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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l 03. 2024

삶의 정거장에서

15. 책취(冊臭)와 새 책 출간의 기쁨

책취(冊臭)와 새 책 출간의 기쁨     



 책을 사면 의식처럼 치르는 버릇이 있다. 아직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새 책의 속살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행동이다. 나의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두 손으로 두툼한 책장(冊張)을 조심스레 열어젖히고 강아지처럼 킁킁대며 후각(嗅覺)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나는 갓 세상에 나온 새 책에서 나는 책취(冊臭)를 좋아한다. 막 찍어낸 새 책의 냄새는 묘하게 매력적이다. 책을 펼쳤을 때 드러나는 후각의 정체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 두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책취라고 부른다. 책취는 책마다 다 다르다. 어떤 놈은 묵직하게 코를 자극하기도 하고 어떤 놈은 가벼우나 잔잔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숨을 들이마시며 책취를 맡을 때마다 숱한 사연이 깃들어 있을 출간의 노고(勞苦)가 느껴진다. 종이와 잉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만들어낸 책취에도 개성이 있는 것이다. 백지(白紙)를 무대 삼아 지식과 정보의 향연을 펼치며 재미와 감동, 흥분을 선사하는 활자 군상(群像)은 잉크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활자로 태어난다. 내가 책취의 의미를 남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다.     



책취에 대한 호기심이 불러온 나만의 탐사 방식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됐다. 그것은 새 책을 거머쥐었을 때 맨 처음 행하는 책을 향한 나만의 고마움과 설렘의 표시다. 책마다 각기 다른 후각으로 다가오는 책취는 책이 나에게 무상으로 안기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나에게만 몸을 허락한 새 책의 속살이 내뿜는 향기는 오롯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나에게 새 책은 연인, 새 책의 향내는 연인의 속살이다. 내가 새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취의 정겨움에 빠져있을 때 거짓말처럼 일상의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저자가 머리와 가슴으로 숱한 번민 끝에 길어 올린 활자를 곱씹고 난 뒤의 성취감은 지적 포만감이며 책취의 향유(享有)에서 오는 후각적 흥분은 새 책을 만나 얻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다.     


 지난주 금요일 1년 가까이 공들인 원고가 종이책으로 출간됐다. 누구에게나 종이책의 출간은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이책은 저자의 땀과 노력과 고뇌의 흔적이 화석처럼 새겨진 물질적 존재감이자 소양(素養)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걸고 세상과 마주한 새 책에서 한참 동안 후각적 정취를 만끽했다. 책 제목의 일부분인 추억여행의 정감을 살리기 위해 흑백 1도로 인쇄된 새 책의 책취는 투박하나 질리지 않았다. 책의 속살 여기저기에서 따끈따끈한 기운이 후각을 파고들었다.     



출간 소식을 확인한 친구들과 친척, 지인들이 득달같이 인터넷서점 구매인증 샷을 보내왔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어떤 친구는 아직 매대(賣臺)에 깔리지 않은 줄도 모르고 반가운 마음에 오프라인 서점을 찾았다가 책이 없어 서운했다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자기 일처럼 따뜻한 손길을 내민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졸저(拙著) 출간에 즈음한 소회(所懷)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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