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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l 31.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4. 닭다리 간장조림 (상) 닭다리에 얽힌 이야기

4. 닭다리 간장조림 (닭다리에 얽힌 이야기     


#닭다리와 닭의 삶

 닭다리는 닭이 평생 걸어온 걸음의 역사가 축적된 곳이다. 닭의 평생은 닭마다 다 달라 닭다리가 기억하는 걸음의 총량도 제각각일 것이다. 걸음이 끊긴 날, 닭의 운명도 다했을 것이다. 닭다리를 볼 때마다 닭이 밟아온 삶의 궤적이 궁금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닭다리는 말할 수가 없고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아 확인할 길이 없다. 나의 궁금증은 어이없고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먹이사슬의 최상위자 호모 사피엔스도 그들의 평생을 예견할 수 없는 판에 닭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스스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은 생명체의 숙명(宿命)일 터이다. 그럼에도 닭들이 살아온 삶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확실한데 닭다리마다 생김새와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살갗의 색깔, 육질(肉質), 껍질의 질감 따위가 결코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닭다리에는 닭이 평생 걸어온 걸음의 역사가 축적돼 있다.


인간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행복에 겨워한다. 미각(味覺)이 안기는 본능적 쾌락에 마음껏 취하면서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욕이라는 근원적 욕구가 어디 인간만의 전유물이랴.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생물이라면 짊어져야 할 필연적 업보(業報)가 아니던가. 


닭들도 살아생전 수많은 생명을 먹어 치웠을 것이다. 생태계가 형성한 먹이사슬의 질서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예외일 수 없다. 마트에서 사 온 닭다리를 보다가 괜히 울적해졌다.      


#사육 닭의 역사와 꼬끼오

 진화론과 생명 기원설에 입각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에 앞서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면서 예를 차리거나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풍습도 생명 존중 사상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치킨이나 백숙을 앞에 두고 상대에게 닭다리를 권할 때 닭다리 하나 뜯어라고 한다살이 통통하게 오른 찰진 닭다리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조류(鳥類)의 기원(起源)은 공룡이라고 한다. 닭도 조류의 후손이라 닭의 역사는 태곳적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다. 인류 보편의 가축인 닭을 인간이 사육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뭉뚱그리면 수천 년 전 인도와 동남아 지역에서부터 닭은 사육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다 아는 꼬끼오, 라는 소리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꼬끼오는 인간이 수탉의 울음을 흉내 내 표현한 3음절 의성어(擬聲語)다. 그런 점에서 꼬끼오는 사육 닭의 역사를 알리는 계사(鷄史) 전개의 소리고 닭이 닭임을 알리는 닭의 소리다. 닭만이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여름 보양식(保養食)으로 즐겨 먹는 삼계탕.


#삼복더위와 삼계탕

한국인들은 닭을 음식으로 기념하는 특이한 풍습이 있다. 1년 중 여름철의 가장 더운 시기인 초복(初伏)과 중복(中伏), 말복(末伏) 삼복(三伏)더위만 되면 삼계탕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옛날 어른들이 복날에 주로 먹는 음식은 보신탕(補身湯)이었다. 보신탕의 한자 표기대로 더위에 지친 몸을 보호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삼복의 복(伏) 자를 한자로 풀어 보면 사람인(人) 변에 개 견(犬) 자를 합한 것인데 보신탕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글자가 아닌가, 싶다. 회사 다닐 때 동료들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보신탕집에 간 적이 있었다. 도저히 음식에 손댈 자신이 없어 나만 삼계탕을 시켜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삼계탕은 역시 삼계탕집에서 먹어야 맛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다 좋아하는 프라이드치킨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달 음식 중 하나일 것이다.


#아들의 닭다리 사랑

 닭다리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들이 네 살 무렵이었을 때다. 주말에 처제가 살고 있는 과천의 한 아파트로 가족 나들이를 갔다. 처제네와는 왕래가 잦았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인근의 관악산 계곡에서 더위를 식혔다. 우리처럼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나들이온 인파가 많았다. 


손아래 동서(同壻)가 치킨 배달이 가능하다고 해 설마, 했는데 잠시 후 거짓말처럼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배달 문화의 위력을 실감했다. 2000년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날개 세트나 다리 날개 혼합 세트는 없었고 무조건 한 마리 전체를 토막 내 튀긴 것이었다. 


요즘 들어 내가 좋아하는 프라이드치킨의 날개 부위.


닭 한 마리를 튀긴 닭다리는 두 개, ‘Children First’ 관습에 따라 아들이 선택권을 쥔 것까지는 좋았는데 눈앞에서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닭다리 하나를 입에 물고 득의양양한 아들은 다른 한 손으로 나머지 닭다리마저 거머쥔 채 소유권을 주장하며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동서가 어찌해 볼 요량으로 어르고 달래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 모두 웃고 말았다. 아들의 닭다리 사랑은 빨랐다.     


한국인들은 퍽퍽한 닭가슴살보다는 쫄깃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과 풍미가 뛰어난 닭다리 살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 닭다리 살을 좋아했었으나 요즘에는 작아서 먹기가 편하고 맛도 좋은 날개로 치킨 취향이 바뀌었다. 프라이드치킨 문화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는 닭다리보다 닭가슴살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기름기가 적은 저지방 부위인 닭가슴살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란다.      


쫄깃쫄깃한 닭다리 살에 비해 퍽퍽한 닭가슴살은 식감이 떨어지지만저지방 고단백 부위라 운동으로 근육질 몸매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치킨 문화가 통닭 한 마리이던 시절, 닭다리를 놓고 벌어지는 신경전은 흔한 풍경이었다. 지금이야 입맛대로 부위별 세트를 주문할 수 있는 시대라 닭다리를 두고 펼쳐지는 기(氣) 싸움도 옛날이야기가 됐다.      


닭다리 간장조림()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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