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재에 앞서
1. 연재에 앞서
#밥심과 집밥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자고로 먹어야 한다. 곡기(穀氣)를 끊고서 살 수는 없다. 굶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안다. 먹는 행위가 곧 생존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밥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밥은 한국인에게 곧 삶이다.
찌개나 국, 네댓 가지의 반찬과 생선구이로 차려지는 일반적인 백반 상차림.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밥은 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갓 지은 흰쌀밥에다 찌개와 국, 김치와 밑반찬, 나물무침에 더 해 생선구이 또는 고기반찬을 통칭(通稱)하는 상(床)차림을 말한다. 식당에서 파는 백반(白飯)이나 백반 정식(定食)을 떠올리는 음식인데 집밥과 가장 닮았다. 날마다 찌개와 국이 바뀌고 제철 식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주력 메뉴 중심의 단품(單品) 요리에 비해 품이 많이 들어가고 손맛의 영향도 커 집밥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집밥은 정성과 손맛, 불맛 세 가지 요소가 사이좋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 까다로운 음식이다. 손은 요리를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한 추진체 중 하나다. 손에서 우러나오는 손맛은 식재료를 다루는 솜씨와 칼질, 여러 양념 재료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맛깔스럽게 섞는 기교를 말하는 뜻일 것이다.
무침 요리할 때 나물을 조물조물 버무린다고 할 때의 의태어(擬態語) 표현은 손맛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비유다. 결국 손맛과 정성은 음식 맛을 내는 ‘한 지붕 두 가족’의 이웃 관계라 할 수 있으며 이 둘의 기운이 합치(合致)할 때 손맛은 정점을 찍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밥심의 으뜸은 단연 집밥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집밥은 어머니의 손맛, 의 다른 이름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상(表象)한다. 집밥이 음식의 영역을 벗어나 하나의 문화로 해석될 수 있는 근거다. 바깥 음식과 배달 음식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집밥 생각이 간절한 것은 집밥에 내재한 어머니의 품이라는 정서적 어의(語義) 때문일 것이다. 집밥,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고향, 집, 가족, 추억, 정겨움, 따뜻함, 편안함인 것도 마찬가지다.
집밥에 대한 향수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에게도 집밥의 추억을 소환하는 음식이 있다. 육회(肉膾)와 오징엇국, 배춧국, 뭇국, 콩나물국, 오징어숙회, 만둣국, 감자수제비가 그런 것들이다. 밑반찬으로는 명란젓과 부추김치, 마늘장아찌가 기억난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먹은 숭늉에 대한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숭늉
#집사람의 제안
코로나가 일상을 옥죄던 2020년 9월 중순 무렵이었다. 집사람이 대뜸 하나의 제안을 했다. 주말에만 식사 당번을 포함해 집안일을 좀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탁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오죽 손이 달렸으면 나에게 간청했을까, 하는 마음에 흔쾌히 승낙했다. 빨래나 청소는 간간이 거든 적이 있어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으나 손수 밥 짓고 반찬 만들고 4인 가족상을 차리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때까지 나는 라면 끓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다. 어쨌거나 내가 살림을 도울 수밖에 없는 사정은 달라질 수 없기에 기꺼이 그러마, 하고 다부지게 마음먹었다. 일단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단골 메뉴인 국과 찌개류를 비롯해 구이, 무침, 조림, 생선 요리 등 밥상 식단(食單)을 짠 뒤 각각의 조리법을 간단하게 정리한 음식 일람표(一覽表)를 만들었다. 참고 자료는 인터넷 검색을 통한 메뉴별 요리법.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름의 기준이 필요했다. 서너 가지 정보를 비교해 공통적인 내용을 추려 메뉴별로 알기 쉽게 정리했다. 필요한 식재료와 식재료 다듬기, 양념의 종류, 육수 만들기, 불 조절과 끓이는 시간, 간 맞추기 따위를 요약한 정보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무생채무침
#손맛의 미학(美學)
손맛의 존재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때가 있다. 나물무침을 할 때다. 풋풋한 흙냄새를 머금고 있는 나물을 무치는 행위의 주체가 손이기 때문이다. 나물무침은 생나물이나 데친 나물을 손으로 양념과 함께 버무려 바로 먹는 음식이다.
불과 시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양념과 손맛으로만 맛을 내기에 손맛이 가장 정직하게 미각적(味覺的)으로 발현되는 음식이다. 나물무침에 들어가는 양념도 결국 손을 타야 제구실을 할 수 있어 나물무침이야말로 가장 인체 친화적인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양념이 나물 구석구석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강약과 농도 조절하는 것도 손이고, 나물의 싱그러운 기운을 살리게끔 어르고 달래듯 조물조물 무치는 솜씨도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 나물무침은 나물의 속성이 가장 순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요리다. 소박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맛, 그것이 곧 나물무침이다.
콩나물무침
일회용 비닐장갑이 없던 시절, 나물무침은 맨손으로 무쳐졌다. 손맛의 원형은 분명 맨손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든 시대다. 손맛을 작동시키는 추진체가 비닐장갑이라는 위생적 외피(外皮)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도 필요의 산물(産物)일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 화석처럼 선명하게 각인된 날 것 그대로의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심정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
공장 김치가 대량 유통되기 전에는 김치도 집에서 담가 먹고 깍두기도 집에서 담가 먹었다. 담그는 행위의 주체도 손이라 김치맛이나 깍두기 맛에도 손맛이 배어 있을 것이다. 선홍빛으로 곰삭은 깍두기의 빛깔은 욕망이고 맛은 탐욕이다.
깍두기
#집밥 짬밥 4년에 즈음해
왕초보 초짜가 얼떨결에 주말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째다. 한 주일의 끝자락에서 가족 식탁을 위해 매번 서툰 솜씨로 미력하나마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식구들의 입맛을 맞추기에는 늘 역부족이었음을 잘 안다. 스스로 위안 삼는 게 있다면 서당 개 3년이면 풍월(風月)을 읊는다고 집밥 짬밥 4년에 이제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환갑을 넘긴 또래의 남자 중에서 굳이 요리 서열을 따지자면 평균 이상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장년기(長年期) 남자들의 정서 유전자 속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 질서의 흔적 때문이다. 부엌살림은 으레 여자의 몫이라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 익숙한 집밥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다.
우리 세대들은 대개 큰맘 먹고 아내의 부엌일을 돕겠다고 나서더라도 그때뿐일 뿐, 지속 가능하지가 않고 그마저도 실수투성이라 핀잔을 듣기 일쑤다. 물론 예외도 있다. 취미 삼아 딴 요리사 자격증 소지자나 독학으로 내공을 쌓은 재야의 실력자도 드물지 않다. 앞서 ‘감히’라는 사족을 붙인 이유도 그래서다.
어쨌거나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4년째 식구들 주말 끼니를 책임져 온 내가 대견스럽다. 얼마 전부터는 주말 밥상의 상차림 규모가 단출해졌다. 아들과 딸이 직장 근처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은 지난해 이맘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