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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l 18.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2. 집밥의 즐거움과 연재 동기

2. 집밥의 즐거움과 연재 동기     


#보람차고 즐거운 집밥 짓기

 집밥을 짓는 일은 보람차고 즐겁다. 이유는 이렇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가족의 건강을 뒷받침할 든든한 원동력(原動力)이 된다는 자부심과 요리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 성의껏 차린 음식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포만감에 행복해할 때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집밥에 매진할 수 있었던 동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어떤 때는 꾀를 부리기도 했고 어떤 때는 마지못해 억지로 한 적도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곁가지 메뉴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밥상을 차리는 또 다른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좌충우돌의 서투른 요리 초보도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갈고닦으면 부끄럽지 않은 내공(內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일 아침에 급하게 차린 우리집 밥상. 김치찌개와 소시지구이, 오이부추무침, 계란말이, 깻잎 조림, 가지조림 등 평범한 상차림이다. 식구끼리라 반찬통째 식탁에 올려놓고 먹기도 한다.


#집밥과 노년의 지혜

친구들에게 내가 주말마다 밥상을 차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들 깜짝 놀라는 눈치였고 그렇게 한 지 벌써 4년이라는 말에 그들은 또 한 번 눈을 껌뻑였다. 라면 외에 음식이라고는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그들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 연배의 남자들이 으레 그래왔기에 이해할 만하다면서도 나이 들어 자기 밥쯤은 스스로 챙겨 먹을 줄 아는 것도 노년(老年)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음식도 이론보다 실천이 우선이다. 눈으로 보고 듣고 머리로 익혀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요리는 별개의 문제다. 백문(百聞)이 불여(不如) 일행(一行)은 만고(萬古)의 진리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 일은 모른다. 늘그막에 굶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주방 살림과 친하라”라고 일렀다.      


음식 장사로 업(業)을 삼지 않을 바에야 굳이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틈틈이, 재미 삼아 아내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깨너머로 하나둘 요령을 터득하고 손수 요리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기본적인 밥상 정도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꾸릴 수 있다. 맛이 있고 없고는 그다음 문제다. 요리도 자꾸 하면 는다. 친구들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가 대뜸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까지 주말마다 요리한 집밥 사례를 글로 한 번 써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클릭 한 번이면 인터넷에 정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지만 동년배의 남자가 몸소 겪은 주방 경험담은 집밥 도전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또래의 뭇 남자들에게 의외의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에서였다.      


예쁜 꽃무늬가 새겨진 식탁 깔개 4개가 놓인 우리집 식탁.


내가 차려온 집밥 메뉴에 새로울 게 있을 리 없다는 점을 잘 안다. 마음만 먹으면 확인할 수 있는 널려진 음식 정보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이 든 남자가 차리는 집밥이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고 믿기에 친구의 제안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기계적인 요리법 위주의 음식 이야기는 식상할 것이 뻔하다는 우려도 있었다. 고심 끝에 원론적인 행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해법을 찾았다. 식재료에 내재한 의미를 더듬어 보고 요리 과정에서 경험한 시행착오와 음식에 깃든 추억이나 일화를 불러낸 가운데 요리법도 내 방식으로 재해석한 나만의 주말 밥상 시나리오를 써 나가기로 했다.      


가사(家事)에, 집밥에 남자, 여자의 구분이 의미가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구시대의 유물인 가부장적 질서 문화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아니다. 스스로 밥을 짓고 음식을 요리할 줄 아는 것은 과시욕이 아니라 생존 능력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여, 집밥을 공부하자.      


#집밥 메뉴 선택의 기준

 내 나름의 집밥 메뉴 선택의 기준이 있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음식 취향이 첫째고, 건강식(健康食)이나 계절(節氣)의 특성에 어울리는 제철 음식을 중시하거나 가족이 원하는 밥상을 차리는 일도 적지 않다. 내 나름의 기준이라기보다 어느 집이나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도 집마다 음식 문화가 다 다르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식구들의 음식 기호가 가정 식탁 상차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집밥을 차리는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때가 있다. 소고기나 삼겹살을 집에서 구워 먹거나 식당에서 포장 구매한 부대찌개와 동네 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산 매운탕을 식탁에 올리기로 마음먹는 때다. 메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식사 준비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물론이다. 국이나 찌개류와 같은 별도의 국물 요리를 만들지 않아도 돼 이래저래 상차림 손놀림이 흥겹다. 바깥에서 외식(外食)하는 날은 말할 것도 없다.


음식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갖가지 양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칙이 중요하다.

    

#과신과 과욕이 부른 낭패

기껏 용을 써 식탁에 올릴 음식을 다 만들었는데 낭패를 볼 때도 있다. 물 조절에 실패해 맛국물(육수)이 너무 많거나 적을 때가 그렇고, 넣지 말아야 할 엉뚱한 양념을 넣었을 때도 그렇다.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검색 정보를 믿고 그대로 실행한 결과 의외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역시 실전(實戰)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정보를 검증하는 최상의 방법은 직접 요리를 해보는 것이다. 양념의 강도가 너무 셌을 때, 주제넘게 끼를 부린다고 주요리에 들어갈 핵심 식재료를 자의적으로 선택했을 때도 그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 정서적 목마름에 시달릴 때,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위로의 옹달샘이 있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손맛은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향수(鄕愁)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새 연재물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를 시작한다. 베이비 붐 세대의 마지막 그룹의 일원으로서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어머니의 손맛, 의 대체 불가한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인 집밥에 얽힌 풍경을 토대로 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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