유도 실기 수업을 받았다. 성장기 학생들의 체력을 증진하고 기본적인 호신술(護身術)을 가르친다는 취지에 더해 유도 명문 학교에 다닌다는 자긍심을 심어줄 목적이었을 것이다.


#누르기 시범의 고통

유도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유도 교사는 유단자(有段者)였고 아이들은 유도 시간만 되면 긴장의 눈빛을 늦출 수 없었다. 이유인즉슨 실기 지도에 앞서 용모 검사를 꼭 시행했고 적발될 우려가 있는 학생들은 공포의 누르기 시범의 희생이 될까, 전전긍긍했다.


누르기 시범의 대상자로 낙점이 되면 숨이 가빠 얼굴이 창백해지고 하늘이 노래지면서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실감할 수가 없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용모 검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고 검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 모두 두려움과 수치심을 견뎌내어야 했다.


두려움과 수치심은 검사 방식과 벌칙이 불 지른 본능적 반응의 결과라 적발된 아이나 그렇지 않은 아이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날카롭게 성이 난 촉각은 이내 몽둥이로 머리 가격, 손가락으로 배 찌르기 또는 80kg 남짓한 몸무게가 짓누르는 누르기 시범에 무장해제당하고 말았다.


#이유가 있었던 손톱 검사

용모 검사의 첫 번째 순서는 손톱 검사였다. 손톱 정리를 하지 않아 손톱이 손가락 끝 피부 경계 넘어 삐죽하게 자란 아이들은 영락없이 걸렸다. 학생들은 유도 선생이 제발 자기 앞을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바랐고 그러는 내내 심장에서는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의 눈을 가진 유도 선생은 웃자란 손톱의 주인을 놓치는 법이 없었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또 걸렸네, 하면서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톱 검사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지 매번 걸리는 아이가 또 걸렸고 걸리지 않는 아이는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유도 선생이 손톱 검사를 한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유도는 매트 위 두 선수가 상대 도복을 잡고 펼치는 무도(武道)라 조금이라도 도복을 유리하게 움켜쥐려는 기(氣) 싸움이 치열하다. 이때 길게 자란 손톱을 방치한 채 도복을 잡다가 자칫하면 손톱이 빠지거나 깨질 우려가 있다. 손톱 관리가 중요한 까닭이다.


#세로 누르기 시범의 전모(全貌)

누르기 시범의 주체는 유도 선생이고 객체는 적발된 아이인 데, 당하는 아이는 괴롭겠지만 시범 장면을 지켜보는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시범은 벌칙을 받을 아이가 매트 위에 하늘을 보고 드러누우면서 시작된다.


오늘은 세로 누르기를 보여 주겠다, 다 들 잘 보도록, 하면서 유도 선생은 드러누운 아이와 90도 각도로 옆 자세를 취한 뒤 한 팔을 제압해 상체를 포개고 얼굴로 목 부위를 압박한 다음 다른 팔로는 허리춤을 움켜쥐어 80kg이 넘는 무게로 짓누르는데 이내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밑에 깔려 꼼짝달싹도 못 하는 아이가 죽겠다며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는 한 손으로 매트를 두드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도 선생은 10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유도 선생은 방어력이 백지상태인 아이를 상대로 누르기 기술의 반의반도 구사하지 않았지만, 깔린 아이의 체감 고통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는 아이와 달리 지켜보는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지만, 웃음을 참지 못한 장면이 끝나면 용모 검사의 다음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속옷 검사.


#희한하고 얄궂은 속옷 검사

손톱 검사와 달리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그런 검사를 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유도 선생은 수업 때마다 아이들의 도복(道服) 하의를 내리게 했다. 남자끼리고 어린 나이의 중학생이더라도 수치심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속옷 검사에 걸린 아이에게 유도 선생은 야 이놈아, 옷 좀 갈아입어라, 고 소리치며 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때리곤 했는데 이보다 더한 장면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이렇다.


사춘기의 물이 오르기 시작한 또래의 아이들은 밤새 축적된 청춘의 기운을 이른 아침 녘에 불끈 드러내는데, 느닷없이 부푼 자기 몸을 보고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짓궂은 유도 선생은 끓어오른 남성미를 주체하지 못해 남긴 흔적을 용케 찾아내고는 야 이놈아, 공부할 때 힘써라 엄한데 용쓰지 말고, 하면서 얼굴이 홍당무가 된 아이의 아랫배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옆에서 남 일 아니라는 듯 숨죽이며 바라보던 아이들도 더는 못 참겠다는 냥 킥킥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옥죈 어른들의 이중적 시선

따지고 보면 호기심 많은 사춘기 시절, 성장 과정의 한 단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뿐일 텐데, 오히려 그런 현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시선이 괜스레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부추긴 게 아닌가, 싶다.


유도 선생이나 이름 모를 뭇 어른들도 사춘기를 겪었을 것이고 그들이라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할 텐데, 망각의 마법에 홀려서인지 어찌할 수 없는 위선 의식에 사로잡혀서인지 기성세대는 마치 가식의 포로처럼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때도 이상했고 지금도 이상하나 이해를 아주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나도 자식 앞에서 그러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없고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 흘러간 철부지 때의 습성을 치기(稚氣)로 치부하고픈 심정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할 것이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전방 낙법(落法), 측방 낙법, 후방 낙법을 열심히 배웠고 업어치기와 허벅다리 후리기 따위의 유도 기술을 익혔으나 한 번도 써먹을 일이 없었다.


소득이라면 훗날 올림픽이 열리면 유도 경기만큼은 꼭 챙겨 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업상 알만한 유도 선수들과 각별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는 점, 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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